匹夫之勇(필부지용)

  • 등록 2023.02.17 19: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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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새겨 읽는 고사성어

匹夫之勇(필부지용)


하늘을 즐기는 자
천하를 보존하고

 

하늘이 두려운 자
나라 하나 보존하지

 

용기(勇氣)도
크고 작음 있나니
큰 용기가 필요하네


<語 義> : 하찮은 남자의 용기.
              (소인의 혈기에서 나오는 경솔한 용기)
              (깊은 생각 없이 혈기만 믿고 함부로 부리는 소인의 용기)

 

 

<出 典>① : 孟子(맹자) 梁惠王章句(양혜왕장구) 下(하)

 

孟子(맹자)는 王道政治(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여러 나라를 돌며 遊說(유세)하기로 하고, 먼저 梁(양)나라로 갔다. 양나라 惠王(혜왕)은 맹자를 정중히 맞이하고서, 이웃 나라와는 어떻게 국교를 맺는 것이 좋겠는가를 물었다. 이에 맹자가,

 

“大國(대국)은 小國(소국)에게 받드는 마음으로, 겸허한 태도로 사귀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이는 仁者(인자)라야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지만, 은나라의 蕩王(탕왕)이나 주나라의 문왕(文王)은 이미 이것을 행하였습니다.

 

또한, 小(소)가 大(대)를 받드는 것도 하늘의 도리이오나,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武王(무왕)의 할아버지 대왕이 그것을 행하였기 때문에 주나라는 뒤에 대국을 이루게 되었고, 越(월)나라 왕 勾踐(구천)은 숙적 吳(오)나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존할 수 있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혜왕은 매우 훌륭한 도리라고 탄복하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양나라는 어느 나라에 대하여나 받들기만 해야 할 형편이 아닌가? 그래서 혜왕은 맹자에게,

 

“내게는 해가 된다고 하겠지만, 勇(용)을 즐기는 성품이 있으니 어찌해야 하오?”

 

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맹자는 다음과 같이 정중히 대답하였다고 한다.

 

“왕께서는 小勇(소용)을 좋아하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칼을 매만지고 눈을 부라리며, ‘너 같은 자가 어찌 나를 당할 것이냐.’라고 하는 것, 이런 따위는 필부의 용기로, 겨우 한 사람이나 상대할 따름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왕께서는 더 큰 용기를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原 文> 王請無好小勇(왕청무호소용) 夫撫劒疾視曰(부무검질시왈) 彼惡敢當我哉(피악감당아재) 此匹夫之勇(차필부지용) 敵一人者也(적일인자야) 王請大之(왕청대지)


<出 典>② 史記(사기)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秦(진)이 망하고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이 천하를 다툰 결과, 유방이 이겨 漢(한)나라를 세운다. 항우의 패인은 用兵術(용병술)에 있었다. 너무 자신의 힘을 過信(과신)한 나머지,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天子(천자)가 된 유방은 洛陽(낙양)의 宮(궁)에서 대신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知人(지인)과 用人(용인)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작전에는 張良(장량), 보급에는 蕭何(소하), 전투에는 韓信(한신)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셋이나 있다. 나는 그들을 모두 쓸 수 있었지만, 항우는 단 하나의 걸출한 范增(범증)조차 쓰지 못했다.”

 

그러자 한신이 유방에게 항우의 爲人(위인)에 대해 말했다.

 

“그[항우]는 노기를 띠고 호령을 하면 천명이나 기절할 정도지만, 用人(용인)에는 서툴러 어진 장군에게 믿고 말하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匹夫之勇(필부지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인정이 있어 병사가 병에 걸리면 흐느껴 울거나 자기가 먹을 음식까지도 나눠주지만, 막상 공을 세운 부하에게 벼슬을 내릴 때면 그것이 아까워 職印(직인)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매만지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婦人之仁(부인지용 : 여자가 지니는 소견이 좁은 인정, 하찮은 인정)’에 불과합니다.”

 

※ 王道政治(왕도정치) : 仁德(인덕)을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로써, 儒學(유학)에서 이상으로 하는 정치사상. 힘에 의해 정치의 목적을 달성하는 覇道政治(패도정치)의 상대어이다. 공자의 德治(덕치)사상에서 왕도가 제시되었으며, 그 후 왕도사상은 孟子(맹자)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漢代(한대) 이후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면서 儒敎政治(유교정치) 이념의 기본 내용으로 정립되었다.

송인숙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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