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새겨 읽는 고사성어
浩然之氣(호연지기)
호연(浩然)은 넓고 큰 모양
크고도 넓은 기운
천지를 가득 채운
크고도 넓은 정기(精氣)
무엇에
구애(拘礙)받지 않는
바르고도 큰 기운
<語 義> :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 자유롭고 유쾌한 마음)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는 떳떳한 기운이나 도덕적 용기)
<出 典> : 孟子(맹자) 公孫丑章句上(공손추장구상)
孟子(맹자)가 齊(제)나라에서 제자 公孫丑(공손추)와 나눈 대화이다. 공손추가 不動心(부동심)에 대한 이야기 끝에,
“선생님이 제나라의 대신이 되어서 道(도)를 행하신다면, 제나라를 틀림없이 천하의 覇者(패자 : 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動心(동심 : 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하실 것입니다.”
“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맹자는 그것을 勇(용)이라 말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大勇(대용)이라 하였다.
“선생님의 不動心(부동심)과 告子(고자 : 맹자와 논쟁의 적수로, 맹자의 성선설 부정함)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知言(지언 : 나는 알고 있다)과 거기에다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기르고 있다. ‘지언’이란 詖辭(피사 : 편협한 말), 淫辭(음사 : 음탕한 말), 邪辭(사사 : 간사한 말), 遁辭(둔사 : 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明(명)을 갖는 것이다. 또 ‘浩然之氣(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和氣(화기)를 말하며, 氣(기)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義(의)와 道(도)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선생님은 어떤 점에 특히 뛰어나십니까?”
하고 묻자 맹자는,
“나는 浩然之氣(호연지기)를 잘 기르고 있다[善養吾浩然之氣(선양오호연지기)].”
고 대답했다. 그러자 공손추는 다시,
“감히 여쭈어 보겠습니다마는, 무엇을 浩然之氣(호연지기)라고 하는 것입니까?”
가로되,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 그 기운은 지극히 크고 굳센 것이니, 곧은 것을 가지고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곧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그 기운이 됨은 정의와 道(도)에 맞는 것으로 이 기운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 이 기운은 안에 있는 옳음이 모여서 생겨나는 것으로, 밖에서 옳음이 들어와 취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여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있으면, 곧 굶주리게 되는 것이다.”
<原 文> 敢問何謂浩然之氣(감문하위호연지기) 曰(왈) 難言也(난언야) 其爲氣也(기위기야) 至大至剛(지대지강) 以直養而無害(이직양이무해) 則塞于天地之閒(즉색우천지지한) 其爲氣也(기위기야) 配義與道(배의여도) 無是餒也(무시뇌야)
이 대목에 대한 朱子(주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浩然(호연)이란 성대하게 유행하는 모양이다. 氣(기)란 바로 이른바 ‘몸에 충만 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본래는 스스로 호연하되, 수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맹자는 그것을 잘 길러 그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신 것이다. 知言(지언)을 하면 道義(도의)에 밝아서 천하의 일에 의심스러운 바가 없고, 기를 기르면 도의에 배합되어서 천하의 일에 두려운 바가 없으니, 이 때문에 큰 책임을 담당하여도 부동심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도 호연지기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으니, 오늘날의 우리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호연지기란 의와 도가 쌓여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大丈夫(대장부)의 기상으로 실현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공명정대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호방한 마음이나 기운’, 또는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는 도덕적 용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 1762~1836)의 浩然之氣(호연지기)
士大夫心事(사대부심사) 當與光風霽月(당여광풍제월) 無纖毫菑翳(무섬호치예) / 凡愧天怍人之事(범괴천작인지사) 截然不犯(절연불범) / 自然心廣體胖(자연심광체반) 有浩然之氣(유호연지기) / 若於尺布銖貨(약어척포수화) 瞥有負心之事(별유부심지사) 卽是氣餒敗(즉시기뇌패) / 此人鬼關頭(차인귀관두) 汝等切戒之(여등절계지)
사대부의 마음 씀은 마땅히 광풍제월과 같아 털끝만큼의 가려짐도 없어야 한다. /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 떳떳치 못한 일은 단호히 끊어,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 절로 마음이 드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져서 浩然之氣(호연지기)가 생겨날 것이야. / 만약 한 자의 베나 몇 푼 재물에 팔려 문득 마음을 져버리는 일이 있게 된다면, 그 즉시 이 기운은 위축되어 무너지고 만다. / 이것은 사람과 귀신이 갈리는 관건의 시작이니, 너희들은 깊이 경계하도록 해라.〈又示二子家誡(우시이자가계)〉
※ 栗谷(율곡) 李珥(이이, 1536~1584)의 浩然之氣(호연지기)
하루 종일 꼿꼿이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한 유생이 방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칠흑 같은 밤이었다. 다만 손에 닿을 듯한 별무리들이 하늘의 존재를 알려줄 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온통 검은색뿐이었다.
‘내가 있다는 것은 분명 느껴지지만,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 세상은 커다란 어두움 속에 덮여 있구나. 하지만 모든 사물이 없어진 것은 아닐 터.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허어, 글로만 理氣(이기)를 논하여 氣(기)가 생기기 전에 理(이)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어둠으로 사물의 있음을 보지 못한 것과 같구나.’ 儒生(유생)은 방안으로 들어가 몇 자 적더니 깊은 사색에 빠졌다.
水遂方圓器(수수방원기) 물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며,
空隨小大甁(공수소대병) 허공은 병의 크기에 따라 대소가 나뉘누나.
理(이)를 물과 허공에, 氣(기)를 그릇과 병에 비유하여 이기의 관계를 명쾌하게 꿰뚫은 이 유생은 누구인가. ‘理通氣局(이통기국)’과 ‘氣發理乘(기발이승)’을 주장하여 조선 유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栗谷(율곡) 李珥(이이)였다. 시는 親友(친우)인 成渾(성혼, 1535~1598)에게 보내려고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