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2]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수난의 초상

  • 등록 2023.11.14 10: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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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2]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수난의 초상

 

춤꾼의 문법 2

 

용두동과 태평무

선생께서 서울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첫 학원을 열었던 것은 광복 직후였다. 6 · 25 직전까지 학원은 교습생들로 대성황이었는데 심지어는 서울 장안의 명사 부인들이 선생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 정도였으니 이 시기는 광복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선생의 생애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다 한다. 하지만 이후의 생활은 참으로 어려워서 대전에서의 삶은 참으로 처참하였던 모양이다.

 

우리 춤 백 년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신 고 정범태 사진기자께서 선생의 당시 생활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0년대에 이르러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교습소를 열게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선생의 두 번째 서울살이는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당동에서 회기동, 용두동, 서대문을 거치는 동안 형편이 녹록지는 않으셨다. 결국은 수원 화령전 근처의 우거에서 거주하시다가 노환으로 영면에 드신 것이다.

 

내가 선생을 처음 뵌 것은 용두동 교습소 시절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용두동의 교습소는 참으로 초라했다. 컴컴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면서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그동안의 수소문과 발품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들어섰으나 못내 주춤거리는 나를 안경 너머로 바라보시던 선생께선 아무 말씀도 없이 장구채를 쥐시는 게 아닌가. 굿거리장단이었다. 나도 모르게 장단에 이끌려 춤을 춘 것은 지금도 모를 일이다. 입춤이었다. 마침내 장구채를 놓고 무심한 듯 바라보는 선생의 눈에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 있었다. 갑자기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내일부터 나오너라.” 이 말씀 한마디가 전부였다. 왜 왔는지, 춤이 어떠한지, 이름도 절도 묻지 않으셨다. 선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다음 날, 선생께선 시범을 보인다고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데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저 몸으로 춤은 어찌 추시려고? 아니, 제대로 가르칠 수는 있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연습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자마자 엄청난 기운을 뿜으시는 게 아닌가! 연습실을 꽉 채우다 못해 공간 자체가 터져나갈 듯한 거대함. 납작해져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묵직함. 이윽고 오른팔을 뻗어 드는데 순간, 공간의 모든 공기가 선생님의 손끝으로 휘몰아 감기는데 숨이 턱 막힌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춤사위였다. 새롭다 못해 경이롭다. 손사위, 발사위 하나가 들려지면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는데 펼쳐내고 뿌릴 때면, 팽팽하게 갇힌 숨이 하늘하늘 풀어져 흩날리는 놀라운 경험. 정갈했던 춤사위가 점점 속도를 높이는데 깨금발을 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던 분이 외발 사위 하나만으로 몇 박을 추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여느 춤과는 확연히 다른데 오금이 저린다. 그러면서도 시도때도 없이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춤이라니!

 

이날 선생께서 시연한 춤은 재인청 태평무였고 선생께선 이날 이후로 다시는 시연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을 고쳐 춤을 추어야 했던 춤이다. 돌이켜보면 이날은 그간 내가 걸어왔던 춤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로 접어든 특별하고도 운명적인 첫날이던 셈이다. 하지만 이날 나는 몰랐다. 선생의 춤은 재인청 예인들이 천 년을 이어 내린 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재인청 춤은 여무女舞가 판을 치는 우리 춤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바지춤이었다는 것을

용두동의 한 초라한 연습실. 선생께선 한마디 말도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장구채를 들고 굿거리장단을 치셨다. 무심한 선생의 눈매가 무서웠다는 기억. 그리고 입춤을 추었다. “내일부터 나오너라.”

 

그 첫날은 이게 끝이었다. 그리고 끝이 없는 재인청 춤과의 운명이 시작되었다.

 

용두동의 한 초라한 연습실. 선생께선 한마디 말도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장구채를 들고 굿거리장단을 치셨다. 무심한 선생의 눈매가 무서웠다는 기억. 그리고 입춤을 추었다. “내일부터 나오너라.” 그 첫날은 이게 끝이었다. 그리고 끝이 없는 재인청 춤과의 운명이 시작되었다.

 

* [재인청 춤꾼 이동안]  저자 정주미 선생의 동의와 진인진 출판사의 도움으로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송혜근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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