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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세 갈래 길, 하나의 마음, 성철·법정·명진 스님이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

 

세 갈래 길, 하나의 마음, 성철·법정·명진 스님이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오늘날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깊은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 눈만 뜨면 좌우로 나뉘어 대립하는 정치적 과몰입, 부의 크기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사회적 갈등까지.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는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서 삶의 나침반을 찾아야 할까.

 

그 막막한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현대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세 고승, 퇴옹 성철(1912~1993)과 법정(1932~2010), 그리고 명진(1950~2026) 스님을 떠올리게 된다.

 

세 스님은 불법(佛法)을 실천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였다.

 

성철 스님은 산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가야산 깊은 선방에서 평생 참선 수행에 몰두한 ‘철저한 은둔자’이자 정통 수행자의 표상이었다.

 

반면 법정 스님은 산중과 세간의 경계인 한적한 암자에 머물며, 자연 속에서의 사색을 담은 《무소유》 등의 수려한 문장으로 대중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준 ‘시대의 문장가’였다.

 

그리고 명진 스님은 도심 사찰의 한복판에서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종단 개혁을 이끌고, 용산참사나 세월호 등 사회적 약자의 아픔이 있는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불의한 권력에 맞섰던 ‘행동하는 수행자’였다.

 

깊은 산속(성철), 외딴 오두막(법정), 그리고 아비규환의 세간 한복판(명진)이라는 그들의 선택은 겉보기에 사뭇 달라 보인다. 정치를 대하는 태도 역시 성철 스님은 권력자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며 초연했고, 법정 스님은 문명과 탐욕에 대한 생태적 비판을 던졌으며, 명진 스님은 온몸을 던져 불의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 세 갈래의 길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바다에서 만난다.

 

이들에게는 불교계 내부의 기득권과 부패를 과감히 비판하며 청정한 가치로 돌아가고자 했던 서슬 퍼런 개혁 정신이 있었다.

 

누더기 가사 한 벌로 평생을 산 성철, 인세마저 사회에 환원하며 이름 그대로 무소유를 증명한 법정,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청빈함과 소신을 꺾지 않은 명진 스님의 삶은 모두 철저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결과물이었다.

 

길은 달랐으나, 우리 사회가 더 맑고 반듯해지기를 바랐던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은 완전히 같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 스님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본질을 지키는 단호함이다. 성철 스님이 정권의 권력자들을 만나주지 않으며 지켰던 출세간의 서슬 퍼런 기개는, 눈앞의 이익과 평판에 흔들리며 쉽게 타협하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타협할 수 없는 삶의 본질과 원칙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든다.

 

둘째, 비움의 지혜다. 법정 스님이 일평생 외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무한 경쟁과 소유의 늪에 빠져 끝없이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덜어내고 비워낼 때 비로소 내면의 평화와 진짜 온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깨우쳐 준다.

 

셋째, 연대와 행원의 실천이다. 명진 스님이 보여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삶은 내 마음의 평화에만 머무는 이기적 구도를 넘어선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좁은 편가르기를 넘어 억울한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연대야말로 무너진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웅변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던 성철의 사자후, 맑고 향기로운 삶을 품으라던 법정의 속삭임, 아픈 현장을 지키라던 명진의 뜨거운 외침은 사실 같은 불꽃의 다른 모양일 뿐이다.

 

세 스님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무작정 휩쓸려 살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남긴 나침반을 들고 내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내 안의 성찰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만이 나와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