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워야 더 깊어집니다" 박애리 명창이 멈추지 않는 이유... 고창웰파크시티에서 만난 박애리 명창
"고창에 오면 쉬러 왔다기보다 또 다른 공부를 하게 됩니다."
지난 7월 8일부터 15일까지 전북 고창웰파크시티에서는 판소리 명창 박애리와 제자들이 함께하는 산공부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소리 '사철가'를 배우는 특별 강좌도 마련돼 참가자들에게 우리 소리의 매력을 전했다.
전북 고창의 고창웰파크시티는 최근 국악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이 머물며 몸과 마음을 쉬고, 소리와 춤을 함께 익히는 '산공부'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국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술과 치유, 배움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도 수업을 참관한 뒤 박애리 명창과 고창웰파크시티 내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은 예상했던 '명창의 강의'와는 조금 달랐다. 박애리 명창은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를 세심하게 듣고, 잘된 부분은 아낌없이 칭찬하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음 하나, 장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는 시종일관 따뜻했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에 수강생들은 어느새 긴장을 풀고 함께 '사철가'를 따라 불렀다.

사철가를 가르치는 박애리 명창
기자 역시 자연스럽게 수업에 참여해 한 대목을 함께 배우며 판소리의 묘미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박애리 명창의 태도였다. 무대 위 스타가 아닌, 한 사람의 스승으로서 끝까지 집중하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어떤 자리에서도 저렇게 사람을 대하겠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수업을 마친 뒤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그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최근 박애리 명창은 강원도립극단의 신작 소리극 '까만 인절미' 연습에 한창이라고 한다. 창극이 아닌 연극 무대에 소리꾼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작품은 천주교 박해 시대 실존 인물인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의 삶을 모티브로 한다. 신앙을 지키다 옥고를 치르는 과정에서 막내아이를 잃고, 결국 살아남은 자식들을 위해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애리 명창은 "처음에는 종교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결국 이 작품은 신앙보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소리극 '까만 인절미'에서 이성례 역을 맡은 박애리 명창
작품 제목인 '까만 인절미'에도 깊은 상징이 담겨 있다. 부모를 모두 잃을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전하기 위해 품속에 간직했던 인절미는, 거리에서 떠돌며 검게 변한 손때가 그대로 묻어 새하얀 떡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사형을 앞둔 어머니는 그 떡을 받아 들고 "세상을 떠나며 가져갈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다.
그가 이번 작품을 더욱 의미 있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작 주체가 강원도립극단이라는 점이다. 창극단이 아닌 연극단체가 우리 소리와 장단, 춤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적인 연극'을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극단 배우들이 직접 북을 배우고 소리를 익혀 무대에 서며, 박애리 명창은 이 과정이 한국 공연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소리가 대신 전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연극 속에 소리가 더해질 때 우리만의 정서가 훨씬 깊게 전달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박애리 명창은 망설임 없이 "배움"을 이야기했다. "창극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다른 장르에서 배우는 경험이 결국 저를 더 깊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공부하고 경험해야 그것을 후배들과 제자들에게도 제대로 전해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는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춘천을 오가며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 학교 강의와 공연 일정까지 겹친 상황에서도 "이번 경험이 큰 배움이 될 것 같았다"며 웃었다.
올 하반기에는 또 다른 도전도 기다리고 있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출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마당놀이 역시 새로운 배움이 될 것 같아 선뜻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양한 활동 속에서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판소리였다. 박애리 명창은 2018년 '춘향가' 6시간 완창, 2020년 '심청가' 5시간 완창에 이어 꾸준히 완창 무대를 이어오고 있다. 이미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명창에게 완창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후배들이 '선생님은 이제 완창 안 하셔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왜 계속 하세요?'라고 묻곤 해요. 그런데 저는 그래야 공부가 됩니다. 수행하듯 제 자신을 갈고닦는 과정이죠. 다른 장르를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가장 지켜야 하는 것은 판소리"라며 "그 중심을 놓치지 않아야 어떤 작업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애리 명창은 국악을 향한 관심이 더욱 넓어지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전했다. "제가 아니라도 판소리와 전통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또 새로운 사람들이 이 길을 선택하게 되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박애리 명창과 송혜근 국악타임즈 대표
짧지 않은 대화가 끝났을 때 처음 수업에서 느꼈던 인상이 다시 떠올랐다. 무대 위 화려한 명창 이전에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치고,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박애리를 '명창'이라 부르지만, 그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단어는 어쩌면 '평생 공부하는 소리꾼'일지도 모른다.
고창의 맑은 공기 속에서 울려 퍼진 '사철가'는 박애리 명창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그 태도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방식까지 함께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