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詩人)으로 살고 싶다
고춘식
1994. 10. 9(일) 23:30
시인이 되고 싶다.
시를 쓰고 싶다.
시로 살고 싶다.
시인으로 살고 싶다.
시 속에 살고 싶다.
시와 함께 살고 싶다.
시의 계절 속에서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시를 쓰며 살고 싶다.
시가 되어 살고 싶다.
한 편의 시이고 싶다.
시로 채우고 싶다.
시의 향기로, 시의 아픔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다.
시 없이 살았던 지난 날,
서러울 시간도 없이 살아온 지난 날,
흐르는 눈물로 가슴을 씻을 시간도 없이 살아왔던 그 삭막의 날들,
향기도 없이 아프고 감동도 없이 웃었던 지난 날들
그 날들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가 다가오는 계절이 내게도 있었다.
다시 시를 맞이하고
시와 대화하고,
시와 씨름하고,
시에게 안기고, 맡기고
시와 치열하게 대결하고
싶다.
적당히, 엉거주춤, 눈치보면서, 슬쩍 속이면서, 곁눈질하면서, 게걸대면서, 상대적 빈곤감 속에 허득이면서, 할 말을 우물우물 겁먹고 못하면서, 비겁을 겸손이라, 소극적 삶을 덕이라 속이고, 웃지 않으면서 웃기고, 우습지 않으면서 웃고, 맘에도 없이 남을 축하하고, 지식 쪼가리를 신주 단지 모시듯 자랑 삼고, 신을 모르면서 조롱만 하고, 산에서도 증오의 마음을 못 버리고, 자연을 부동산으로 돈으로 따지고, 모르는 것 빼고 다 알면서 제대로 아는 게 없이 살아온 나날, 욕심은 많으면서 의미 있는 집착 하나 없이 살아온 나날, 남의 잔치에 박수나 쳐 주었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