메뉴

단독집중취재(12) “인간문화재 양승희의 눈물” 최진, 언론중재위 불성립 결정나자 국악타임즈를 '기사삭제 및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소송으로 "법정비화"

최진 교수는 자신을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이수자일뿐 아니라 현직 국립대학교 교수라는 명성으로 그동안 쌓아올린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 당했다고 아시타비(我是他非) 억지 주장
전형을 부정하고 전승체계를 왜곡하는 역모(逆謀) 수준의 평가,
살신성인의 국악의 흑 역사 바로잡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진실은 가둬 둘 수 없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교훈의 계기 되어야

 

단독집중취재(12) “인간문화재 양승희의 눈물” 최진, 언론중재위 불성립 결정나자 국악타임즈를 '기사삭제 및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소송으로 "법정비화"

 

2021년 무형문화재 제23호 양승희 선생의 공개행사에 점검요원으로 위촉되어 평가한 내용으로 인해 ‘양승희의 눈물’의 발단이 되었던 한국교원대학교 최진 교수가 국악타임즈를 상대로 '기사삭제 및 명예훼손 금지 가처분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소하여 '양승희의 눈물' 사태는 법정에서 다투게 되었다.

 

최진 교수는 2023년 1월 5일에도 언론중재위원회에 국악타임즈를 상대로 '양승희의 눈물' 기사를 삭제하고 1억 원의 손해를 보상하라는 중재를 요청한 바 있으나 언론중재위원회 서울 제3중재부에 의해 2023년 2월 8일 “이 사건 조정은 모두 불성립으로 한다”는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최진 교수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이수자일뿐 아니라 현직 국립대학교 교수라는 명성으로 그동안 쌓아올린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명예 훼손 당했다고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억지를 주장하고 있다.

 

최진 교수는 국악타임즈를 고소한 고소내용에서 자신은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이수자일뿐 아니라 현직 국립대학교 교수이고 50여년 동안 가야금 실기를 익혀왔으며, 더구나 양승희와 같은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이수자이기 때문에 해당 산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A4 다섯장 분량에 자신의 각종 경연대회 수상경력과 심사이력 등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여 양승희 선생을 평가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인데 자신의 실력과 역량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고 양승희 선생의 일방적 주장만을 보도하여 자신의 50년 국악인생의 명예를 훼손당하였다며 국악타임즈를 상대로 고소하여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억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최진 교수의 주장은 국악타임즈가 2022년 11월부터 1개월 여간의 이 사건 사전취재를 위해 문재숙 선생과 최진, 정선옥 등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하였으며 목포, 영암 등으로 현지취재를 하였으며 전화와 SNS 등을 통해 취재를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매번 거절당하였고, 언제라도 반론이 있다면 보도하겠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는 등 기사의 객관성을 위한 국악타임즈의 취재 제의에 대해 일언반구의 의사표시가 없었음을 밝혀둔다.

 

국악타임즈는 양승희 선생과 같은 문중 유파의 보유자 문재숙 선생의 제자이며 이수자인 최진이 “왜그랬을까?”라는 의문으로 원인을 찾기 위한 의도가 취재의 목적이었다.

최진 교수가 고소장(告訴狀) 에서 밝혔듯이 전승체계상 김죽파류의 이수자인 신분으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전형에 대한 정성평가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김죽파류의 적자인 양승희 보유자에 대한 부정일 뿐 아니라 전승체계에 대한 도발이고, 무형문화재법의 근간을 형해화하려는 무모한 도발의 시도가 무엇 때문인가라는 의문으로 국악타임즈는 취재를 시작한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1962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이후 최초로 같은 유파에서 두 명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지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2006년 4월에는 50여 개의 언론 기사로 장안에 비난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자 훗날 "양승희의 눈물"의 씨앗이 된 셈이다.

 

국악타임즈는 최진 교수의 개인적인 역량이나 경력을 폄훼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더구나 최진 교수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보도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의 억지 주장이다.

 

더구나 최진 교수가 스스로 밝힌 50여년의 국악인생과 현직 국립대학교 교수라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최진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과정은 전통문화의 전형유지를 위해 예술적 기량은 물론 전승계보를 절대적 평가 기준으로 지정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제도교육 과정에서 국가무형문화재가 지정된 사례가 없는 것은 전통문화 전승 목적의 특수성 때문이다.

 

양승희 선생은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이고 효시인 김창조에 이어 김죽파 선생의 적자이며 1982년 3월 3일 김죽파 선생의 추천으로 전수조교가 되어 준인간문화재 과정을 거쳐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런 양승희 선생에게 “진양조 중모리는 김죽파류 산조임을 인식하기 어려웠다”라는 정통성을 부정하는 평가는 무형문화재보호법의 무지이거나 보유자를 의도적으로 폄훼할 목적의 의도가 전제된 평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최진은 가야금산조 함동정월류가 전공이고 김죽파류의 이수자가 되기 위한 방편으로 3년간 문재숙 선생에게 공부했을 뿐 김죽파류 산조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는 양승희 선생에게는 배운 적도 없고 문재숙 선생의 제자로 김죽파 산조 전수생을 거쳐 이수자가 된  최진의 부적절하고 가혹한 평가에 대해 수긍하는 국악인이 없을 뿐더러 국악계로부터 비난과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국악인은 이러한 최진의 평가 내용에 대해 "한전 앞에서 촛불켜는 격이다"라는 비아냥으로 적절하지 못한 행위라고 입을 모은다.

 

최진의 평가는 전형을 부정하고 전승체계를 왜곡하는 역모(逆謀) 수준이다

 

국악타임즈는 그동안 다양한 제보와 당사자 취재를 통해 객관적 및 주관적 자료들을 채집하여 11번에 걸쳐 집중취재한 내용을 보도하였고, 이후 문화재청과 무형유산원 등에서 이번 사태의 수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월 26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소재 전수회관에서 당사자인 양승희 선생과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국립무형유산원 안형순 원장과 전승지원과 총괄 권오현 과장, 법률담당자 등이 3시간이 넘는 비공개 회동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양승희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 자신을 더구나 같은 유파 문중의 보유자 문재숙의 제자이고 이수자인 최진으로부터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의 전형을 부정하고 전승체계를 왜곡하는 역모(逆謀) 수준의 평가로 수모를 당하는 근본적인 문제의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다고 강력히 항의하였다. 문화재청은 정치권력과 외압에 무릎을 꿇은 치욕스러운 과거의 역사를 반드시 치유하고 결자해지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뼈저리는 치도곤(治盜棍)을 들었다.

 

국악타임즈는 문화재청의 후속 대책이 마련되는 시간을 위해 이미 취재된 공익 목적의 보도조차 최대한 자제하면서 화해와 수습을 위한 1개월 여간을 숙려의 시간으로 관망하였고, 3월 9일 무형유산원에 사태수습을 위한 진전된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였으나 현재 소송이 진행중이라 공식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국악타임즈는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속속 밝혀지는 무형문화재 제23호 문재숙 보유자 지정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이 정치권력과 외압에 시달리고 무릎을 꿇었던 치욕의 역사를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손봉숙 의원의 “권력이 빚어낸 무형문화재,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보유자 인정의 파행과 불법”이라는 정책보고서와 다양한 제보와 취재를 통해 확보된 자료를 중심으로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믿을만한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영암에서 "종가 the 琴"이라는 행사를 통해 양승희 선생의 전승활동을 교란하고 있는 문재숙 선생의 제자이고 전수자인 정선옥 등도 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국악타임즈는 언론의 공익적 목적과 사회적 책임인 정당한 보도할 권리를 탄압하고 억압하여 재갈을 물리려는 어떠한 시도와 음모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최진 교수의 2021년 양승희의 공개행사 평가로 불거진 "양승희의 눈물"은 새로운 국면으로 국악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도화선이 되어야 하고 국악계의 흑역사를 걷어내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한 최진 교수의 살신성인의 계기가 되어 전통문화의 진실의 문이 열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진실은 가둬 둘 수 없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교훈이 새삼스럽지 않다.

" 드러내야 고쳐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