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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이름은> 언어가 멈춘 곳에서 시작된 염혜란의 춤, 우리 시대의 모든 상처를 씻겨내는 가장 처연하고 아름다운 진혼무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 레이어(layer)의 직조
언어를 넘어선 치유, 염혜란의 '춤'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를 대변하는 치유의 서사

 

<내 이름은> 언어가 멈춘 곳에서 시작된 염혜란의 춤, 우리 시대의 모든 상처를 씻겨내는 가장 처연하고 아름다운 진혼무


조기숙: 발레 안무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명예교수

 

영화 <내 이름은>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아픔 중 하나인 제주 4.3을 다루고 있다. 정지영 감독의 시선은 4.3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 비극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이 작품은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되, 그 너머의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진혼곡이자 치유의 몸짓이다. 즉 이 작품은 역사를 증언하는 것을 넘어서, 그 역사가 남긴 파편들을 모아 현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진솔한 '씻김굿'이다.

 

1.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 레이어(layer)의 직조

 

영화는 4.3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곧 그것을 초월한다. 삶, 죽음, 생활, 계층,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침투한 폭력이라는 복잡한 층들을 정교하게 직조해 낸다. 감독은 이 무거운 주제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4.3이라는 커다란 용광로로 자연스럽게 끌고 감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 그 이상의 삶의 총체성과 본질을 마주하게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삶의 의지와 죽음의 공포라는 대립적인 요소들은 영화 안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4.3은 과거의 박제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겪는 구조적 폭력의 원형으로 치환된다. 이 영화가 훌륭한 이유는 4.3이라는 특수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이 지닌 무게감을 보편적인 인간의 고통과 실존의 문제로 확장해 수용했다는 점이다.

 

2. 언어를 넘어선 치유, 염혜란의 '춤'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지점은 인간이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터져 나오는 '춤'에 있다. 춤은 글이나 말로 환원될 수 없는 차원이다. 고통이 너무 깊으면 언어는 파편화되고 의미를 잃지만, 몸짓은 그 자체로 생존의 기록이 된다. 이점이 언어의 한계이자 춤이 필요한 이유이다.


배우 염혜란의 춤은 춤이 아니라서 춤이고, 잘 춘 춤이 아니기에 아주 잘 춘 춤이다. 그게 바로 진짜 춤이고 춤의 힘이다. 춤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놓쳐버린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사실 무용가들도 잘 추려는 생각을 내려놔야 춤을 잘 출수 있게 된다. 주인공의 날 것 그대로의 움직임은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치유하는 본령이 된다.


극 중 춤은 어떤 서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나 글로 치환될 수 없는, 몸 안에 켜켜이 쌓인 한과 슬픔을 분출하는 유일한 통로다. 기존의 춤 기량에 빠지지 않았기에, 그녀의 춤은 진실의 힘을 얻은 것이다.


정 감독은 영화 시사회에서 스스로 "춤을 모른다"고 말했지만, 실은 춤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있다. 그랬기에 인물의 심연에 닿는 가장 순수한 춤의 핵심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춤이 가져야 할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해방'을 꿰뚫어 본 것이다.

 

3.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를 대변하는 치유의 서사

 

<내 이름은>은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수많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대변한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며칠째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유는, 영화가 우리 내면에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나도 모르는 나의 트라우마'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상처를 입은 수많은 희생자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영화는 관객 각자의 마음속에 침잠해 있던 상처의 앙금을 건드려 깨운다. 이 작품은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되, 그 너머의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진혼곡이자 치유의 몸짓이다.


영화는 관객 각자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혹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는 눈물은 내면의 상처를 찾아내고 어루만지는 치유의 과정이다. 트라우마는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호명되고, 함께 울어줄 때 비로소 치유의 길로 접어든다. <내 이름은>은 그 아픈 역사를 대신 겪어내며 관객을 대신해 울어주고, 스크린 밖으로 손을 뻗어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를 넘어,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한 현대판 씻김굿이다. 과거의 원혼들을 달래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병든 마음까지 닦아내 준다. 우리는 이 영화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대면할 용기를 얻고 슬픔의 연대를 통한 씻김을 행하고 있다. <내 이름은>은 이렇게 우리 모두의 이름을 불러주며,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춤으로 가장 높은 곳의 치유를 완성해 낸다. 결국 이 영화는 고통받는 모든 영혼을 위해 바치는 현대판 '씻김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