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바꾸어 쓴
수필(隨筆)
- 원작 : 금아(琴兒) 피 천 득
수필은 청자 연적(硯滴), 난이요 한 마리 학
몸맵시 날렵하고 청초한 여인이다
그 여인 걸어가는 숲 속, 평탄하고 고요한 길
수필은 가로수가 늘어진 포장 도로
하지만 그 도로는 한적하고 깨끗하여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나 있다
수필은 서른여섯 중년 고개 넘어선 글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 내포하지 않은 문학
그대로 수필가가 쓴 참 단순한 글이다
흥미는 주지마는 흥분하게 아니 하니
조용히 혼자 거니는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엔 인생의 향기와 긴 여운이 스며 있다
수필의 그 빛깔은 황홀하지 아니하니
진하지도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해 추하지도 않고, 온아하고 우미(優美)하다
수필의 그 빛깔은 진주빛 비둘기빛
비단이라면 흰 바탕에 무늬가 조금 있다
그 무늬 사람 얼굴에 작은 미소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나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도 산만하지 아니하며
그렇게 날카롭진 않으나 깔끔하고 산뜻해
수필의 재료들은 무엇이든 가능하니
생활 경험 자연 관찰, 인간성과 사회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다면 무엇이나 다 좋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 개성이 꼭 필요한데
쓰는 이의 심정 따라 수필은 써지는 것
누에의 입에서 나온 액(液) 고치들을 만들 듯
플롯이나 클라이맥스 수필은 필요 없다
가고자 하는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길
마시는 한 잔의 차라면 방향(芳香)이 꼭 있어야 해
소설가나 극작가는 여러 성격 갖게 되어
때로는 햄릿 되고 오필리아 되지마는
수필은 독백이기에 찰스 램은 늘 ‘램’이다
수필은 쓰는 사람 솔직하게 나타내니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문학 형식
독자에 친밀감을 주는 편지와도 같은 것
덕수궁 박물관에 하나 있는 청자 연적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의 모양인데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하게 달려 있다
그 중에 다만 하나 꼬부라진 꽃잎 하나
균형 속에 있는 파격, 이것이 수필의 멋
한 조각 꼬부라지게 하는 마음의 여유 필요해
이 마음의 여유 없어 못 쓰는 건 참 슬픈 일
억지로 마음의 여유 가지려다 죄스러워
마지막 십분의 일까지도 번잡에다 줘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