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국의 문화산책] 스캔들에 가려진 세종조의 천재 여악(女樂), '초요갱(楚腰䡖)'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조선조의 명기 황진이나 논개는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정사(正史)인 실록에 무려 16번이나 이름을 올리며 당대 조정을 뒤흔든 전설적인 여인이 있다. 세종부터 예종 시기까지 활동했던 궁중 여악(女樂)의 거장, '초요갱'이다. 그동안 대중에게는 왕자들과 얽힌 자극적인 치정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사실 국악계가 진정으로 기억해야 할 그녀의 본질은 세종조 문화 르네상스를 온몸으로 지켜낸 독보적인 천재 멀티 아티스트였다.
그녀의 삶은 시작부터 가혹했다. 본래 한양의 평범한 양민의 딸로 태어나 명문가 사내의 첩으로 들어갔다가, 남편이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역모로 처형당하면서, 하루아침에 가족 전체가 국가 소유의 공노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늘은 그녀에게 잔인한 운명과 함께 천재적인 재능을 주었다. 가무악 전반에 탁월한 소질을 보인 그녀는 관청에 소속된 기생으로 발탁되었다가, 국가 음악 관청인 관습도감(慣習都監·장악원의 전신)의 ‘여악(女樂)’으로 발탁되었고, '개미처럼 허리가 가느다란 절세미인'이라는 뜻의 예명, '초요갱'을 얻으며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피어났다.
그녀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조선 최고의 음악가 박연이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박연이 그녀를 발탁하여 직접 제자로 삼아 가야금과 거문고, 그리고 깊은 음률 이론을 가르쳤다. 당시 세종대왕과 박연이 새로 만든 궁중 아악은 난이도가 너무 높아 내로라하는 남성 악공들도 쩔쩔맸는데, 초요갱은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완벽히 마스터해 냈다. 정악 가야금의 거장이자 《봉래의》나 《정대업》 같은 대규모 궁중정재(무용)의 대형을 이끄는 수석 무용수, 여기에 격조 높은 가창력까지 겸비했으니 그야말로 '가무악 일체'를 온몸으로 구현한 대체 불가능한 예인이었던 셈이다.
워낙 독보적인 매력을 가졌다 보니 평생 서슬 퍼런 스캔들과 권력투쟁에 휘말려야 했다. 처음에는 세종대왕의 아들 평원대군의 눈에 들어 그의 첩으로 들어갔으나 그가 요절하자 그녀를 차지하려는 사내들 간에 살인 사건이 나고 조정이 발칵 뒤집힐 때마다 신하들은 그녀를 처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왕과 조정이 그녀를 사면하고 대궐 무대로 복귀시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초요갱은 세종조의 노래와 춤, 악기를 온전히 물려받은 유일한 자이니, 그녀가 사라지면 나라의 음악이 끊기어 조종(祖宗)의 뜻에 누를 끼칠까 두렵다"라는 실록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법과 유교적 엄숙주의마저 뛰어넘을 만큼, 그녀는 나라의 음악적 맥을 잇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 자산이었다.
출생의 비극을 딛고 일어나 장인정신 하나로 권력을 굴복시키고 살아남은 초요갱의 삶은, 황진이를 뛰어넘는 완벽한 서사를 품고 있다. 국악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매력적인 인물이 아직 대작 드라마나 영화, 혹은 국립창극단의 대형 창극이나 한국형 창작 뮤지컬로 무대화되지 못했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무대 위에서 세종조의 장엄한 아악과 정악 가야금 연주가 라이브로 흐르고 화려한 궁중 무용이 재현된다면, 그 자체로 전 세계를 사로잡을 독창적인 K-콘텐츠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사생활의 가십 뒤에 가려져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천재 예인 초요갱. 이제는 그녀를 국악사의 당당한 거장으로 복원하고, 그 치열했던 장인정신을 우리 국악계의 소중한 자부심으로 함께 공유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