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時調)로 바꾸어 쓴 상춘곡(賞春曲)

  • 등록 2021.11.11 1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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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時調)로 바꾸어 쓴 상춘곡(賞春曲)

시조(時調)로 바꾸어 쓴

상춘곡(賞春曲)

 

번거로운 세상사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이내 삶이 어떠한가

옛 사람 그 운치(韻致) 그 멋, 미쳤는가 못 미쳤나

 

천지간(天地間) 남자 몸이 나 같은 이 많건마는

자연에 묻혀 사는 이 즐거움 모르는가

산림(山林)의 주인 되어 사는 지극한 낙(樂) 모를까

 

자그마한 초가 한 간 시내 곁에 지어 놓고

소나무 숲 대나무 숲 울타리 삼았으니

자연의 주인 되었네, 이 즐거움 어이하리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저녁놀에 아름답고

버들잎 향기로운 풀은 빗속에서 푸르구나

 

칼로 오려냈나, 묘하도다 저 자태(姿態)여

붓으로 그렸는가, 아름다운 모습이여

조물주 신비로운 솜씨 예서제서 야단일세

 

수풀 속 우짖는 새 봄기운을 못 이기어

가지마다 울음소리 소리마다 아양일세

새와 나 한몸 되었으니, 네 흥 내 흥 다를까

 

사립문 앞 걸어보고 정자(亭子) 위에 올라 앉아

시(詩) 한 구절 읊조리니 산중(山中) 하루 적적한데

한가론 참다운 그 맛을 나만 홀로 즐기네

 

이봐요 여러분들, 산수(山水) 구경 가보세나

풀밟기는 오늘 하고 목욕일랑 내일 하세

아침엔 봄나물 캐고 저녁에는 낚시하세

 

갓 괴어 익은 술을 칡 두건(頭巾)에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잔(盞)을 세며 먹으리라

맑은 향 잔에 가득하니 붉은 꽃은 옷에 지네

 

술독이 비었거든 나에게 알려 주오

술도가에 술 있는지 아이에게 술을 물어

어른은 지팡이 짚고 아이 녀석 술 메리라

 

시냇가에 혼자 앉아 잔 씻어 부어 들고

흐르는 물 굽어보니 떠오는 건 복숭아꽃

무릉(武陵)이 바로 가깝구나, 저 들판이 게 아닌가

 

솔숲 사이 오솔길을 진달래 부여잡고

산봉우리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눈 아래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골골마다 펼쳐 있네

 

안개와 아득한 놀, 빛나는 맑은 햇살

큰 자락 비단 한 폭 수(繡)를 놓아 펼쳤는가

엊그제 검었던 들판 봄빛 가득 넘치네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富貴)마저 날 피하니

벗은 오직 달과 바람, 헛된 생각 전혀 없네

아무튼 평생의 즐거움 이만하면 어떠한가

 

 

 

원작

상춘곡(賞春曲)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녯 사람 풍류를 미칠가 못 미칠가.

천지간(天地間) 남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마랄 것가.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주인(風月主人)되여셔라.

엊그제 겨을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에 다를소냐.

시비(柴扉)예 거러 보고, 정자(亭子)애 안자 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하새.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 하새.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소동(小童) 아해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 시냇가의 호자 안자, 명사(明沙)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 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메이 긘 거인고. 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봉두(峰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 잇네.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폇는 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

공명(功名)도 날 끠우고, 부귀(富貴)도 날 끠우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단표누항(簞瓢陋巷)에 흣튼 혜음 아니하네.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송인숙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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