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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거인의 어깨에 앉은 거인의 거대한 연주

남도의 숨결 이태백의 '길' 연주회

사진촬영/이원재

 

거인의 어깨에 앉은 거인의 거대한 연주

 

                                        (전)KBS 부사장, 저널리스트 임병걸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 앉은 난장이와 같다.

우리는 거인보다 더 멀리 사물을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거인보다 더 시력이 좋거나 신체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거인의 거대한 몸이 우리를 더 높은 자리에 들어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 존 솔즈베리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 준 녹차 팥빙수 같았던 연주


이제는 놀랍지도 않게 된 지구 온난화의 탓일 게다.

장마같지도 않은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반도가 불구덩이에 올려놓은 불판처럼 달궈지고 있다.

유럽을 강타한 폭염이 파미르 고원을 넘어온 것인지 폭염경보도 모자라 폭염중대경보라는 신종 단어가 공포를 안겨주던 7월의 둘째 일요일, 서울 강남의 작은 민속극장 '풍류'에서는 기세등등한 불볕더위를 차분히 잠재우는 연주회가 열렸다


남도의 숨결 이태백 '길' !

올해로 60년, 외길 국악인생을 걸어 온 이태백 명인이 때로 담담하게, 때로 격정적으로 풀어놓은 서늘하면서도 뜨겁고, 흥겨우면서도 애잔하게 풀어놓은 한바탕의 인생이야기에 더위는 온데 간데 없이 날아갔다.

무더운 여름이 가져다 준 끈적임과 숨막힘 대신, 내 몸과 영혼에는 푸른 대숲이 걸러낸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평생 국악 외길을 걸어온 장인과 그 장인과 함께 외로운 길을 의로운 길로, 힘든 길을 행복한 길로 만들어가는 국악의 도반들과 스승, 제자, 그리고 그 그윽하고 웅숭깊은 소리의 길을 알아봐주는 객석의 지음들이 함께 있어 가능한 자리였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수 '초망'


첫무대를 연 것은 무속음악의 정수랄 수 있는 진도 씻김굿을 모티브로 한 구음 '초망'이었다.

저승으로 가는 망자를 불러 즐겁게 대접한 뒤 다시 떠나보내는 절정의 순간을 담았다는 '초망'은 나를 숙연하게 했다.

남도의 명창이였던 어머니 이임례 명인의 뱃속에서부터 우리의 가락과 소리를 들었을 이태백 명인의 구음에 담겨져 진혼가는 그가 너무 어려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이기도 했다.

동시에 가난과 질병, 숱한 전란 속에서 통한 속에 숨져 간 조선의 모든 망자를 위로하는 이 구슬픈 진혼가는 그러나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애이불비" 우륵 선생이 제자들의 연주를 듣고 평하셨다는 이 말이 떠올랐다.

"슬프지만 비통해하지는 않는다" 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짐짓 궁금했는데 '초망'을 듣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구음의 대가 박병천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 이태백 선생의 목소리는 처량하지도 구슬프지도 않았다. 선생이 써 놓으신 곡 해설처럼 ' 죽은 자는 물론 산 자의 상처도 함께 씻어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나직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노래였다

선생과 비슷한 세월을 살아 온 나도 객석에서 '초망'을 들으며 때로 치열하게 때로 느슨하게 살아오면서 상처와 영광, 기쁨과 비탄을 함께 받았던 내 자신을 위로받고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구음과 함께 어우러진 선생의 아쟁과 징소리, 절제와 신명의 경계를 넘나드는 허윤정 선생의 거문과 선율과 김태영 선생의 장구도 '초망'의 격조를 더했다.

자칫 대성통곡으로 흐를 수 있는 망자에 대한 사무치는 한과 이별의 장이 어떻게 예술이 되고 신명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텍스트가 아닌 눈으로 귀로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노익장의 절정 '판소리 적벽가'


판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무지개나 극지방의 오로라와 같은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을 보는 듯, 감탄을 넘어 경탄을 느끼곤 한다.

서너시간의 긴 시간 동안 그 어려운 아니리에 발림까지 한사람이 만들어내는 저 섬세하면서도 웅혼하고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한 때 잠깐 판소리를 배워보겠다고 객기를 부렸던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한시간은 커녕 1분을 지속하는 것도 웬만한 수련과 내공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올해 87세의 어르신이랴!

 


이태백 선생에게 아쟁과 소리를 가르쳐 주셨다는 우리 시대 국악의 큰 어르신 김일구 선생이 들려주신 '적벽가' 조조 군사가 대패하는 대목은 '초망'으로 다소 숙연했던 풍류의 무대를 한바탕 천둥과 번개가 무시로 내려치는 다이나믹한 신명의 전쟁터로 바꿔놓았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에서도 가장 호방한 '적벽가'의 소리를 아흔을 바라보는 목소리도 감당할 수 있을지 짐짓 궁금했지만 기우였다.

자그마한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일구 선생의 소리는 순식간에 좌중을 불화살 쏟아지고 창칼이 쩔렁이는 전쟁터로 몰아갔고, 구음과 아쟁을 연주하던 이태백 선생은 고수가 되어 전쟁터의 나팔수보다 더 세차게 북을 두드렸다.

 

 

우리 소리의 길을 평생 걸어오신 스승과 제자의 호흡은 명료했고 박진감 넘쳤다.

군데 군데 관객을 향해서 보내시는 위트와 유머, 천진난만한 몸짓을 보노라니 김일구 선생의 작은 체구가 뻥튀기처럼 커지면서 무대와 객석을 뒤덮는 거대한 그물로 변신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구십년 가까운 세월 저 소리 속에 농축되고, 얼굴의 주름 속에 농축되고 응집돼 왔을 눈물과 집념, 고통과 환희의 나날이 그려졌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탄 거인 이태백의 '아쟁산조'


국악을 전공한 것도, 밤낮없이 듣는 것도 아닌 나는 솔직히 거문과와 대금, 아쟁 등 우리 음악에서 발전해가는 다양한 산조들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얼핏 들으면 그 소리가 그 소리같고 모티브의 전개와 흐름, 리듬과 선율이 서양음악만큼 다양하지 않은 국악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무슨 무슨 '류'라는 명인만의 독창적인 네이밍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 다른 명인들과는 구별되는 경지를 개척했다는 것일테니 존경받아 마땅하다.

 


어릴 적 이태백 명인의 귀를 홀렸던 아쟁소리가 어쩌면 진도에서 자란 천진무구한 소년을 평생 국악외길로 끌었던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이날 함께 연주하신 김일구 선생님과 작고하신 박종선 선생님으로부터 사사했다는 아쟁소리를 발판으로 그는 '보성제 산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야무지게 만들어 곡 해설을 도운 팜플렛의 해설을 보니 "계면조 비중을 줄이고 우조와 경조를 추가했으며, 씻김굿과 경드름 등 다채로운 조성을 결합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아쟁산조를 판소리처럼 변화무쌍한 가락으로 발전시킨" 산조라고 한다.

듣는 내내 이 해설을 기초로 다른 산조와 구별되는 지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아쟁 산조 자체를 다양하게 들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저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에 비해 격정적이고 거칠게 들리던 아쟁이 이날따라 부드럽게 들리고 서양음악의 변주곡처럼 다양하게 변해가는 소리를 느끼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아쟁 연주를 들어볼 작정이다.

그러나 저러나 아쟁 소리를 들을라치면 옥중 큰 칼을 차고 쑥대머리를 구슬프게 부르는 춘향이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다짜고짜 눈물부터 나오려는 심사는 나만 그런지 궁금하다

 

철가야금이라는 낯선 악기의 새로운 발견 '여정'


사실 아쟁보다 내게는 더 낯선 국악기가 철가야금이다.

가야금이야 비단실이 내는 그 유려함과 그윽함 때문에 산조이던 병창이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악기의 소리다.

그러나 쇠줄로 만든 철가야금은 소리를 들을 기회도 많지 않거니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레퍼토리 역시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1960년대 이후 보다 넓은 무대에서 더 큰 공명을 위해 개량됐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던 철가야금 소리는 현장에서 들으니 훨씬 더 맑고 투명했다.

금속성이 지닌 날카롭고 건조할 것 같은 소리 대신, 나무와 비단실로 만들어진 전통 가야금에 뒤지지 않는 청아한 소리가 듣는 내내 나를 담양 소쇄원으로 안내했다.

하늘로 죽죽! 뻗은 대나무 숲속에 들어앉아 바람결에 일렁이는 댓잎을 따다 담백한 댓잎차를 우려마시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이용구 선생의 깊고 그윽한 퉁소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태백 명인의 청아하고 투명한 철가야금 소리, 여기에 김태영 선생의 맛깔난 장구소리가 빚어내는 글자 그대로 '앙상블'에 스르르 내 눈은 감기고,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흥얼흥얼 소리가 기어올라왔다.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아쟁에 이어 철가야금 연주도 찾아서 부지런히 들어봐야겠다.


그런데 이태백 명인은 도대체 이 많은 국악의 장르를 어떻게 다 수련했을까?

그것도 구색을 맞추는 정도가 아니고 아쟁과 철가야금, 북과 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니, 한 인간으로서, 한 예술인으로서 성취할 수 있는 끝은 어디일까 존경과 감탄이 교차했다.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기였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설, 화가이면서 과학자, 의사, 철학자, 문학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태백 명인은 우리 국악계의 다빈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곡 해설집에서 이태백 명인을 '총체적 예인' 이라고 표현했던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국악명인들이 펼친 우리소리의 파노라마 '시나위'


국악이 서양음악에 비해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때로운 단조롭게 들릴 때 나는 시나위를 듣는다.

흔히 서양음악의 재즈에 비견되는 시나위는 그 신명과 즉흥성 악기들간의 절묘한 조화와 치열한 배틀에서 결코 재즈에 뒤지지 않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태백 명인과 이날 출연한 우리 시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벌인 한바탕 악기들의 난장판!이야말로 우리 국악이 어디까지 흥겨울 수 있고 어디까지 다채로울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요즘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BTS의 K-팝이나 케데헌 열풍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전통 국악의 역동성과 신명에 있지 않을까 한다.

 


김일구 선생께서 가야금과 아쟁을 번갈아 연주하시며 연신 무대를 한껏 흥겹게 달궈주셨고, 허윤정 선생의 거문고, 이용구 선생의 대금과 이태백 선생의 아쟁이 주거니 받거니 기량과 흥취를 뽐내며 무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특히 1시간 반 남짓의 긴 연주 내내 풍채만큼이나 든든하게 소리를 받쳐 준 김태영 선생의 장구는 재즈 연주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콘트라베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땀흘린 발걸음 끝에 산 정상에 올라서면 순간 발아래 펼쳐지는 온 세상의 끝에서 끝, 벅찬 가슴으로 한아름 안겨오는 하늘 땅 사람 나무 꽃 짐승 ......

이른바 '파노라마'라는 풍광이 소리로 변모해 두 귀로 들어오는 세상 모든 선율과 리듬과 노래, 시나위는 소리의 파노라마였다.

우리 시대 대가들이 뿜어내는 시나위의 선율과 리듬으로 마침내 자그마한 풍류 공간이 터져나갈 듯 부풀어 오르자 객석의 관객들도 흥을 못이겨 연신 박수와 추임새를 넣고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들썩, 시나위 연주의 훌륭한 조연이 되었다.

 

특히 내 뒷자리에 앉았던 중년의 여성분은 아마도 국악인이신 듯 한데 어찌나 맛깔나게 추임새를 넣으시던지, 새삼 객석과 무대가 까마득히 먼 서양음악과, 객석이 무대고, 연주자가 관객인 우리 국악의 무대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다.

왠지 어색하고 쑥쓰러워 추임새를 넣으려다 주춤주춤하는 내게 마지막 숙제가 또 하나 생기는 순간이었다. 과감히 추임새 넣어보기!


인생을 연주하는 명인 이태백


흥타령과 진도아리랑을 관객과 함께 부르는 어울림의 무대를 끝으로 한시간 반이라는 짧지 않는 소리의 굿판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 흥겨운 소리의 파노라마에 함께 한 시간 내내 나는 행복했다.

무더운 여름을 담담히 견뎌야 할 결코 젊지않는 내 육신과 영혼에게 주는 든든한 선물이었다


이 향기롭고 신명나는 무대를 한층 격조높게 기획한 국악인 송영숙 님의 연출력도 돋보였다, 장황하거나 상투적이기 쉬운 연주해설 대신 붓과 먹으로 담담히 써내려간 이태백 선생의 인생과 음악이야기, 국악 외길을 걸어온 명인의 자부심과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존경과 사랑, 함께 하는 벗들에 대한 감사를 침묵과 먹물에 버무린 스크린 문자 해설은 감동을 더했다.

연주와 연주 사이 귓전을 흘러간 연주의 여운을 추스르고, 새롭게 듣게 될 다음 연주에 대한 기대를 지그시 부풀게 하는 참신한 해설방식이었다.

 


그야말로 한민족의 정서와 삶속에 녹아있는 '풍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풍류' 민속극장 객석을 일어서면서 나는 국악 못지않게 나를 매료시키는 재즈의 명인 한 사람의 연주 장면이 이태백 명인의 연주 장면과 겹쳤다.

존 콜트레인!

1950년대 비밥재즈 분야에서 색소폰 연주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존 콜트레인의 연주에 대해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연주자는 록을, 팝을, 혹은 재즈를 연주하지만 존 콜트레인은 인생을 연주한다"


이날의 주인공 이태백 명인의 연주를 들으며 떠올랐던 말이다.

어떤 연주자는 가야금을, 거문고를, 대금을, 아쟁을, 북을, 목소리를 연주하지만 이태백은 '인생'을 연주한다.

어쩌면 이태백 명인이 현악기와 타악기 그리고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악기를 다루는 총체적 예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회상대로 이미 우리 국악의 정기가 온 섬을 휘감고 있는 진도에서 태어나 소리를 하는 부모님의 뱃속에서부터 국악을 듣고 어린 시절 역시 예향인 목포에서 국악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라고, 이후에도 근 현대 국악의 명인들을 스승으로 사사하면서 국악은 그에게 단순히 익혀야 할 대상, 먹고 살아야 할 직업이 아니라 그의 피와 살 뇌와 심장 눈과 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에게 국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몸을 연주하는 것이고 인생을 연주하는 것일 것이고 듣는 이에게도 단순한 악기 연주를 넘는 깊은 감동과 울림, 그리고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용구(대금·퉁소), 허윤정(거문고), 김일구(소리·아쟁·가야금), 이태백(소리·아쟁·북), 김태영(장구·소리)

 

함께 연주해주신 이태백 명인의 스승 김일구 선생과,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을 곁눈질하며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구절로 유명해진 경구도 떠올렸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 앉은 난장이와 같다. 우리는 거인보다 더 멀리 사물을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거인보다 더 시력이 좋거나 신체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거인의 거대한 몸이 우리를 더 높은 자리에 들어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태백 명인도 누누히 강조하고 또 감사를 표하고 있듯이 그가 오늘날 이룬 거대한 음악적 성취는 결코 혼자의 것이 아니다.

그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또 본인이 가진 모든 기량을 쏟아부어주신 거인같은 스승들의 은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국악과 국악인들에게 결코 녹녹치 않았던 우리 근현대의 시간을 온 몸으로 뚫고 나가 오늘을 일궈 낸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어서 오늘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날의 연주 테마였던 '길'은 이 명인이 홀로 걸어온 길이 아니고 부모와 스승 벗들과 제자들이 함께 걸어온 '모두의 길' , 또 함께 나아가야 할 '미래의 길' 에 다름 아니다.

 


36년간 방송 저널리스트로 살아오면서 그 치열하고 숨막히는 일과 공간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음악이었다. 은퇴 후 더욱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남은 여생의 동반자 역시 음악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연주자에 아랑곳없이 음악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이날의 연주도 어김없이 내 몸 어딘가에 내 뇌리 어딘가에 단단히 자리잡았을 것이다.


큰 무대, 감동의 무대를 마무리하면서 이태백 명인은 옆에 계셨던 김일구 선생께서 90살이 되시는 2029년, 적벽가 완창 무대를 만드시기를 소망하면서 자신이 고수가 되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적벽대전의 아우성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흐뭇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디 3년 뒤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때 나도 다시 아흔의 대가와 칠순을 바라보는 또다른 제자 대가의 웅혼한 예술 인생이 구비구비 적벽강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