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 8주기를 맞아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오늘은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님의 기일이다. 193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2018년 8월 23일 세상을 떠나셨으니, 어느덧 올해로 8주기를 맞는다.
선생님과 나의 인연은 깊다. 1970년대 ‘공간사랑’에서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내가 국가무형문화재 남사당보존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두 번째 인연으로 이어졌다.
심우성 선생님은 ‘1인극의 거장’이었다. 선생님은 1987년 아시아1인극협회를 창립하고 1988년 '아시아1인극제'를 처음으로 개최하며 1인극의 대부로 활동했다. 단순히 옛것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 4·3 사건을 다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4·3 고개를 넘어간다>, 세월호 참사를 위로하는 <넋전 아리랑> 등 시대의 아픔과 민족의 문제를 전통 연희로 풀어내는 실천적 예술을 선보였다.
평생을 전통 민속연구와 계승에 바친 거목, 심우성
평생을 전통 민속문화의 연구와 계승에 바친 거목이다. 1954년 서울중앙방송국(KBS 전신) 아나운서로 재직하던 중, 민속학자 임석재 선생의 제안으로 민요 채록의 길에 들어서며 민속학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다.
선생님은 연희 분야 민속학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1959년 <꼭두각시놀음>을 재연하고 탈춤, 농악, 민요 등을 수집·연구하던 중 남사당패에 깊이 천착했다. 1965년에는 민속극회 ‘남사당’을 창단해 이사장을 맡았으며, 과거 광대나 백정보다도 천대받던 유랑집단 ‘남사당’을 당당한 ‘예인(藝人)’의 반열로 올려놓은 최대 공로자다.
직접 연희용 탈과 인형을 만들어가며 그들의 연희를 하나의 완결된 예술로 재정립하셨고, 특히 ‘발탈’ 연구의 독보적 일인자로 꼽히셨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꽹과리·장구·북·징의 민속 연주에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여준 분 역시 심우성 선생님이다.
19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를 설립해 타계 전까지 이끄셨고, 1996년에는 공주민속극박물관을 설립해 초대 관장을 지내셨다. 그곳에는 선생님이 평생 수집한 탈과 인형, 민속 악기 등 1,000여 점의 소중한 유산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선생님은 저서 《한국전통예술개론》에서 전통문화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우리가 전통적 문화생활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관심을 갖는 데는 우리 나름의 까닭이 있다. 우리는 비통하게도 마지막 분단 민족이요, 분단 국가이다. 이 첨예한 분단을 마무리하는 데는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공동체 의식에 바탕했던 전통문화를 통한 일체감의 조양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또한 ‘국제성’이니 ‘지구가족’이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확고한 ‘독창성’이 모여 국제적일 수 있는 것이니 먼저 찾아 이룩해야 할 일은 독창성의 확보라는 깨달음에서이다.“
후학들이 이어받아야 할 정신과 과제
선생님은 강단에만 머무는 학자가 아니라 민요 채록을 위해 전국의 현장을 누비고 직접 무대에 서는 광대였다. 후학들은 전통을 단순히 박제된 유물로 바라보지 말고, 민중들의 삶이 숨 쉬는 현장에서 소통하는 실천적 연구 태도를 이어받아야 한다.
또한, 주류 문화가 아닌 소외된 유랑민의 예술(남사당)과 잊혀가는 토속 신앙(넋전춤)에 주목했던 선생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밀려나고 소외된 기저(基底) 문화의 가치를 발굴하고 환기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전통 악기 연주를 '사물놀이'라는 현대적 공연 양식으로 탈바꿈시키고, 분단과 참사 같은 현대사의 비극을 1인극으로 풀어냈던 온고지신의 지혜가 필요하다. 전통을 박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슬픔과 기쁨(애환)을 위로할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 콘텐츠로 재창조해 나가야 한다.
선생님은 평생 막대한 업적을 쌓고도 스스로를 언제나 '민속학도(학생)'라고 낮추어 불렀다. 후학들은 우리 문화유산을 대할 때 학문적 권위주의를 버리고, 우리 민족의 얼과 본디 흐름을 순수하게 쫓던 선생의 거룩한 구도자적 태도를 늘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공동체 의식, 그리고 세계화 속에서 찾아야 할 우리만의 독창성. 전통문화를 향한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과 혜안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심우성 선생님의 8주기를 맞아, 평생을 바쳐 남기신 위대한 공로와 성과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