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에 정도(正道)를 찾아 방랑(放浪)한 나그네
정몽주·鄭夢周
안변성의 누각(樓閣)에서
돌아가자 그 마음은
먼 하늘에 뻗치는데
만리(萬里) 밖 누(樓)에 오르니
바람만 모자에 가득
명년(明年)엔
정처 없는 이 몸
기러기 소리 어서 듣나
함주(咸州)에 도착하여
낙엽은 어지럽고
그대 모습 볼 수 없네
원수(元帥)는 변새(邊塞)에 들고
날쌘 장수 군(軍)을 나누네
창 방패
천하(天下)에 가득하니
문사(文詞) 언제 닦으리오
* 변새(邊塞) : 변방(邊方)의 요새(要塞)
* 문사(文詞) : 문장으로 나타난 말
중양절에 정주(定州)에서
정주(定州) 땅 중양절(重陽節)에 높은 곳 올라보니
옛날같이 국화꽃이 눈에 밝게 비쳐 드네
개펄은 남쪽 선덕진(宣德津)에, 봉우리는 성(城)에 닿네
일백년 전쟁(戰爭)한 나라 흥하고 망한 일에
만리 정벌 나갔던 몸 강개(慷慨)한 정이로다
원수(元帥)를 말에 태우니, 놀빛 깃발 물들이네
강남(江南)의 버들
강남 땅 버들이여, 강남 땅 버들이여
봄바람에 하늘하늘 황금빛 실타래 같네
버들 빛 해마다 좋건만 나그네는 언제 갈까
망망한 푸른 바다 파도는 멀리 만 길
고향 땅은 저기 멀리 하늘 가에 닿아 있네
돌아갈 배에 앉아서 지는 꽃을 마주하네
속절없이 탄식(歎息)하니 그리운 정 괴로움뿐
사람으로 태어나서 원유객(遠遊客)은 되지 마소
소년의 검은 귀밑털이 희어지네 눈처럼
* 원유객(遠遊客) : 고향을 멀리 떠난 나그네
구월, 태창(太倉)에서
인생이 길다 한들
백년 세월 넘지 않고
세월은 화살처럼
이리 빨리 흐르는데
이 몸은
어찌 안정(安定) 못하고
여행 길손 되었는가
일본(日本)에서
평생 남북(南北) 다니느라
맘먹은 일 어긋났네
고국(故國)은 바다 서편(西便)
하늘 끝 외로운 배
긴긴 날
홀로 보내노라니
이 그리움 견디리오
전주(全州) 망경대(望景臺)에 올라
천 길 언덕 머리맡에 돌길이 비꼈는데
올라보니 무한한 정(情) 이기지를 못하겠네
청산(靑山)은 부여국에 있고, 백제성엔 낙엽들
구월 달 찬 바람은 길손을 슬프게 하고
하늘 가에 해가 지니 뜬구름 모이는데
서글퍼 멀리 옥경(玉京)을 바라볼 길 없구나
* 옥경(玉京) :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산다는 서울, 임금이 계시는 곳
중추절(仲秋節)
그 옛날 한가위 땐
함주(咸州)에서 나그네 길
손꼽아 세어 보니
이십 년이 지났구나
밝은 달
흰 머리로 대하니
또 몇 번을 볼는지
제성역의 밤비
오늘밤 제성역에 옛집 생각 왜 나는가
봄 다 간 뒤 멀리 와서 첫 비 올 때 홀로 눕네
영주 땅 너른 들판엔 벼 농사가 잘 되었네
오천(烏川)에는 먹을 만한 고기들이 뛰노나니
나에게 두 가지가 다 갖추어 있건마는
어찌타 귀거래(歸去來) 노래, 부르지를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