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바꾸어 쓴 허난설헌의 한시(漢詩)

  • 등록 2021.12.02 12: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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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재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명종 18∼선조 22)의 본명은 초희(楚姬) 

 

 

시조로 바꾸어 쓴

허난설헌의 한시(漢詩)

 

 

秋恨(추한)

- 가을의 정한

 

絳紗遙隔夜燈紅 夢覺羅衾一半空

霜冷玉籠鸚鵡語 滿階梧葉落西風

 

붉은 깁창 저 너머엔 밤 등불이 더 붉은데

비단 이불 잠을 깨니 옆자리가 비었구나

앵무새 차갑게 울고, 오동잎만 지는구나

 

 

秋夜曲 1(추야곡 1)

- 가을밤의 노래

 

蟪蛄切切風瀟瀟 芙蓉香褪永輪高

佳人手把金錯刀 挑燈永夜縫征袍

 

매미 소리 절절하고 바람은 쓸쓸한데

연꽃 향기 옅어지니 가을달은 높고 높네

가인(佳人)이 금가위를 잡고 길 떠날 옷 깁는구나

 

 

秋夜曲 2(추야곡 2)

- 가을밤의 노래

 

玉漏微微燈耿耿

罹幃寒逼秋宵永

邊衣裁罷剪刀冷

滿窓風動芭蕉影

 

시계 소리 희미하고 등불 홀로 반짝반짝

휘장 안에 파고든 추위 가을밤은 길고 기네

옷 짓는 가위는 차갑고 어른대는 파초 그늘

 

 

送荷谷謫甲山(송하곡적갑산)

- 하곡 오빠가 갑산에 귀양가기에

 

遠謫甲山客 咸原行色忙

臣同賈太傅 主豈楚懷王

河水平秋岸 關雲欲夕陽

霜風吹雁去 中斷不成行

 

저 멀리 갑산(甲山)으로 귀양 가는 나그네여

함경도로 가는 행색(行色) 황망하기 그지없네

신하의 심정은 고태부, 임금 어찌 회왕(懷王)일까

 

강물은 가을 언덕 질펀하게 흘러가고

변방의 흰 구름이 저녁놀을 물들이네

추풍에 기러기 날아가니 마음 아파 더 못 쓰네

 

 

感愚 1(감우 1)

- 어리석었네

 

盈盈窓下蘭 枝葉何芬芬

西風一披拂 零落悲秋霜

秀色縱凋悴 淸香終不斃

感物傷我心 涕淚沾衣袂

 

외로운 창 아래엔 난초 잎만 하늘하늘

가지와 이파리가 어찌 그리 향기롭나

바람에 시들어버리니 서리처럼 서글퍼라

 

빼어난 고운 빛은 시들어 버렸어도

청랑한 그 향기는 없어지니 않는구나

물(物)마다 마음 너무 아파 눈물 옷깃 적시네

 

 

感愚 2(감우 2)

- 어리석었어라

 

古宅晝無人 桑樹鳴鵂鶹

寒苔蔓玉砌 鳥雀棲空樓

向來車馬地 今成孤兎丘

乃知達人言 富貴非吾求

 

이끼 낀 고택(古宅)에는 낮에도 사람 없어

뽕나무엔 부엉이와 올빼미만 울어대네

섬돌엔 넝쿨만 무성하고 빈 누각엔 새 깃드네

 

지난날엔 하루종일 수레 마차 오가던 곳

지금은 토끼들의 놀이터가 되었구나

알겠네, 부귀영화는 내 구할 바 아니네

 

 

相逢行 1(상봉행 1)

- 만남의 노래

 

相逢長安陌 相向花間語

遺却黃金鞭 回鞍走馬去

 

사람들 오고가는 장안(長安)에서 서로 만나

향기로운 꽃밭 속을 찾아가 속삭였지

말채찍 흘려두고서 안장 앉혀 돌아갔네

 

 

相逢行 2(상봉행 2)

- 만남의 노래

 

相逢靑樓下 繫馬垂楊柳

笑脫錦貂裘 留當新豊酒

 

친구를 오랜 만에 청루(靑樓)에서 서로 만나

수양버들 나무 아래 타던 말 매어놓고

비단옷 갖옷 벗어놓고 신풍주를 마셨네

 

 

寄何谷(기하곡)

- 오빠 하곡에게

 

暗窓銀燭低 流螢度高閣

悄悄深夜寒 蕭蕭秋落葉

關河音信稀 端憂不可釋

遙想靑運宮 山空蘿月白

 

어두운 창 비춰주는 은촉불이 나직하고

높다란 누각 위를 반딧불이 날아가요

깊은 밤 더욱 차가워지고 가을 낙엽 쓸쓸해요

 

멀리 계신 오라버니 변방에선 소식 없어

근심스런 이 마음을 풀어내기 어렵다오

아득히 청운궁 생각하니 오직 달만 밝습니다

 

 

賈客詞(고객사)

- 바다 상인의 노래

 

掛席隨風去 逢灘郞滯留

西江波浪惡 幾日到荊州

 

높이 높이 돛 올리고 바람을 따라가다

된여울을 만날 때면 그곳에서 머문다지

서강의 풍랑은 거센데 며칠 후면 형주(荊州) 갈까

 

 

貧女吟(빈녀음)

- 가난한 처녀의 노래

 

手把金剪刀 夜寒十指直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손에는 바늘 잡고 날마다 삯바느질

밤 기운이 차가우니 열 손가락 곱아온다

남 위해 혼수옷 지을 뿐 독수공방 신세라네

 

 

閨情(규정)

- 여자의 정

 

妾有黃金釵 嫁時爲首飾

今日贈君行 千里長相憶

 

제에게 있답니다, 빛 찬란한 황금 비녀

시집올 때 머리에다 꽂았던 것이라오

그대의 행차에 드리오니 천리 먼 길 잊지 마오

 

 

采蓮曲(채련곡)

- 연꽃을 따며 부르는 노래

 

秋淨長湖碧玉流 荷花深處繫蘭舟

逢郞隔水投蓮子 遙被人知半日羞

 

가을 담은 긴긴 호수 벽옥(碧玉)처럼 흐르는 물

연꽃이 우거진 곳 목련배가 매여 있네

임 만나 연밥 던져 놓곤 반나절이 열없었네

 

 

夜夜曲(야야곡)

- 깊은 밤의 노래

 

玉淚微微燈耿耿 羅瑋寒幅秋宵永

邊衣裁罷剪刀冷 滿窓風動芭蕉影

 

구슬 눈물 찔끔찔끔, 등잔불은 깜박깜박

싸늘한 비단 휘장 가을밤은 길고 기네

변방(邊方) 옷 다 짓고 나니 창엔 가득 파초 그늘

 

 

江南曲(강남곡)

- 강남에서

 

人言江南樂 我見江南愁

年年沙浦口 腸斷望歸舟

 

강남(江南)은 즐거운 곳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야 보았지요, 강남 근심 보았어요

해마다 모래벌 포구에서 이별 단장(斷腸) 배 보았죠

 

 

端甫肄業山寺有寄(단보이업산사유기)

-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新月吐東林 磬聲山殿陰

高風初落葉 多雨未歸心

海岳幽期遠 江湖酒病深

咸關歸鴈少 何處得回音

 

새로운 달 동쪽 숲에 뱉어서 솟아나고

고용한 절간 그늘 울려나는 풍경 소리

나뭇잎 막 떨어져도 귀가(歸家) 생각 못하네

 

선산(仙山)에 살자 했던 약속은 까마득해

동생 사는 강호(江湖)에선 술병만 깊어가겠네

함관령 기러기도 안 오니, 동생 소식 어찌 듣나

 

 

哭子(곡자)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

紙錢招汝魄 玄酒尊汝丘

應知弟兄魂 夜夜相追遊

縱有腹中孩 安可冀長成

浪吟黃臺詞 血泣悲呑聲

 

지난해엔 사랑하는 귀한 딸을 여의었고

올해는 사랑하는 우리 아들 잃었구나

슬프디 슬픈 광릉 땅, 두 무덤이 마주 보네

 

백양나무 가지에는 바람만 쓸쓸하고

무서워라 도깨비불, 솔숲에서 반짝이네

지전(紙錢)이 너의 혼 부르니 술 받들어 붓는다

 

남매(男妹) 혼(魂)은 서로 만나 밤마다 노닐겠지

뱃속에 있는 아기 어찌 편히 자라리오

흐느껴 황대사(黃臺詞) 읊으며 피눈물을 삼키네

 

 

春雨(춘우)

- 봄비

 

春雨暗西池

輕寒襲羅幕

愁倚小屛風

墻頭杏花落)

 

봄비가 서쪽 연못 남몰래 내리나니

오슬오슬 찬바람이 비단 장막 스며들고

시름에 병풍에 몸 기대니 살구꽃이 담에 지네

 

송혜근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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