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민 20주기 〈제자들의 헌무〉...춤으로 올리는 헌재
정민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 그의 춤을 몸으로 익히고 삶으로 이어온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민 선생 20주기 추모공연 〈제자들의 헌무〉는 창무예술원의 기획 시리즈 ‘내일을 여는 춤’의 첫 무대로, 2월 6일과 7일 창무예술원 포스트극장에서 열렸다. 이 공연은 스승에게 드리는 헌무의 형식을 취했지만, 단순한 추모를 넘어 전통춤의 본류를 다시 묻고 확인하는 전승의 무대로 자리했다.
공연 사회자인 강신구 풀뿌리문화연구회 대표는 “헌무란, 춤으로 바치는 마음” 라고 정의하고 “교회에서 헌금을 올리고, 돌아가신 어른과 국가의 어른께 제물을 올리듯, 우리는 춤을 바친다.”라며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스승에게서 배운 춤의 결을 변질 없이 이어가는 데 집중하기 바란다고 했다.
작품으로 이어진 헌무의 흐름
이번 공연은 축원무로 막을 열었다. 무대는 기원과 위무의 정서를 담아, 스승의 20주기를 맞아 올리는 헌무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이어진 〈추야월〉은 정민 선생이 김해랑의 영향을 받아 교방무를 바탕으로 창작한 산조춤으로, 교방춤의 기품 위에 개인적 정서와 즉흥성을 얹은 작품이다. 교방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하는 춤사위는 정민 춤의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장영선의 교방장고춤은 또 다른 결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춤은 조용자·최승희의 장고춤을 교방무의 미감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장고채를 활용한 기교와 장단의 변주를 통해 신명 나는 한판을 완성했다.
이어진 교방검무는 한층 절도 있는 호흡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 춤은 조선의 마지막 왕 이왕(李王)이 보고 고국에 대한 설움을 달랬다고 전해질 만큼, 격조와 서사를 함께 품은 춤이다. 화선무에서는 우아함이 무대 전체를 감쌌다. 부채의 크기와 움직임을 절제한 춤사위는 화려함보다 기품을 택했고, 한파 속에서도 관객이 추위를 잊을 만큼 화사한 인상을 남겼다
공연의 후반부를 장식한 교방살풀이와 교방타고무는 정민 선생의 교방무에 대한 애정과 창의적 정신이 응축된 작품이었다. 전통적 형식 위에 얹힌 섬세한 변주와 구성은, 정민 춤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되고 확장돼 왔음을 보여주며 공연을 단단하게 마무리했다.
스승 앞에 다시 선 제자들
모든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위에는 정민 선생의 사진이 놓였다. 제자들과 김진옥 예술감독은 사진 앞에 나란히 서서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가졌고, 그 침묵의 순간은 그 어떤 설명보다도 강한 여운을 남겼다. 이날의 헌무는 박수로 끝나기보다, 스승을 향한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는 의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정민류 교방춤은 이러한 교방 전통을 정민 선생의 미감과 호흡으로 집약한 흐름이다. 김진옥 예술감독은 이번 무대 역시 특정 작품의 재현에 머물기보다, 교방춤이 지닌 기원·위무·절제된 정서와 곡선의 미를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강신구 사회자는 “정민 선생은 한국 무용사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언급하며, 전통춤 계보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수백 명의 이수자를 통해 체계적인 전승과 기록이 이뤄진 이매방 선생의 경우와 달리, 정민 선생과 정인방 선생의 춤 계보는 상대적으로 기록과 연구가 부족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전통예술에서 기록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록이 축적될 때 비로소 개인의 예술이 사적 기억을 넘어 ‘실록’으로 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립무용단과 국악원 등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기 이전, 정민 선생이 일본 오사카를 오가며 해외 무대에서 한국 전통예술을 알렸던 활동을 상기시키며, 해방 이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공연과 교류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전통예술의 명맥을 이어온 시대적 헌신의 세대였음을 환기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날 무대에 오른 교방장고춤, 교방검무, 화선무, 검무는 해주·평양·통영·호남 등 지역마다 다른 결을 지닌 춤이고 “승무·검무는 격조가 있어 법무(法舞)라고 한다”는 전통적 인식을 덧붙였다. 화선무에 대해서는 “부채춤이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춤이 아니다”라고 말해 작품의 난이도와 완성도를 관객에게 새겨주기도 했다.
아쉬움으로 남은 공연장 운영의 문제
다만 이날 공연을 둘러싼 아쉬움도 짚지 않을 수 없다. 공연이 열린 2월 7일은 한파로 유난히 추운 날씨였고, 극장을 찾은 관객 중에는 연로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일찍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추위 탓에 외부에서 오래 대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좁은 계단과 제한된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 관객이 극장 관계자에게 입장을 조금 앞당길 수 없겠느냐고 문의했으나, 진행 스텝이 “그럼 공연을 하지 말라는 얘기냐”는 말로 응대하는 장면이 있었다. 현장에 함께 있던 기자로서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언행이었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러한 일이 상시적으로 벌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연장의 열악한 환경이 이미 잘 알려진 만큼, 그 한계를 상쇄하는 것은 운영자의 배려와 태도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번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와 별개로, 포스트극장이 이 지점에서 관객을 향한 배려를 놓친 것은 아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춤으로 이어지는 전승의 자리
김진옥 예술감독은 “정민 선생님께서 나비가 되어 떠나신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지만, 그 시간 동안 스승의 춤은 국내외 무대를 오가며 쉼 없이 이어져 왔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번 무대는 제자들이 올리는 헌무이자,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춤으로 하늘에 전하는 자리”라며, “정민 선생의 춤이 과거의 기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몸을 통해 계속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제자들의 헌무〉는 추모를 넘어 전승으로, 회고를 넘어 현재진행형의 춤으로 남았다. 스승에게서 제자로 이어진 춤의 맥은 그렇게 다시 한 번 무대 위에서 단단히 확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