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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시대착오적 무형유산 제도, 변해야 한다

단체종목의 일률적인 예능보유자 불인정 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고령 전승교육사에 대한 구제와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
무용 종목 내 계보의 독과점 해소와 다양성 복원이 필요하다.

 

김승국의 문화산책, 시대착오적 무형유산 제도, 변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문화강국(K-Culture)으로 우뚝 섰으나, 전통문화의 뿌리를 지탱하는 ‘국가무형유산 제도’는 여전히 반세기 전의 경직된 행정 편의주의에 갇혀 있다.

 

지난 2024년 5월, 국가유산청이 출범하며 새로운 미래를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예능 종목 운영 기준은 전승자들에게 깊은 상실감과 갈등을 안겨주는 실정이다. 전통예술 현장에 평생을 몸담아온 예술인이자 목격자로서, 정부와 국가유산청에 4가지 핵심 제도 개혁을 강력히 촉구한다.

 

단체종목의 일률적인 예능보유자 불인정 방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종묘제례악,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농악, 선소리산타령, 남사당놀이, 탈춤, 처용무, 별신굿, 도당굿 등 고도의 개인 예술성이 요구되는 종목마저 ‘단체종목’이라는 이유로 보유자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종목의 구심점을 와해시키고 예능의 전승을 약화시키고, 전승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정 만능주의다. 아울러 선소리산타령의 경우 경기산타령과 서도산타령(놀량사거리)에 대한 교통정리와 형평성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

 

고령 전승교육사에 대한 구제와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 수십 년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종목 전승에 헌신하며 칠순, 팔순이 다 된 노(老) 전승교육사들이 배제된 채, 하위 단계인 이수자가 곧바로 보유자로 발탁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평생 공헌을 인정해 '예능보유자' 인정 혹은 ‘명예 예능보유자’ 추대 등 법적 결단이 필요하다.


무용 종목 내 계보의 독과점 해소와 다양성 복원이 필요하다. 살풀이춤과 태평무 등은 특정 계보 중심으로만 보유자가 지정되어 왔다. 근대 무용의 거목이자 재인청(才人廳)의 맥을 이은 ‘고(故) 이동안 계보’ 등 소외된 계보의 역사적 정통성을 적극 포용해야 한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위상에 걸맞은 예능보유자 복수 지정을 확대해야 한다. 1960년대 재정 부족 시절의 예산 아끼기식 ‘단수 지정’ 관례를 끝내야 한다. 보유자를 복수로 넉넉히 인정한다면 전승자 간의 소모적인 파벌 싸움이 종식되고, 다양한 유파가 공존하는 풍성한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무형유산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생명체다. 헌법 제9조가 명령한 ‘전통문화의 창달’을 위해 이제는 행정의 문턱을 낮추고 전통예술의 숨통을 틔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