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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춤에는 그 춤의 음악이 있다…‘영남무악-이음과 지음’, 영남춤의 뿌리를 깨우다

고재현·강미선·장순향·박월산·이주희·박경랑, 여섯 춤꾼이 펼쳐낸 영남춤의 계보
진옥섭 연출·정영만 음악감독, 산수계와 남해안별신굿에서 영남춤의 음악적 뿌리 조명
화문석입춤·영남입춤·승무·학춤·오북춤·교방소반춤…춤과 음악, 관객이 하나 된 ‘판’

 

춤에는 그 춤의 음악이 있다…‘영남무악-이음과 지음’, 영남춤의 뿌리를 깨우다

 

“예부터 판을 이야기할 때 ‘일청중(一聽衆), 이고수(二鼓手), 삼명창(三名唱)’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가 청중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극장은 손님이 꽉 찬 극장입니다.”

 

진옥섭 연출의 첫마디처럼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이날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지난 7월 26일 오후 5시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열린 2026 영남댄스페스티벌 ‘영남무악(嶺南舞樂)-이음과 지음’은 영남춤의 전통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춤을 낳고 키운 음악과 예인들의 삶까지 되짚어보는 무대였다.

 

진옥섭이 기획·연출하고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이 음악감독을 맡은 이번 공연에는 고재현, 강미선, 장순향, 박월산, 이주희, 박경랑 등 여섯 춤꾼이 참여했다.

 

고재현의 화문석입춤을 시작으로 강미선의 영남입춤, 장순향의 승무, 박월산의 학춤, 이주희의 오북춤, 박경랑의 교방소반춤까지 이어지며 서로 다른 계보와 미감을 지닌 영남춤의 면면을 펼쳐 보였다.

 

춤 사이사이 진옥섭의 해설과 정영만 명인의 대담이 이어졌고, 옛 신문자료와 사진을 통해 통영의 산수계(山水契), 신청(神廳), 남해안별신굿과 부산·마산·진주·고성·통영을 오가던 예인들의 삶이 무대 위에 되살아났다.

 

이번 공연에서는 정영만 명인이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장구 이현호, 피리 정석진, 대금 정승훈, 해금·아쟁 정은주, 가야금 이정민이 함께해 영남 대풍류와 시나위를 중심으로 춤의 호흡을 받쳤다.

 

바다는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그곳에서 생업을 이어온 어민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사와 풍어를 기원했고, 그 절박한 기원 속에서 굿과 음악이 태어났다. 그 음악적 유산을 지금까지 품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이 남해안별신굿이다.

 

‘영남무악’이라는 공연 제목처럼 춤과 음악은 애초부터 분리된 두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판에서 함께 성장해온 예술이었다.

 

통영 ‘산수계’, 부산·마산·진주·고성의 명인들이 모이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된 것은 통영을 중심으로 이어졌던 ‘산수계’에 대한 조명이었다.

 

진옥섭은 1928년 1월 29일자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제강점기 신문자료를 화면에 띄워 산수계의 흔적을 소개했다. 또한 당시 통영을 비롯해 부산과 마산, 진주, 고성 등지의 명가객과 악사들이 서로 교류하며 연주했던 역사를 설명했다.

 

공연 중 마련된 ‘예기(藝技)와 무악(舞樂)’ 대담에서는 정영만 음악감독이 직접 무대에 올라 진옥섭과 이야기를 나눴다.

 

정영만 명인은 여섯 살 무렵 산수계와 관련된 행사에서 촬영한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비롯해 여러 옛 사진 속 인물들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던 예인들의 기억을 하나씩 풀어냈다.

 

정영만 명인과 진옥섭 사회자

 

정 명인은 통영 신청과 예인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소리와 춤, 악기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통영에만 머물지 않고 부산과 마산, 진주 등지의 예인들과 교류하면서 음악적 세계를 넓혀갔다.

 

당시에는 김계화, 김수악, 송화영, 김애정 등 이름난 예인 네 명만 한 잔치에 모여도 작은 잔치가 큰 잔치로 변할 만큼 그들의 존재감이 컸다고 정 명인은 회고했다.

 

옛 예인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행정구역의 경계는 큰 의미가 없었다. 통영의 예인이 부산으로 오고, 마산과 진주의 명인들이 함께 연주했으며 춤꾼과 소리꾼, 악사들이 잔치와 풍류판을 따라 이동했다. 그 만남 속에서 가락은 서로 섞였고 춤 또한 끊임없이 변화했다.

 

진옥섭은 “영남의 춤이면 그 춤에 맞는 음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남해안별신굿과 산수계의 음악적 전통이 영남춤을 이해하는 중요한 뿌리임을 강조했다.

 

고재현 화문석입춤·강미선 영남입춤, 서로 다른 계보의 ‘영남 멋’

 

첫 춤판은 고재현의 화문석입춤과 강미선의 영남입춤이 열었다.

 

진옥섭은 작품에 앞서 영남춤을 전승해온 명무들의 계보를 짚으며 영남춤이 어느 한 명무에 의해 고정된 형태로 완성된 춤이 아니라 여러 지역과 예인들의 교류 속에서 끊임없이 ‘손질’돼 온 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재현과 강미선의 두 입춤은 같은 영남이라는 큰 뿌리에서 출발하면서도 서로 다른 호흡과 몸짓으로 영남춤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장순향 승무, 기억 속 김애정의 춤을 다시 무대에 세우다

 

장순향의 승무는 이번 공연의 주제인 ‘이음’의 의미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무대 중 하나였다.

 

장순향은 젊은 시절 가무악의 명인 김애정에게 춤을 배웠다. 이후 이매방 문하에서 50년 가까이 이매방류 춤을 익히며 살아왔지만, 김애정의 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워졌다.

 

장순향 승무

 

신무용의 확산과 무형문화재 지정 과정 등을 거치면서 일부 전통춤은 제도적 전승체계를 갖춘 반면, 이름난 명무들의 춤조차 전승자를 찾지 못해 사라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장순향은 20대에 직접 배웠던 춤과 몸에 남은 감각, 오랜 기억을 하나씩 되살리며 김애정의 승무를 다시 복원했다.

 

진옥섭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접하는 승무와 이 춤의 차이에도 주목했다. 승무가 무대예술로 발전하면서 장삼의 움직임과 북가락 등이 더욱 크고 화려하게 확장됐다면, 김애정 계열의 승무에서는 그 이전 시대가 간직했던 고풍스러운 춤의 호흡과 미감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라질 뻔했던 한 명무의 춤이 제자의 몸과 기억을 통해 다시 무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박월산 학춤, 사라져가는 ‘학’을 몸으로 기억하다

 

이어 박월산이 학춤을 선보였다. 박월산이 전승하고 있는 학춤 역시 영남지역 예인들의 노력 속에서 오늘까지 이어진 춤이다. 학의 외형적인 움직임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을 넘어 날개의 움직임과 고고한 자태, 생명력을 사람의 몸으로 형상화한다.

 

박월산 학춤

 

춤은 그렇게 한 시대 사람들의 몸짓뿐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던 시선까지 후대에 전하는 또 하나의 기억이 됐다.

 

이주희 오북춤, 부산에 뿌리내린 강태홍의 가락

 

공연 후반부에는 이주희의 오북춤이 객석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진옥섭은 이주희의 무대를 소개하며 부산에서 활동했던 강태홍 명인의 음악적 계보를 짚었다.

 

전라도 무안 출신인 강태홍은 말년에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뛰어난 가락을 지역 예인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전해진 북가락은 후대의 춤꾼과 명무들에게 이어지며 부산지역 북춤의 중요한 음악적 자산이 됐다.

 

이주희 오북춤

 

무대 위 이주희는 여러 북을 넘나들며 강렬한 타법과 춤사위를 펼쳐냈다. 이 순간 북은 춤의 반주를 담당하는 악기가 아니었다. 춤꾼 스스로 북가락을 만들어내고, 자신이 만든 소리에 다시 몸이 반응했다. 춤과 음악의 경계가 사라지고 힘찬 북가락이 예지당을 울릴 때마다 객석에서도 추임새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경랑 교방소반춤, 사랑방 풍류의 멋과 흥을 한판에 풀어내다

 

공연의 대미는 박경랑 명무의 ‘교방소반춤’이 장식했다. 교방소반춤은 영남 사랑방 풍류의 한 장면을 춤으로 엮어낸 작품으로 박경랑 명무의 섬세한 균형감각과 단아한 춤사위가 돋보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박경랑 교방소반춤

 

소반을 들고 움직이는 절제된 몸짓에는 영남 특유의 신명과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함께 담겼다. 박경랑은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춤사위로 판을 몰아가고, 때로는 교태스럽고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객석을 끌어당기며 관객들의 흥을 한껏 돋웠다.

 

특히 소반 위에 잔을 올려 손님에게 건네는 장면은 옛 사랑방 풍류의 정취를 무대 위에 되살렸다. 이날 박경랑 명무의 소반에 놓인 잔을 받은 사람은 객석에 자리한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이었다.

 

앞서 진옥섭은 공 구청장을 객석에 소개하며 그를 특별히 초대한 이유도 밝혔다. 공한수 구청장은 무연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씻김굿을 마련하는 등 우리 전통의례와 국악에 각별한 관심과 인연을 이어온 인물로 소개됐다.

 

그 이야기를 들은 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고, 이후 박경랑 명무가 건넨 술잔을 공 구청장이 받으면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박경랑은 작은 소반 하나를 들고 균형과 절제, 흥과 교태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히 섬세한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소반과 몸이 하나가 되는 듯한 춤사위를 펼치면서 영남춤 특유의 신명과 풍류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음과 지음’…전통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것

 

고재현의 화문석입춤, 강미선의 영남입춤, 장순향의 승무, 박월산의 학춤, 이주희의 오북춤, 박경랑의 교방소반춤을 통해 서로 다른 영남춤의 계보를 펼쳐 보이는 동시에 그 춤 뒤에 존재했던 사람과 음악, 지역의 역사를 함께 무대로 불러냈다.

 

무엇보다 정영만 명인의 증언은 기록만으로는 복원하기 어려운 근현대 영남 예술사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통영의 신청과 산수계, 남해안별신굿 그리고 부산·마산·진주·고성을 오가며 활동했던 예인들. 그들은 오늘날처럼 춤과 음악, 소리를 명확하게 장르로 나누지 않았다. 잔치와 풍류판에서 소리꾼과 악사, 춤꾼이 만나 서로의 예술을 주고받았다.

 

‘이음’은 옛것을 그대로 복제하는 일이 아니다. 선대에게 받은 춤과 음악을 자신의 몸과 시대를 통과시켜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이다. 그리고 ‘지음’은 그 전통 위에 오늘의 예술가가 다시 자신의 춤과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7월 26일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펼쳐진 ‘영남무악-이음과 지음’에는 선대 명무들의 춤이 후대 춤꾼들의 몸으로 이어졌고, 남해안의 오래된 가락은 악사들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것이 이날 ‘영남무악’이 보여준 이음이고, 또 새로운 지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