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해외공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서 한국어·영어로 만나는 판소리 ‘긴긴밤’

입과손스튜디오×시드니 오페라하우스, 2년여 국제 공동창작 결실
한국어와 영어를 판소리 리듬에 담은 ‘바이링구얼 판소리’… 9월 30일 세계 초연
수림뉴웨이브에서 시작된 이향하의 실험, 세계적 공연장 무대로 확장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서 한국어·영어로 만나는 판소리 ‘긴긴밤’

 

한국의 판소리가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를 품고 세계적인 공연장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입과손스튜디오(대표 이향하)의 창작 판소리 <긴긴밤>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2년여에 걸친 국제 공동창작을 통해 한·영 ‘바이링구얼(Bilingual) 판소리’로 새롭게 탄생했다. 작품은 오는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The Studio에서 열리는 첫 국제 어린이 공연예술축제 ‘Wild Things’를 통해 세계 관객과 만난다.

 

이번 작품은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은 루리 작가의 베스트셀러 『긴긴밤』을 원작으로 한다. 『긴긴밤』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사랑받으며 뮤지컬과 연극 등 여러 장르로 확장돼 왔으며, 입과손스튜디오는 이를 판소리라는 전통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해 주요 레퍼토리로 발전시켜 왔다.

 

번역을 넘어 ‘두 언어가 함께 노는 판소리’

 

이번 시드니 공연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단순히 한국어 판소리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영어 자막을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한국어와 영어 자체를 판소리의 리듬과 장단 속으로 끌어들여 두 언어가 하나의 음악적·극적 언어로 작동하도록 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 배우들의 대사 역시 판소리 특유의 리듬 구조와 결합한다. 자막을 따라가기 어려운 어린 관객들도 말의 리듬과 소리, 몸짓을 통해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무대를 설계했다.

 

무엇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완성된 한국 공연을 초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약 2년 동안 한국의 전통예술단체와 대본과 무대 언어를 함께 개발하는 공동창작 파트너로 참여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통 판소리의 음악적 문법을 유지하면서 영어권 배우와 관객이 작품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공연 언어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이번 <긴긴밤>은 판소리의 국제화 방식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수’를 창작의 주체로… 수림뉴웨이브에서 시작된 실험

 

<긴긴밤>과 수림문화재단의 인연은 2022년 ‘수림뉴웨이브’에서 시작됐다.

 

수림문화재단은 당시 소리꾼 중심의 전통적인 판소리 공연 방식에서 벗어나 무대 뒤 반주자로 인식되기 쉬웠던 ‘고수’ 이향하를 창작의 주체인 ‘수림아티스트’로 발굴했다.

 

재단은 이향하가 고수의 시선에서 출발해 <긴긴밤>을 판소리로 풀어내는 초기 대본과 기획 개발을 지원했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를 인정받아 이향하는 그해 ‘수림뉴웨이브상’을 수상했다.

 

이향하

 

입과손스튜디오는 이후 작품 개발을 계속해 2023년 <긴긴밤>을 완성했고, 초연 이후 전국 투어를 거치면서 단체를 대표하는 주요 레퍼토리로 성장시켰다. 같은 해 열린 ‘2023 수림뉴웨이브: ReWave’에서는 <이향하 소품집>을 통해 작품을 다시 선보였다.

 

이러한 창작의 흐름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의 국제 공동작업으로 이어졌다.

 

지난 1월 입과손스튜디오는 호주 배우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1차 창작개발 워크숍을 진행했다. 수림문화재단은 서울 김희수아트센터 공간과 창작지원금을 제공해 한국과 호주의 창·제작진이 함께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했다.

 

단발성 공연 지원에 그치지 않고 예술가 발굴에서 작품 개발, 재공연, 국제 공동창작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창작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온 셈이다.

 

수림문화재단 관계자는 “2022년 수림뉴웨이브에서 출발한 예술가의 시도가 김희수아트센터에서의 개발 과정을 거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라는 세계적 무대에서 결실을 보게 되어 기쁘다”며 “단발성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예술가의 성장을 지속해서 주시하며 곁을 지키는 동행 철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승희·이향하·이상홍과 호주 배우들이 함께 만드는 무대

 

이번 공연에는 소리꾼 이승희와 고수이자 작곡·음악감독을 맡은 이향하를 비롯해 배우 이상홍, 호주 배우 조 터너(Jo Turner)와 홀리 오스틴(Holly Austin), 연주자 이유준이 출연한다.

 

소리꾼 이승희와 배우 이상홍

 

작·연출은 이상숙, 번역·드라마터그는 이경후가 맡았으며 타마라 해리슨(Tamara Harrison)이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참여한다. 이향하가 작곡과 음악감독을, 이승희가 작창을 담당한다.

 

이와 함께 밝넝쿨이 움직임, 정승준이 무대디자인, 이유진이 조명디자인, 장태순이 음향디자인, EK(이은경)가 의상디자인을 맡았으며 손소영과 케이틀린 싱클레어(Caitlyn Sinclair)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공연은 9월 30일 오후 6시 30분을 시작으로 10월 1일 오후 6시 30분, 10월 2일 오후 2시와 6시 등 총 4차례 열린다. 10월 1일 공연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된다. 공연시간은 85분이며 관람연령은 7세 이상이다.

 

 

한국의 전통 판소리가 영어를 단순히 ‘번역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두 언어를 판소리의 음악적 구조 안에서 함께 움직이게 하는 이번 시도는 전통예술의 해외 진출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고수의 시선’에서 시작된 작은 창작 실험이 수년간의 작품 개발과 국내 공연을 거쳐 한국과 호주 예술가들의 공동창작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이제 <긴긴밤>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장단을 타는 새로운 판소리의 가능성을 세계 관객에게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