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남도국악원 토요상설공연] 국립남도국악원 초청공연, 채수정 소리단 < 뿌리깊은 소리 >

  • 등록 2024.08.05 21: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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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남도국악원 초청공연,  채수정 소리단 < 뿌리깊은 소리 >

 

국립남도국악원 토요상설공연 ”국악이좋다“ 2024. 08. 03. 오후 3시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 판소리 판치는 세상! 

 

채수정소리단 초청공연 < 뿌리깊은 소리 >는 판소리와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을 통해 바닥의 끝을 알 수 없는 우리소리를 생생하게 체험하며 행복한 샘에 빠져 허우적거린 기쁨의 향연이었다. 특히 채정례본 진도씻김굿 중 채수정이 무대화 음악으로 새롭게 탄생시켜 채수정소리단이 노래한 ‘초가망석 · 손님굿 · 제석굿’ 소리는 그 감동이 세계 3대 오페라 ‘라트라비아’ ‘카르멘’ ‘마술피리’의 앙상블에 버금가는 환호 · 환성 · 감격을 불러일으킨 신세계의 아름다움이었다.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춤과 함께 하는 전문적인 음악 범패(梵唄)에서 범패승이 부르는 노래를 합창소리로 구성한 채수정소리단의 <천상의 소리 범패>는 재를 올리는 경건함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마음을 파고들며 공연의 시작을 기대하는 긴장감을 풀어주며 편안함과 여유를 제공하는 특별한 신선함의 체험이었다. 

 

 

범패에서 부처님께 향을 올리는 첫 절차인 ‘초할향’ 노래 중 봉헌일편향(한조각의 향을 정성으로 받들어 올림)과 엽부오수미(잎이라 생각하고 온 우주를 덮음)의 깨끗하고 맑은소리는 천상에 계시는 부처님에게 이 잔치에 찾아와 주시라는 간절함이 젖어 있었고 잔치에 오신 부처님의 가피가 포근하게 감싸 안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신비러움으로 채워졌다.   

 

현재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적벽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중 배경설화가 중국 배경 소설(삼국지연의)에서 나온 유일한 작품 적벽가 중 <불 지르는 대목> 채수정의 소리는 단가 ‘인생백년‘으로 목을 풀고 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내는 큰 성량으로 호탕한 통성이 쏟아지며 씩씩하고 장엄한 느낌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분위기의 소리에 빠진 생동감이 밀려와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처럼 생생한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가련한 손 백만 군병은 날도 뛰도 못하고 숨막히고 기막히고 칼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어 죽고, 서서 죽고, 울다 웃다 죽고, ~ 양천통곡 호천망극 아이구 어머니 나는 죽습니다, 물에가 풍 빠져 죽고, 한군가 내달의려 나는 남의 오대 독신이로구나, 칠십당년 늙은 양친을 내가 다시 못보고 죽겠구나.” 폭풍우처럼 쏟아내는 소리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처럼 애타는 마음에 숨이 막혔고 채수정 명창의 능력이 찬란했다. 

 

흥보가 중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어 열린 박을 타며 흥보가 마누라와 톱 소리를 메기고 받는 <박타령>의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시르렁 실근 실근’ 같은 톱질소리는 흥보가 중에서도 관객들이 입소리로 따라 부를 수 있는 귀에 익숙한 대목으로 소리꾼의 재주에 따라 자칫 식상할 수도 있으나, ‘함수연’의 애절하게 감겨드는 소리가 가난에 맺힌 한을 원망하듯 담겨 있었고 쏟아지는 금은보화에 행복이 넘치는 모습이 실감나게 전달되었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네’가 소리꾼과 함께 저절로 입에서 터져 나오며 신명이 춤을 추었다.
  
춘향가의 눈대목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청중들에게 인기 있는 <이별가>는 이도령이 춘향과 백년가약을 맹세 후 남원 부사에서 호조판서로 승진하여 한양으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떠나게 되어 이들이 애절하게 석별하는 장면이다. 다양한 장단을 밟고 이별의 비장함이 와 닿으며 비극적 이별의 아픔이 가슴 절절이 파고드는 ‘정상희’의 소리에 ‘얼씨구 · 좋다 · 잘한다.’ 추임새와 쏟아지는 박수 소리가 넘쳐 났다.

 

전라도에서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천도하는 굿을 씻김굿이라 하는데, 불교의 천도재 관욕의식처럼 망자를 상징하는 신체를 만들어놓고 망자가 이승에서 맺힌 원한이나 아쉬움 등의 모든 것을 씻어주어 편안하게 다음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례 행위이다.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1980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오늘 무대에 오른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조왕-안당-초가망석-손님굿-제석굿-조상굿-고풀이-씻김-넋올리기-희설-길닦음-중천 등 12거리 이상의 무가(巫歌) 중에서 초가망석, 손님, 제석굿의 노래를 채수정이 서양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공연예술로 무대 음악극으로 현대화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학생으로 구성된 ‘채수정소리단’이 감격의 무대를 보여 주었다.

 

 

짧게 하여도 날밤을 세는 씻김굿에서 수많은 무가는 무당 혼자서 거의 소화하며 굿거리를 진행하는 구성요소이기에 예술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이 굿에 묻혀 표가 나지 않는다. 현 시대에는 굿이 굿판을 떠나 무대에 오르지만 기존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전통민속예술’ 명맥 이어가기가 전부이기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채수정소리단의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종교세계의 굿을 일반인들에게 예술의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행복으로 탄생시킨 엄청난 신세계를 창조했다. 씻김굿이 ‘채수정’이라는 음악 예술천재를 만나 찬란한 꽃을 피웠다. 좀 더 가꾸고 다듬는다면 우리나라 대표하는 음악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어둠이 깔린 무대에 칼칼하고 차가우면서도 굵고 웅장한 저음으로 애잔함을 거칠게 토해내는 산조아쟁 울음이 깔리며 머리에 백색 고깔을 얹고 하얀 치마저고리 순백의 채수정이 주발 형태의 정주를 녹각(사슴뿔)으로 두들기며 무가를 노래하며 무대 중앙에 자리를 잡자 무대 좌우에서 하얀 순백의 남녀 소리꾼이 하나 둘 천천히 나타나 무대를 꽉 채우고 두 손 높이 들어 합장하며 부르는 비손 소리가 몽환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지전을 양손에 들고 흔들며 춤을 추면서 떼 창으로 부르는 무가소리의 곱고 아름다운 화음이 그 어느 무대의 합창소리보다 아름다웠고 감동이 밀려왔으며 환희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가가 노래로 수를 놓는 경이로움으로 감탄사의 열기를 식힐 수 없었다. 

 

 

지금까지 진도 씻김굿 속에서 잠들고 있던 이렇게 황홀한 우리 전통의 소리를 이제야 들을 수 있다는 감격이 온 마음을 가득 채우며 무가의 새로운 모습에 흠뻑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더 없는 칭찬을 보낸다. ‘채수정소리단’ 고맙습니다. 

 

※ 조왕 - 부엌에 모신 불신
※ 안당 - 자손들의 수명과 복을 관장 하는 집안 신
※ 초가망석 - 망자를 청하기
※ 손님 - 천연두신 모시기
※ 제석굿 - 제석님네 맏딸애기가 시왕산 화주승과 연분을 맺기
※ 고풀이 -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는 씻김굿의 한 절차로 무명필로 매듭을 만들어 춤을 추면서 풀어 가는 의식이다. ‘고’는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의미
※ 씻김 - 영혼이 이승에 맺힌 원한을 씻고 극락에 가도록 한다는 진도 씻김굿의 한 거리. 
※ 넋올리기 - 조상의 넋을 머리 위에 걸치게 하고 소원을 성취하도록 하는 축원
※ 희설 - 무당 혼자서 징을 치며 망자의 저승 육갑(六甲)을 풀어 주기
※ 길닦음 - 망자의 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 중천 – 말 그대로 하늘의 한 가운데를 말하며 대문간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굿 청에 모여든 여러 신을 하늘로 배송하는 굿의 마감
※ 지전 - 저승에서 망자가 사용할 저승화폐를 상징화하여 한지나 창호지를 가늘게 접어 돈 모양으로 재단한 엽전이 길게 이어지도록 오린 것을 여러 가닥 모아 만든다. 

 

정영진 칼럼니스트 mss13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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