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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토론회] “국악, 오늘 우리의 음악인가?”…국회서 국악교육·생활화·세계화 해법 모색

유영대 “전통의 현대화 넘어 ‘현대의 전통화’로”…국악을 세계인이 사용하는 문화언어로
김희선 “전문가 양성 중심에서 향유자 만드는 교육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국악교육·생활국악·미디어 생태계·국립국악원 컨트롤타워 역할 등 정책 과제 제시

 

“국악, 오늘 우리의 음악인가?”…국회서 국악교육·생활화·세계화 해법 모색

 

“국악, 오늘 우리의 음악인가?”

 

우리 민족의 음악이라고 당연하게 여겨온 국악이 과연 오늘날 국민의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음악’으로 살아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토론이 국회에서 펼쳐졌다.

 

‘역사 바로 세우기 국회토론회-국악, 오늘, 우리의 음악인가?’가 지난 8월 26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과 신장식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유영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양대학장이 각각 발제에 나섰으며, 정회천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자로는 김헌선 경기대학교 교수, 김호석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 박상진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송혜근 국악타임즈 대표가 참여했다.

 

정회천 전북대 명예교수

 

이승한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 이사장은 토론회에 앞서 “국악이 우리 음악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명제”라며, 그럼에도 공교육의 음악교육이 여전히 서양음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짚었다. 또한 국악의 가치는 단순히 ‘우리 것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각과 정서를 담아온 문화적 그릇이라는 데 있으며, 오랜 세월 축적된 깊이와 독창성은 이미 국내외에서 그 가치를 입증해 왔다고 밝혔다.

 

이승한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 이사장

 

이어 이 이사장은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이 창립총회를 계기로 국악의 본래 가치를 회복하고 국악인의 권익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회천 교수를 비롯한 학자·전문가들과 함께 국악이 우리 사회와 교육에서 마땅한 위상을 되찾도록 하겠다며, 이번 토론회가 국악의 진정한 주권 회복을 위한 이른바 ‘국악 독립운동’의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신장식 국회의원 역시 국악이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에서 공교육과 국민의 일상으로부터 점차 밀려난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 고유의 것을 먼저 제대로 배우는 것이 문화적 주권을 세우는 출발점이라며, 공교육에서 우리 소리와 장단이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전국적인 전통예술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신 의원은 이날 논의된 제안들이 토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입법과 정책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영대 “전통을 현대화하는 데서 ‘현대를 전통으로 읽는’ 단계로”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유영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K-Culture 시대, 국악의 생활화 및 세계적 보편화 방안-전통을 현대화하는 것을 넘어, 현대를 전통으로 다시 읽기’를 주제로 국악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영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유 교수는 “왜 판소리 ‘로미오와 줄리엣’은 존재하는데, 오페라 ‘심청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그동안 국악계가 판소리를 현대극으로 만들거나 국악에 재즈와 힙합을 결합하는 등 ‘전통의 현대화’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현대의 문화와 서사를 국악의 문법으로 다시 해석하는 역방향의 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유 교수는 국악의 ‘생활화’ 역시 모든 국민에게 판소리 완창이나 가야금 연주를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국민이 출퇴근길 이어폰이나 카페, 게임, 영상 콘텐츠 등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국악의 음색과 장단을 만날 수 있도록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국악의 세계화’에서 ‘세계적 보편화’로 목표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이 완성한 국악을 외국에 보여주는 것을 넘어 외국인이 국악의 장단과 악기, 판소리 창법을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악이 세계인의 문화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형 전승과 학술연구 등을 담당하는 ‘보존 생태계’와 게임·K-pop·애니메이션·숏폼 등 새로운 장르와 자유롭게 결합하는 ‘혁신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는 투트랙 전략도 제시했다.

 

김희선 “국악정책의 중심, 전공자에서 ‘향유자’로 옮겨야”

 

두 번째 발제자인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양대학장은 ‘국악 향유 패러다임의 전환: 진단과 과제’를 통해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양대학장

 

김 학장은 현대 국악을 조선 후기의 음악이 일제강점기와 근대를 거치며 서양음악·대중음악·엔터테인먼트와 경쟁하고, 단절과 복원을 반복하며 형성된 결과물로 바라봤다. 국악이 현재 일정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음에도 국민의 일상과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향유자’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국악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낙인, 서구음악을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바라보는 인식 구조 역시 국악 향유 확대를 가로막아온 원인으로 진단했다.

 

김 학장은 ‘전문국악’과 ‘생활국악’이 서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국악이 전승과 창작, 교육과 공연을 담당하고 생활국악을 통해 시민과 지역사회, 청소년과 동호인들이 참여하고 향유하면 이들이 다시 국악의 관객과 예비전문가로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다. 자료집에 제시된 ‘국악생태계의 선순환’ 도식 역시 전문국악과 대중화·접근성·참여, 생활국악, 시민과 지역사회를 하나의 순환구조로 연결하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2023년 제정된 「국악진흥법」을 실제 현장에서 작동시키기 위한 후속 정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국악진흥법 연구와 지역 조례 제정, 국악진흥기본계획 수립, 시민밀착형 프로그램과 국악 동호회 지원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김헌선 “국악만 떼어놓지 말고 전통문화 전체의 토대에서 바라봐야”

 

토론에 나선 김헌선 경기대학교 교수는 유영대 교수의 ‘보존 생태계’와 ‘혁신 생태계’ 구분과 국악의 재미·흥미를 강조한 방향에 공감하면서도 논의의 범위를 국악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헌선 경기대학교 교수

 

국악이 우리 문화의 중요한 핵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악을 만들어낸 언어와 의식주, 생활문화, 전통문화예술 전체의 기반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악은 우리말이라는 모국어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이자 창조라는 점에서 언어와 생활문화의 전승까지 포괄하는 넓은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진 “60년째 반복되는 대중화·세계화 논의, 이제 결과 만들어야”

 

박상진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는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 세계화 논의가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했다.

 

박상진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박 교수는 자신이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초부터 ‘국악의 대중화·생활화’, ‘국악의 현대화·세계화’를 주제로 수많은 학술행사가 열렸지만 약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비슷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국악계 밖의 클래식·대중음악 분야에서 국악을 적극 활용하며 K-컬처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결국 국악계가 오랜 기간 반복해 온 ‘대중화와 세계화’라는 구호를 실제 국민의 향유와 창작 생태계의 변화로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읽힌다.

 

김호석 “국립국악원, 국악정책 컨트롤타워 역할 필요”

 

김호석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는 K-컬처가 세계 문화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과 달리 국악은 오랫동안 서양음악 중심의 학교교육과 방송 편성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고 진단했다.

 

김호석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

 

특히 국악 관련 기관들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동시에 국립국악원이 국악의 대중화·세계화와 국민 향유 확대를 총괄하는 ‘국악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악 유관기관과 상시적인 소통체계를 구축해 정책과 사업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악진흥법」이 국악의 범주에 전통음악뿐 아니라 전통무용과 전통연희를 포함하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지원 기반이 취약한 전통연희의 전승·공연 환경에 대해서도 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혜근 “국악의 미래, ‘향유자’를 만드는 교육과 미디어 생태계에서 시작해야”

 

송혜근 국악타임즈 대표는 국악정책의 중심을 ‘보존과 전승’에서 ‘국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향유자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악을 평생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국민에게 어느 날 갑자기 국악 공연장을 찾아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며, 어린 시절 장구를 치고 민요를 부르며 판소리 추임새를 경험한 아이들이 미래의 국악 관객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교육의 국악교육은 미래 향유자를 만드는 중요한 국가적 투자라고 주장했다.

 

송혜근 국악타임즈 대표

 

송 대표는 이를 위해 교과서의 국악 비중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국악전문 교수를 확대해 실제 국악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는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악 공연 제작에는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이를 국민에게 알리고 기록·확산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다며 미디어와 홍보 역시 국악 향유 생태계의 중요한 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결국 국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며, 교육과 생활국악, 공연, 미디어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지속 가능한 국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객석의 국악인들도 공감…“이제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와 정책 전문가뿐 아니라 오랜 세월 전통예술 현장을 지켜온 국악인들도 객석을 찾아 토론을 경청했다. 경기민요 명창 김영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송재영,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유영애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현장에서 느껴온 국악계의 현실과 토론회에 대한 소회를 전하면서 논의의 의미를 더했다.

 

 

김영임 명창은 50년 넘게 우리 소리를 해오면서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가 후배 국악인들에게 더 나은 활동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악이 국민의 일상 속에서 향유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가 국악계 내부에 머물지 않고 국악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국회가 함께한 자리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논의가 일회성 토론에 그치지 않고 후진 양성과 국악인들의 활동 기반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정책 대안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송재영 명창은 이날 토론회의 제목인 ‘국악, 오늘 우리의 음악인가?’라는 질문 자체에서 자조와 슬픔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발제에서 언급된 국악을 둘러싼 ‘편견과 사회적 낙인(stigma)’에 깊이 공감하며, 국악인으로 살아오면서 다른 음악 분야나 대중으로부터 구별되고 소외되는 듯한 현실을 체감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국악인 스스로도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한다며,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국악계 내부의 성찰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영애 명창은 판소리에 몸담은 지 68년이 됐지만 이날 토론을 들으며 다시 배우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초 인사만 나누고 자리를 떠날 예정이었지만 발제와 토론을 끝까지 경청하게 됐다며 “다시 가서 오늘 들은 내용을 정리하면서 일학년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평생 판소리 전승 현장을 지켜온 원로 국악인이 스스로 다시 배우겠다고 밝힌 소회는 이날 토론회가 정책과 제도의 문제를 넘어 국악인 스스로 국악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게 한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보존해야 할 국악’에서 ‘국민이 사용하는 국악’으로

 

이날 두 발제와 토론을 관통한 핵심은 결국 국악정책의 중심을 ‘국악 그 자체’에서 ‘국악을 향유하는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전문예술인을 얼마나 양성하고 공연을 몇 차례 개최했는가를 넘어, 국민이 얼마나 국악을 듣고 있는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국악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시민들이 일상에서 국악을 즐길 기회가 있는지, 그리고 국악 콘텐츠가 미디어를 통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정책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좌장을 맡은 정회천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학교 현장의 국악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아리랑’의 사례로 짚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인 아리랑조차 학교 음악교육 현장에서는 우리 고유의 세마치장단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서양음악 중심의 교원양성과 음악교육 체계 속에서 우리 장단이 학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우리의 장단과 아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며, 국악의 생활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이 우리 음악의 어법과 장단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은 순수 민간의 뜻을 모아 출범한 단체로, 우리 국악이 지닌 본래의 가치를 되살리고 그 가치를 국민의 삶 속에 확산하는 한편, 세계 속에서도 우리 음악이 깊고 올바르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사)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은 이러한 창립 취지를 첫걸음부터 실천하기 위해 국악계 학자와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번 국회토론회를 마련했으며, 공교육에서의 국악교육 정상화와 국악의 생활화·대중화, 지속 가능한 향유자 생태계 구축, 세계화와 정책적 지원체계 등 오늘날 국악계가 당면한 주요 현안을 공론의 장에 올렸다.

 

민간에서 출발했지만 국악계가 풀어야 할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사회적 의제로 확장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원이 이번 토론회를 통해 국악의 미래에 기여하고자 한 뜻이자 앞으로 이어갈 활동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