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3부작의 마지막 장,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

  • 등록 2025.11.28 1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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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의 상처 위에서 다시 날아오르는 한 시인의 순수

극단 철인이 4년에 걸쳐 준비해 온 시인 3부작이 천상병을 주인공으로 한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12월 2일부터 7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이번 작품은, 한국 현대사라는 질곡의 시간 속에서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남아야 했던 한 시인이 어떻게 자신의 언어와 세계를 지켜냈는지를 무대 위에 올린다.

 

철인의 시인 3부작은 문학과 연극,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2021년 김수영, 외줄 위에서는 “몸으로 시를 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와 맞선 시인 김수영의 삶을 그리며 프로젝트의 첫 항해를 열었다. 좁은 복합문화공간 사유에서 열린 이 공연은 전석 매진과 입석 관객으로 가득 찼고, 이후 대학로 스튜디오76 초청 앵콜로 이어졌다.

 

2022년 두 번째 작품 이상, 기형, 13은 기묘한 천재 시인 이상을 재즈와 극으로 풀어낸 작업이었다. 을지공간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냉혹함과 자아의 괴리감을 함께 체험했다. 이 작품은 이후 후암스테이지에서 열린 세 번째 희곡열전에 공식 선정되어 우수 예술상을 수상하며, 시인 3부작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세 번째 작품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는 국가 폭력으로 인해 정체성을 잃고, 자주 “바보”라 불리며 주변부로 밀려나야 했던 시인 천상병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고문과 조사, 병원 진료의 장면만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했던 세상, 사랑했던 사람들, 소풍 같은 세계에 대한 꿈을 따라가며, 상처와 순수가 한 몸 안에서 공존하는 모습을 비춘다.

 

극단 철인 대표 곽유평은 오늘날 순수가 종종 무지나 비효율, 심지어 가난의 원인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순수와 진실의 힘이 무뎌진 시대에, 천상병이라는 시인을 통해 이 두 단어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 발언은, 소리판에서도 흔히 회자되는 “본질과 겉모습”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전통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연극은 시인의 삶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연출 유연은 이번 작품을 “고통을 나열하기보다, 그가 그렸던 세상과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관객에게 보여 주는 일”로 정의한다. 관객이 듣기보다 보기를, 진실의 논리보다 진심의 감각을 먼저 느끼기를 바랐다는 그의 설명은, 판소리에서 사설보다 소리의 결이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경험과도 유사하다.

 

음악감독 김민정은 천상병 주변 인물들과의 장면에 담긴 감정의 스펙트럼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김관식과의 장면에서는 의문과 대면을, 김종해와의 장면에서는 고문과 진료라는 극단의 상황을, 희정과 순옥의 장면에서는 희망과 결실을 음악 안에 담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기를 살아낸 시인의 시를 오늘의 배우가 몸과 목소리로 다시 표현하는 시도 자체가, 지금 시대에는 매우 아트하우스적인 작업”이라고 말한다.

 

국악이 오랜 시간 민중의 삶과 고통, 희망을 노래해 온 예술이라면, 극단 철인의 시인 3부작은 그 전통을 다른 형식으로 이어받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 이상, 천상병으로 이어진 이 여정은, 결국 한 시대를 살아낸 이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말 한마디, 세계 한 조각을 오늘의 관객에게 전달한다. 재비再飛 : 새, 다시 날다는, 그 마지막 장에서 “새는 다시 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 앞에서, 소리를 사랑하는 관객들 또한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예매는 플레이티켓을 통해 진행된다.

정도빈 기자 gsk12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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