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심우장의 뮤지컬 ‘심우’
뉴라이트에 젖어가는 학생들 어떻게 가르칠까
지난 12월, 우리 사회 깊숙이 잠자던 역사의식이 깨어나는 사건이 있었다. 한순간, AI 딥페이크를 의심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라니. 꾸역꾸역 내란 종식을 위한 노력의 시간이 6개월이란 세월을 향해가며 다시 정상화를 넘어 진일보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를 싹틔우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보다 공고한 극우세력의 실체를 마주했다.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파시스트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놀람을 넘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 가산점 제도가 여성과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나며 폐지되자,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주장하는 '남성연대'가 등장하고 성평등의 문제가 성 갈등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몰카 사건에 대한 성차별적 경찰 수사가 발단이 된 혜화동 여성 집회에서는,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는 급진적 메갈리안들의 공격적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소모적인 성 대결로 변질되며, 우려하던 갈등의 씨앗은 뿌려지고 있음을 짐작하긴 했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진보정권 정치의 결과로 해석하는 편협하고 공격적인 사고에 일부 어리석은 남학생들이 물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서부지법 폭도들이 되어 나타난 그들의 모습을 목도 한 현실은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극우 유투버들이 양산하는 그릇된 컨텐츠에 젖어가는 청년들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에 지어 살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심우장이 있다. 보통 집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짓지만, 심우장은 북향이다. 남쪽에 있던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기도 싫었던 선생의 굳은 뜻이 이 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마다 6월, 해방을 1년 앞둔 1944년에 입적한 한용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심우장 마당에서는 뮤지컬 '심우'가 열린다. 이 작품은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적 한 · 일 합병 이후 만주로 건너가 신흥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하며, 서로군정서 참모장과 국민대표회의 의장을 지낸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소재로 담는다. 1931년 일본 경찰에 체포된 김동삼 선생은 복역 중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으며, 그의 장례식은 심우장에서 치러졌다. 극의 마지막, 1944년의 만해 한용운은 오늘을 찾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대들의 조국은 안녕하신가?"
선생의 마지막 물음은 깊은 울림을 남기며, 40여 분의 극은 막을 내린다.
이 울림이 있는 뮤지컬은 한창 성북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활발하던 시절 성북구로 전입해 온 교사와 일부 선발된 학생들의 관람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었다.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활동가로 함께하던 일이 연고가 되어 필자는 중1 학년 부장을 할 때 성북문화원 사무국장님께 부탁하여 단체관람을 추진한 적이 있다.
뮤지컬 ‘심우’를 관람하는 한성여중 1학년 학생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빗발이 쏟아지는 가운데 천막 아래서 비를 피해야 하는 분주한 상황에서의 관람이라 집중이 잘되지 않아 기대한 만큼의 배움이 일어나지 않을 듯하였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였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물음에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훌쩍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날의 감동을 그림으로 그려 내게 선물 해 준 친구는 말썽꾸러기 중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녀석이었기에 내게 더 큰 선물이 되었다.
뜻밖의 주빈이의 선물
장소가 기억하는 역사, 아이들이 감동하는 뮤지컬로 태어나라~
필자는 이 감동적인 콘텐츠가 1년에 단 3일만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성북구의 모든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니, 성북구를 찾는 전국의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장소가 기억하는 이야기가 어디 뮤지컬 ‘심우’만 있겠는가?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장소의 기억을 품은 공연을 만나고, 이육사 문학관에서는 '이육사 뮤지컬'을, 동주 박물관에서는 '윤동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진로를 지도할 때 우리는 '배고픈 직업'임을 전제로 깔고, 이상을 위해 살 것인가를 학생들에게 묻는다. 21세기, K-POP과 K-드라마, 영화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도, 대자본의 투자를 받지 못하는 영역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장소가 기억하는 독립운동사를 담은 글을 쓰게 하고, 음악을 만들게 하고, 연기를 하게 하면 어떨까? 매년 수많은 장소에서, 그곳의 이야기가 새롭게 피어나고, 찾는 이마다 그 감동을 안고 돌아가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중국은 그토록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가졌어도, 일제 치하에서 목숨 걸고 나라에 헌신한 수많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그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 학생들이 찾는 곳곳마다 예술 작품으로 살아나 뜨거운 감동으로 살아난다면, 어찌 식민지 근대화론에 찌든 뉴라이트 같은 왜곡된 의식이 발붙일 수 있겠는가. 극우 유투버의 감각적 생산물에 병들어가는 우리 청년을 구출해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
우리말은 국어, 우리 역사는 국사, 우리 음악은 국악
기왕에 뮤지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필자는 우리나라만의 뮤지컬, 우리 역사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태리에 가면 이태리 가곡으로 부르는 극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하듯이 대한민국에 가면 우리 음악에 우리 소리로 연기하는 극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길 또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