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진정한 마지막 광대, 이동안이 남긴 이야기’ 국악타임즈 연재 열 한번째 이야기

제11회
연재자 (註)
이동안 선생은 광무대 활동 당시 당대의 명인들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남도소리에는 이동백, 김창환,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 이일선을 꼽았다. 공주의 지동근. 조진영, 이동안 선생, 최모 이렇게 넷이 나와 경기잡가를 부르면 관객들이 산천이 운다고 그랬다고 증언하는 것으로 보아 본인의 잡가 예능이 뛰어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개성 출신의 한인호, 최홍매 등이 경기소리를 잘했고, 서도소리에 장학선 선생과 이정하 선생이 수심가를 잘했고, 서도배뱅이굿하던 김주호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서도, 남도소리하는 이들이 모이던 단체인 서도창무창, 남도창무창이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서도창무창은 남도창무창만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악사로는 손이 육손인 생돈이 피리를 잘 불었고, 그가 시나위를 불면 안우는 사람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진도 출신의 박종기, 이동안 선생에게 대금을 가르쳤던 장점보 선생이 대금의 명인이었고, 경기도 여주 이천 곡수 출신의 정해시, 해금을 가지고 말을 한다고 소문난 수원 출신의 임흥문, 줄을 잘 탔던 줄광대 김봉업 선생이 해금을 잘 연주하였다고 하면서 임흥문의 연주는 지영희 선생의 해금연주를 훨씬 능가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북은 한성준 선생이 잘 쳤고 북의 한성준이지 무용의 한성준이가 아니며, 김인호 선생의 춤 출 때 한성준 선생이 꼭 북을 쳤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인호 선생이 승무를 추면 안 우는 이들이 없었을 정도로 춤을 잘 추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외 춤을 잘 추기로는 이동안 선생 자신과 김광채 선생이라는 분이 계셨다고 회고하고 있다.
광무대의 명인들
남도소리는 그냥 쩡쩡 산천이 우는 명창들이 불렀는데 나오기만 하면 관객들이 야단이 났지. 이동백, 김창환,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잡가에는 저 공주에 있는 딜근씨. 조진영씨가 잘했어. 지동근씨가 장구도 잘하고 그이들하고 나, 저 충청도 아산에 있는 최뭣이라고 넷이서 나와서 잡가를 부르면 산천이 운다고 그랬어.
광무대에서는 잡가가 참 인기가 있었지. 경기잡가도 좋았지만 남도잡가가 참 셌어. 경기소리에 한인호라고 내가 열네살에 들어가니께 하얀 노인인데 바로 지금 내또래여. 잡갇 잘하고 다잘했어 풍채도 좋고. 개성사람이랬어.
또 최홍매라고 한인호씨 약간 아랜데 서울사람이야. 최홍매씨는 저녁에 광무대에 나와도 숨이 가빠서 소리하기 힘들었지. 인제 이름을 죄 잊어버렸는데 같이 다니던 이로는 서도소리에 장학선이 수심가를 잘했어. 이정하도 잘하고. 서도배뱅이굿하던 김주호가 있고, 그때 창무장이라는게 있었어. 서도, 남도소리하는 이들이 모이던 단체야. 각각 서도창무창, 남도창무창이라는게 있었는데 서도창무창은 남도창무창만 못했어. 배우든지 뭐든지 어림없지.
또 악사로는 이일선씨. 진도에서 나온이가 대금부는 박종기고 해금에는 정해시라고 고향이 경기도 여주 이천 곡수가 고향이여. 이행이란 이도 소리를 잘하고, 박팔괘라는 이가 나보다 몇 살 안먹었는데 그 사람 처가가 수원에 임흥문이라고 해금을 가지고 말을 한다고 소문난 이였어. 지영희 해금에 비할데가 아냐 천지차이야.
정점보라고 나한테 대금을 가르친이가 잘했고 그 다음에 생돈이라고 손이 육손인데 피리를 아주 잘 불었어. 시나위를 불면 안우는 사람이 없었어. 니나나니니리 니나니나노나난니나니라리나니니 – 김봉업씨도 해금을 잘놀았어.
북은 한성준 선생이 잘쳤고 북의 한성준이지 무용의 한성준이가 아니여. 우리 선생님이 춤 추실 때 꼭 북을 쳤거든. 춤은 우리 선생님이 잘했지. 그분이 승무를 추면 안우는 이들이 없었어. 또 춤에 나하고 김광채라고 지금 김한국이 즈이 아버지여. 그사람들 말고도 많았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
다음 연재일은 2026년 2월 23일 오전 9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