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이냐! 창경원이냐!
2024년 11월 10일(일), 창경궁 정문 홍화문을 지나 옥천교와 명정문 사이 약 20여 미터 공터 오른쪽에 약 3미터 크기의 하얀 부스 2개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설치되어 있다. 명정문 앞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창경궁을 입장하며 느껴지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온화하면서도 포근한 첫 이미지는 찾을 수 없고, 마치 저잣거리에 상품 홍보관이 들어서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창경궁의 격조 높은 품격은 찾을 수 없었다.
“2024.11.8.(금)~10.(일) 3일간, 매일 2회(14시, 16시), 초등학생 대상 회당 8명, 1회(14시~14시 40분) - 세시풍속과 전통놀이, 2회(16시~16시 40분) 국외 소재 문화유산” 내용으로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시행하는 <디지털 국가유산 교육‧체험 콘텐츠 시범 운영> 부스이다. 3일간 1일 16명, 통합 48명의 초등학생을 위해 많은 국가예산을 들여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서 하여도 되는 행사를 창경궁에서 하고 있다. 국가문화유산으로 500년 역사가 찬란하게 빛나는 조선의 궁궐 창경궁 초입에서 관람객들의 국가문화유산 문화향유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하는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되레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창경궁 외전을 지나 빈양문을 넘어 내전에 들어서자, 정면의 창덕궁 낙선재 담벼락을 가리는 길이 10여 미터 폭 3여 미터쯤 되어 보이는 대형 LED 전광판이 설치되어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는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많은 관람객 중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이도 없었으며, 관심을 갖는 이도 없었다, 심지어 궁궐의 정서를 느끼는데 방해되며 생뚱맞다 하는 관람객들이 있었다.
내전 깊숙이 자리 잡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자 시어소(사무실)인 통명전에는 내부 마루 중앙에 설치된 2개의 대 위에 작은 모형전각이 있고 이 설치물에 관한 해설을 위한 해설자와 통명전 내부 입장인원 통제를 위한 안내원이 다수 있다. 1회 입장객은 6명이며 10분 동안 머물 수 있었다. 예전같이 일정 기간 그냥 개방하여 관람객 누구나 편하게 살펴보고 왕과 왕비의 침전 생활을 상상해보는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특별행사를 만들어 시설물들을 설치하여 훼손의 염려와 함께 극소수에게만 개방하며 관람객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
이 행사들은 국가유산청과 조선의 궁과 능을 직접 관리하는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 행사를 맡아 시행하는 국가유산진흥원, 홈페이지와 공지 란에도 홍보되지 않은 행사였다.
▶정월 대보름, 창경궁에서 바라본 보름달 행사(2024.2.20.)
▶정월대보름 창경궁 대온실 주변 천체관측 행사(2024.2.24.) - 기상악화로 취소
▶궁중문화축전(2024.4.27.~5.5.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 경희궁)
▶종로구립궁중무용단과 함께하는 창경궁에서의 궁중무용, 무애마당 협업 공연(2024.5.11. (토), 5.18.(토), 5.25.(토) 15:00 - 경춘전 앞마당)
▶효의 궁, 창경궁에서 정조의 효심을 배우다(5월 4일 토요일, 3회차 진행 13:00~18:00 창 경궁 대온실 뒤 행사장)
▶국가유산청 개청 기념행사 "물빛연화" (5.17.~19. 19:40~20:45 미디어아트 등 빛을 콘셉 트로 연출춘당지 일원)
▶창경궁 야연(9.12.(목)~18.(수) 18:20 창경궁 문정전)
▶하반기 종로구립궁중무용단과 함께하는 창경궁에서의 궁중무용, 무애마당 공연(2024.10.5. (토), 10.19.(토), 10.26.(토), 11.2.(토) 15:00 경춘전 앞마당 및 환경전 앞마당
▶창경궁 일상재현, 중양절을 만나다(10.11.(금)~13.(일), 함인정, 경춘전, 영춘헌, 구일제, 다례체험)
▶전통한복 체험 행사(2024.10.16.(수)~20.(일) 11:00~18:00 총 5일간 창경궁 환경전)
“ ▶ ”는 특정 기간 동안만 진행되다 2019년부터 오후 9시까지 상시 개방된 창경궁 야간 관람(대온실 관람 포함)과 함께 2024년 11월 10일까지의 공식 공지된 창경궁 행사이다.
이와 같이 창경궁에서는 공식 공지된 행사와 공지되지 않고 창경궁 관람을 오면 알 수 있는 다수의 행사를 포함하여 일 년 내내 끊임없이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등 다른 궁궐들도 별반 다르지 않고 같은 형태이다.
국가유산기본법 목적과 기본 이념은 국가유산 정책의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고, 국가유산 보존ㆍ관리 및 활용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국가유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국민의 문화향유를 통한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여 국가유산이 우리 삶의 뿌리이자 창의성의 원천이며 인류 모두의 자산임을 인식하고, 국가유산의 가치를 온전하게 지키고 향유하며 창조적으로 계승ㆍ발전시켜나감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고 미래 세대에 더욱 가치 있게 전해 주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설립되었고 국가유산을 국가유산기본법 목적과 이념에 맡게 보호, 보존, 관리, 활용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가유산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산이며 문화이기에 근시안적 사고가 가져오는 잘못된 판단으로 훼손될 수 있는 활용보다는 보호, 보존을 우선하는 관리를 해야 한다. 창경궁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수많은 행사들이 과연 국가유산법에 적합하며 국가유산청이 지금 창경궁에서 행하고 있는 국가유산 활용은 올바른 처사일까? 필자의 주관이 아닌 객관적인 질문을 던진다.
궁궐은 왕이 사는 집 궁(宮)과 궁을 둘러싸고 있는 담과 망루를 뜻하는 궐(闕)의 합성어로 왕(王)이 태어나 평생을 살다 돌아가는 왕의 세계이다. 왕은 신(神)을 대신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존재이기에 궁궐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신의 영역으로 신성시하였다. ‘창경궁’은 조선의 궁궐로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 덕종의 비이자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를 모시고자 건립하여 540년 역사가 담긴 국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때 ‘창경원(昌慶苑)’으로 일반인들의 휴식공간인 공원이 되었지만 1983년 12월 30일 이후 조선의 궁궐로 복원되었다.
조선의 궁궐은 조선인의 정신문화의 보루이며 조선왕가의 품격이었기에 창경궁이 창경원 공원이 되어버린 것은 이 두 가지가 말살된 치욕이며 우리의 자존심이 무너진 비참함이었다. 이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잇고 국격을 지키기 위해 창경궁을 복원하고 국가문화유산으로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창경궁은 일반인들의 휴식을 위한 공원이 아니라 국가유산으로 보존되어야 하는 조선의 궁궐인 것이다.
2019년 야간 상시 개방 전 창경궁 춘당지에는 백로 등 다양한 새들이 날아오고 철새인 원앙이 텃세라 할 정도로 많이 살고 있었으며, 오소리, 너구리, 다람쥐, 청솔모가 뛰어놀던 아름다운 자연 속 신비의 세계이었다. 어느덧 5년 세월이 지나자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가끔씩 들고양이만 눈에 띈다. 야간 개장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 파괴한 자연 환경 생태변화가 가져온 창경궁의 현실이며 부끄러움이다. 나무도 저녁에는 잠을 자야 생태 교란이 일어나지 않고 조선의 왕도 해가 지며 잠을 청했다.
궁궐은 어쩌면 하루 24시간 고요와 적막 속에 잠겨있고 백성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구중궁궐’이라 했을 것이다. 현 시대에 이런 옛 모습을 그대로 지켜 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궁궐에 대한 예의와 품격은 지키면서 보존해야한다 생각한다. 이러기 위해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복원 했을 것이다.
야간에는 조명이 설치된 공간과 영역을 제외하고 창경궁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입장객도 얼마 되지 않는다. 창경궁에서 열리는 공연과 행사는 꼭 창경궁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 소수의 인원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관람하며 경우에 따라 적지 않은 관람료를 지불하지만, 이 수입은 진행비에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며 야간 개장과 행사를 위한 관리비용도 엄청날 것이다. 효과와 비용 관계에서도 표 나지 않는 긍정적인 면을 첨부한다 해도 많은 비용을 지출해 가면서도 별다른 효과도 없는 이런 일들이 왜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공연을 위해서는 무대설치, 조명, 음향, 관람석배치, 출연자대기실 등 많은 공간이 필요하여 전각과 잔디밭을 이용해야 하며, 기구, 장비, 차량 이동이 필수라 아무리 조심하여도 훼손과 파괴가 함께 한다. 출연자들이 분장, 의상 갖추기, 소품보관 등을 위해 평소에 관람객의 출입을 금하는 전각을 사용하여 유물보존 위험도 존재한다. 공연장 주변을 통제하여 관람객의 관람을 방해하고 관람 목적을 상실하게 한다. 공연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으로 궁궐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역사를 탐닉하고자 하는 관람객들에게 불편을 주고, 불빛이 더해지는 야간으로 이어지며 창경궁 주변의 일반인들의 생활환경에도 낮 밤 가리지 않고 피해를 준다.
이와 같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이 부각되는 일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이제는 창경궁이 점점 창경원이 되어가는 것 같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500년 문화유산을 훼손해가면서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늘여만 가는지? 국가유산청과 산하 기관들에게 묻는다.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윗선의 관리들과 국가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사항을 조사, 심의, 자문하는 문화유산위원들은 무슨 생각과 시각으로 창경궁을 포함한 궁궐들을 바라보며 진정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궁궐이 파괴·훼손되고 자연환경 생태에 피해를 주며 궁궐의 가치와 보존에 불필요한 행사와 일들은 멈추어야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많은 예산을 보여주기 위한 비생산적인 일에 사용하지 말고 궁궐을 찾는 관람객들이 편하고 쉽게 궁궐을 찾아오고 유구한 역사의 향내와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맡고 즐길 수 있는 뭔가를 찾는데 사용해야 한다. 이곳이 ‘창경궁이냐! 창경원이냐!’ 혼란을 야기시키며 국가문화유산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행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궁궐의 위엄과 존엄을 되살려 모든 이에게 긍지와 자부심이 넘치게 하여야 한다.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외친다. 이곳이 ‘창경궁이냐! 창경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