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으로 부자가 되는 시대를 만들자”… 제1차 국악진흥 기본계획 공청회 개최
문화체육관광부는 4월 17일 서울 전통공연창작마루에서 「제1차 국악진흥 기본계획(2025~2029)」 공청회를 개최하고, 국악 산업의 미래 전략을 본격 논의했다. 국악진흥법 제정 이후 수립되는 첫 국가 계획이라는 점에서 각계의 기대와 문제 제기가 이어진 이날 행사는 국악계와 정부, 현장 전문가,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악 진흥의 방향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행사는 문체부 이정우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그는 “전통음악이 공연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여전히 미미하다”며 “대중음악 못지않게 국악도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런던에서 국악 페스티벌을 진행하며 국악이 해외에서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국제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문체부 김진희 공연전통예술과장은 기본계획안의 핵심을 발표했다. 비전은 ‘국민과 함께 도약하는 국악’으로, △자원 관리 고도화 △접근성 확대 △시장 창출 △지속 가능한 향유 환경 조성의 4대 전략이 제시되었다. AI 작곡 플랫폼 구축, 국악기 바우처 및 악기 연구소 확장, 국악 다국어 용어집 발간, 국악의 날 제정 등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 명현 국악연구실장 직무대리는 중장기 계획을 통해 국악 향유 기반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서울, 남원, 진도, 부산에 이어 강원과 서산에도 지역 국악원이 건립될 예정”이라며 “AI 기반 작곡 플랫폼, 국악사전, 해외 전시 콘텐츠 확산 등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배영호 이사장은 “국악 산업은 이제 ‘부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산업화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5년 후 국악 공연의 객단가를 100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창업 생태계 조성, 유통 시스템 확립, 브랜드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배영호 이사장
국악방송 원만식 사장은 방송의 역할을 아카이빙과 인재 양성으로 규정했다.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를 통해 이날치 같은 스타들이 배출됐다”며 “지역 스테이션을 통한 분권화, 9만 건의 음원과 1만 2천 건의 영상 자료는 국악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국악방송 원만식 사장
지정토론자로 나선 임웅수 대한민국농악인협회 이사장은 “전통을 짊어지고 걸어온 민간 예술인들에게도 국악 진흥정책이 실질적 혜택을 줘야 한다”며, “오늘 국립기관 중심으로 이뤄진 논의에 민간 예술인들의 목소리도 함께 담겼다면 더욱 균형 있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라며, “교육, 공연장 활성화 등 기반 사업이 단계별로 잘 설계된 점은 반갑지만, 지자체 차원의 조례 제정이 미비한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웅수 대한민국농악인협회 이사장
이정필 전 부산문화회관 대표는 “지방 대도시조차 국악 기반이 약하다”며 “지역 간 국악 격차 해소와 실질적 예산 분배가 시급하다”고 지적했고, 김상연 전남대 교수는 “대학 국악 전공자 중 90%가 졸업 후 다른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며 체질 개선과 진로 다양화를 촉구했고, 서강대 정다샘 교수는 “국악 아카이브의 저작권과 접근성을 개선해 AI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공청회는 오는 6월 최종 발표될 「국악진흥 기본계획」의 윤곽을 가다듬는 첫 공식 논의의 장으로, 민간과 지역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 계획 수립의 초석이 되었다. 문체부는 “추가 공청회와 간담회를 통해 민간 의견을 적극 수렴해 최종안을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청회는 문체부와 국립기관의 계획 발표에 머무르지 않고 민간 예술인과 교육·기술·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국악타임즈가 현장에서 취재하며 가장 뼈아프게 느낀 지점은 “계획은 충분하다, 이제는 실행력의 문제”라는 공감대였다. 전통예술의 산업화, 지역 균형, 교육 커리큘럼 개편, AI 기술 접목 등 제안된 내용은 참신하고도 시급하지만, 이를 현실화할 인력, 예산, 권한의 배분은 여전히 제도 안에 머물러 있다.
이번 공청회는 단순한 행정계획 발표의 자리를 넘어, 국악계 내부의 생존과 구조 개선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국악타임즈는 이날 공청회를 취재하며, 국립기관 주도의 계획을 넘어, 국악인이 국악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국악 진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점을 실감했다.
배양호 이사장의 발언은 국악진흥이 더 이상 이상론이 아닌, 생존과 자립의 문제임을 상기시켰다. 국악이 산업으로서 자립하고, 창의적 인재가 국악을 기반으로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전통은 지속된다. 이제 국악계는 질문해야 한다. “계획은 많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먹여 살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