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되지 못한 예인들의 숨결, 다시 무대 위에 잇다... 경기 원로예술지원 선정작 '이어서다-기록되지 않은 숨결', 과천시민회관서 감동의 무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가."
7일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2026 경기예술지원 <원로예술지원> 선정작 '이어서다-기록되지 않은 숨결'은 이 질문 하나로 공연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던졌다.
남기문 명인이 주최·주관하고 경기문화재단 후원, 한뫼국악예술단 출연, 기전예술인협동조합 제작으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화려한 무대보다 기록되지 못했던 원로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연 제목인 '이어서다'는 단순히 예능의 전승을 넘어 예술가의 삶과 철학, 기억과 숨결까지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공연의 해설을 맡은 김승국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공연의 취지를 설명하며 "1980년대는 우리 전통예술이 거대한 변화를 맞이한 시기였지만, 그 시대를 묵묵히 견뎌낸 원로 예술인들의 삶은 충분히 기록되지 못했다"며 "이번 무대는 사라져가는 원로 예인들의 기억을 영상과 글, 그리고 살아있는 몸짓으로 기록해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오늘 공연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무대가 아니라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묻는 자리"라며 "예술이 어떻게 이어지고 전승되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첫 무대는 심소승무였다. 김천흥 선생의 호인 '심소'를 따온 이 춤은 한성준으로부터 전승된 민속 승무에 김천흥이 궁중정재의 미학을 융합해 완성한 작품이다. 이날 무대에는 심소김천흥춤보존회장인 이순림 명무와 최미숙, 주정현, 조여원, 김명주, 박소원, 최리나가 함께 출연해 절제된 움직임 속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현대 25현 가야금 음악의 개척자인 김계옥 명인이 직접 편곡한 '25현 가야금 아리랑 독주곡'을 선보였다. 김 원장은 "25현 가야금은 서양의 하프나 피아노 못지않은 풍성한 화성과 음색을 가진 악기이며, 이를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김계옥 명인"이라고 소개했다. 안기옥류 가야금 산조의 정통을 계승한 김계옥 명인과 제자 이선진의 연주는 익숙한 아리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며 큰 박수를 받았다.
북녘 전통춤인 함경남도 검무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함흥권번의 전설적인 명무 고(故) 장홍심으로부터 고(故) 한순옥에게 이어져 전승된 이 춤은 검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춤사위가 특징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양승미 함경남도검무보존회장은 국립무용단 재직 시절부터 고 한순옥 명무에게 50여 년간 사사하며 함경남도 검무의 깊은 예술세계와 정신을 온전히 전수받은 대표적인 전승자이다.
스승의 춤과 예술혼을 계승해 함경남도 검무의 보존과 전승에 헌신해 왔으며, 현재 함경남도검무보존회장과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는 이영훈 부회장과 함께 북방 춤 특유의 강인한 기세와 절도 있는 춤사위, 역동적인 장단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이며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기존에 널리 알려진 진주검무 등 남도권 검무와는 또 다른 직선적이고 힘찬 미학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북녘 전통춤만의 색다른 매력과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정예진 명창과 수제자 서태경이 '녹음방초', '방아타령'을 선보이며 스승과 제자가 이어가는 전승의 가치를 노래했다. 정교한 가야금 연주와 병창이 어우러진 무대는 전통음악의 깊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했다.

왼쪽부터 김승국, 양승미, 오은명, 김계옥, 정예진, 이순림, 남기문 명인
후반부에는 과천을 대표하는 명무 오은명이 제자 박미영, 안지현과 함께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오은명 명무는 경기도 무형유산 '과천무동답교놀이' 상쇠놀이 보유자이자 한뫼국악예술단 단장, 이매방류 살풀이춤 이수자,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과천을 대표하는 전통예술인으로 손꼽힌다.
평생 전통춤의 전승과 교육에 헌신해 온 그는 수많은 이매방 선생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춤의 깊이와 예술성을 전문가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명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승국 원장은 "이매방 선생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오은명 선생의 춤은 전문가들이 모두 인정하는 명무의 경지"라고 소개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높였다. 이날 오은명 명무와 제자들이 남도 시나위 가락 위에 펼쳐낸 절제된 몸짓과 섬세한 호흡은 정중동의 미학을 오롯이 담아내며 한국 전통춤의 깊은 예술성과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전승의 가치를 무대 위에 아름답게 펼쳐 보였다.
공연의 대미는 남사당패 마지막 꼭두쇠 고 남운용 선생의 예맥을 잇는 남기문 명인의 안대미놀이가 장식했다. 남기문 명인은 남운용 선생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남사당패에 입문해 남사당놀이 전바탕을 익혔으며, 당대 최고의 명인들에게 다양한 연희와 기량을 사사받아 오늘날 남사당 예술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희인이다.
남사당패에서 장구를 뜻하는 은어인 '안대미'에서 이름을 딴 안대미놀이는 오늘날 설장구놀이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이날 남기문 명인은 제자 김정주, 주병원, 유지영과 함께 세월을 잊은 듯한 장단과 노련한 발림, 깊은 공력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특히 공연 중 제자의 상모 대가 부러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남기문 명인은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재치 있는 순발력으로 객석을 자연스럽게 이끌며 공연의 흐름을 이어갔다. 이는 유랑예인 집단인 남사당패가 지녀온 현장성과 재담, 관객과 호흡하는 연희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공연을 마친 뒤 김승국 원장은 "예인은 몸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말하며 남기문 명인의 오랜 예술혼과 장인 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했고, 객석에서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