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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아낙

 

아낙

 

김승국

 

굽은 등에 달을 지고 가을 밭을 매던 사람

손마디에 서린 눈물 마른 옹이로 굳어 가도,

자식 입에 밥 드는 소리 그것 하나 낙을 삼아

제 몸 태워 밤을 밝히던 달빛 닮은 내 어머니

 

모진 시집살이 멍 가슴 흘러내린 눈물 강물

등 돌린 서방의 빈 그림자 차마 밟지 못한 채

그저 모진 숙명이거니 가만히 받아안고서

빨랫장단 구슬픈 노래로 울음을 삼키던 사람

 

깊게 파인 이마 주름 마른 논바닥 닮았어도

자식들의 앞길에는 하얀 이팝꽃만 피우라시며

배고픔도 억울함도 먼지처럼 털어 흙에 묻던

당신은 들녘의 민들레 밟혀도 자라는 개망초였어라

 

어머니, 우리들의 고단했던 할머니여.

매서운 바람 살을 베어도 찔레꽃 향기로 살던 이여

 

등에 진 서러운 무게 이제는 새벽안개로 날리고

,다음 생엔 누군가의 무엇 아닌 제 이름 석 자로 피소서

 

참으로 애썼노라고 고생 많으셨노라고

저무는 노을빛 자락에
눈물의 헌시를 띄웁니다.

 


<시작노트>

 

이 땅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거친 숨소리를 받아 적으며 이 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언제나 '나'가 아닌 '너'를 향해 있었습니다. 어찌 아낙이라 하여 제 자신의 안위와 즐거움을 몰랐겠습니까. 그러나 그분들은 혹독한 시집살이의 매서운 서리도, 돌아선 서방의 시린 빈 그림자도 그저 묵묵히 받아안아야 하는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밤이면 밭을 매며, 혹은 차가운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구슬픈 민요 한 자락에 서러움을 짓이기던 손길을 기억합니다.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를 세상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여기며, 정작 자신은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손마디로 평생을 버텨낸 이들입니다. 들녘에 흔하게 피어난 민들레처럼,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개망초처럼,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끝내 향기를 잃지 않던 찔레꽃처럼 그분들은 그렇게 우리를 키워냈습니다.

 

이제는 그 고단했던 어깨의 짐을 내려놓으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다음 생에는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내라는 무게를 벗어던지고, 오롯이 제 이름 석 자로 피어나 자유롭게 흐르는 바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는 한평생 희생을 훈장처럼 달고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아낙에게 바치는 눈물의 위로이자, 뒤늦게 올리는 수고 많으셨다는 고백의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