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5]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춤꾼의 문법 4
재인청 춤과 장단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 아니라 백문이불여일타百聞而不如一打다. 장단은 아무리 들어도 직접 쳐봐야 하는 것이었다. 태평무를 익히면서 재인청 춤이 장단과의 조화에서 절묘한 멋이 나온다는 것을 내 깜냥으로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태평무를 떼자 장단을 뜨고 이수증까지 받게 되는 일련의 성취들이 바쁜 일상으로 잦아들 즈음, 선생께선 이젠 장단 공부를 하라신다. 태평무를 학습하는 기간에는 눈길도 제대로 안 주시더니 선생께서는 요사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부쩍 챙기신다.
문제는 경비였다. 무슨 장단 수업에 춤 작품비를 내야 하듯 써야 하는 것인지! 마침 나의 사정이 여의찮았던 터라 망설이다 못해 슬그머니 의심병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어렵게 배운 춤인데 장단까지 익히면 당연히 좋은 일 아닌가! 두 생각이 서로 티격태격하는데 나는 우리 춤이 가무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선생께선 춤꾼일 뿐이다. 전문 악사도 아닌데 무슨 작품비람! 남들처럼 MR을 쓰면 되지. 악사들은 뭐 먹고 살라고! 그런데 선생의 채근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 제가 사정이 좋지 않아서요. 준비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라고 준비했던 완곡한 거절의 언사를 쓸 수가 없었다. 결국, ‘꼭 해야 한다.’는 것보단 ‘해보지 뭐!’라는 오기가 섞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선생의 장구 앞에 앉았다.
여러 요소에서 필요 경비들을 살뜰히 줄여야 했다. 흔쾌하지 않은 모든 일에는 불만이 있는 게 인지상정일 터. 그런데 선생의 장구 앞에 앉아 따라 치는 장구 장단과 가락은 첫날부터 나를 놀라게 했다. 태평무를 추면서 듣는 장구와는 전혀 판이한 세계였다. 가장 큰 소득은 장단을 익히면서 춤사위들이 떠오르는데 이게 나에게 대단히 분석적인 시각을 선사했다.
춤이 정박을 따라 추는 부분과 어떻게 해서 춤사위들이 장단을 거슬려 엇박을 밟게 되는 건지,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절묘하게 뒤섞여 장단과 하나가 되는 건지 구분할 수 있는 경험은 참으로 소중했다. 심지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놓치고 있었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도 있다. 그것은 선생께서 그리도 강조하셨던 엇중모리 장단이 엇중몰이신칼대신무 춤 장단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처음 깨달았을 때는 큰 충격이었으나 기실은 단순한 하나의 장치였다. 예를 들어 장단은 엇모리장단인데 춤꾼은 엇중모리 느낌을 떠올리면서 춤을 춘다면 춤은 장단에서 미세하게 어긋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바로 ‘엇’이고 관객으로서는 ‘신선함’을 선사하는 요체가 되는 것이었다. 이른바 ‘오브제’다. 재인청 예인들은 어찌 이런 어긋남의 미학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가!
장단 공부는 춤꾼이 어떻게 ‘눈’을 찍어 ‘춤집’을 크게 보이게 하는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하나의 열쇠를 제공했다. 여전히 이론적으로 그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길을 보았다는 확신이었다. 아, 어찌하여 재인청 예인들은 이 절묘하고 거대한 장단의 세계를 창안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선생께서 익히고 공유했던 재인청 장단의 세계를 내가 엿보게 되다니! 잠시의 돈타령이 부끄러웠다. 선생께선 내가 제대로 춤추기를 진정으로 원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단언한다. 장단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어야 한다. 최소한 춤꾼이라면 말이다.
장구의 ‘장’은 노루이고 ‘구’는 개다.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노루와 개의 가죽으로 장구를 만들었으니 그 얼마나 민감한 소리를 내겠는가! 민감함을 어찌 다스리기에 그토록 섬세한 장단이 걸어나와 춤이 된단 말인가! 재인청 춤은 장구의 이 두 가죽을 연결하는 조임줄을 조이는 부전을 모두 당기면서 춤은 시작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선생을 통해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