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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명인, 명창, 명무’의 자격

 

[김승국의 문화산책] ‘명인, 명창, 명무’의 자격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요즘 국악 공연 포스터를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명인(名人), 명창(名唱), 명무(名舞)라는 타이틀이다. 평생 전통 예술에 헌신한 정상급 예술인에게 헌사하는 최고의 극찬이자 영예로운 호칭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호칭들이 다소 남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객관적인 검증이나 치열한 공력에 대한 확인 없이, 마케팅이나 홍보를 위해 너무 쉽게 쓰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칭호가 흔해지면, 역설적으로 그 이름의 진짜 가치와 전통예술의 권위는 희석되고 만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명(名)’의 반열에 오르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기준이 충족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 독보적인 예술적 경지에 이른 분에게만 해당하는 명칭이다. 단순히 테크닉이 뛰어난 것을 넘어 자신만의 깊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하는 점이다. 명창이라면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한바탕 이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완창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낼 힘이 있어야 하고, 명인이라면 산조 전 바탕을 독주하며 즉흥적인 변주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반짝스타’나 기량이 뛰어난 신진 예술가에게는 이 칭호를 쓰지 않는다. 전통 예술에서는 수십 년간 한길을 걸으며 쌓아 올린 세월의 무게를 장인 정신의 핵심으로 본다. 최소 30~40년 이상 묵묵히 무대를 지켜온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역사적 무게감이다.

그리고 뿌리 깊은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스승의 계보를 이어받아 그 유파의 예술을 올바르게 전수받았는가(법고), 동시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 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지를 열었는가(창신)가 기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동료와 평단, 대중의 객관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칭하거나 소수의 지인끼리 주고받는 호칭은 의미가 없다.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할 권위 있는 국악 경연대회를 통해 공적으로 기량을 검증받았거나, 평론가와 동료 예술인들 사이에서 "그의 실력과 공로는 반박할 수 없다"라는 묵시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명인, 명창, 명무’에서 ‘명(名)’자는 이름날 명 자이지만, 우리 전통 예술에서는 ‘목숨 명(命)’ 자만큼이나 무겁게 다루어져야 할 가치다. 평생을 바쳐 예술의 길을 걸어온 선배 예술인들의 피와 땀이 담긴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진정으로 명예로운 칭호로 남겨둘 때, 우리 전통 예술의 품격도 비로소 지켜진다. 무분별한 남발을 경계하고, 엄격한 안목으로 진짜 명인들을 예우하는 국악계의 건강한 토양이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