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명무] 김포에서 춤꾼으로, 문화행동가로: 노수은의 끝나지 않은 무대

  • 등록 2025.05.26 18: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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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에서 춤꾼으로, 문화행동가로: 노수은의 끝나지 않은 무대

 

따뜻한 춤꾼을 만났다. 기계공업의 길을 걷던 고등학생, 낯선 길거리에서 무용 선생님을 만난 그날, 그의 인생은 선로를 벗어났다. 용접 대신 춤사위를 배웠고, 주물 대신 장단을 새겼다.
“춤은 제 인생입니다.”
김포에서 25년째 터를 잡고 살아가는 무용가, 노수은. 그는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지역 문화의 씨앗을 심고, 정치의 무대에서 제도를 바꾼 문화행동가였다.

 

 

기계공고 학생이 춤꾼이 되기까지

 

1970년, 박정희 정권의 ‘공업입국’ 구호 아래, 이리공고 기계과에 진학했던 소년은 ‘손재주’ 앞에서 좌절했다. 용접, 판금, 주물… 손에 잡히는 건 늘 서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최태열 선생을 만났다. 우연이 운명이 된 순간이었다.
“학교도, 공부도 다 그만두고 무용을 시작했죠. 그때는 남자 무용가가 많지 않았어요. 동기생도 20명도 안 됐고요.”

 

춤은 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송범, 이길주… 이름만으로도 무겁고도 빛나는 대가들 밑에서 춤을 배웠고, 무엇보다 이매방 선생 문하에서 배운 춤이 그의 뼈에 새겨졌다.
“제 춤의 80%는 이매방 선생님께 배운 겁니다. 정중동, 음양의 조화, 장단에 맞춘 춤… 그게 제 몸에 남아있어요.”

 

 

무용단을 떠나, 지역에서 피워낸 예술의 싹

 

국립무용단에서도 그는 한계에 부딪혔다. "주인공만 늘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군무였어요. 발전성이 없었죠."
7년을 버티다 국립무용단에 사표를 내고, 김포로 내려왔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김포에 와 보니, 문화예술 단체라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김포시지부를 만들었죠. 2000년 7월 12일, 창립총회했어요.”

 

그는 또한 김포예총 회장을 맡아 무용, 국악, 미술, 문학 등 8개 단체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김포국악제, 김포예술제 같은 축제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들이 손만 벌리는 현실에 분노했다. “시에서 예산을 내려줄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구조였어요. 그걸 바꾸고 싶었죠.”

 

춤꾼의 정치, 김포의 제도를 바꾸다

 

2014년, 그는 김포시의원에 당선됐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김포의 문화예술 환경을 바꿔보자. 김포에도 무형문화재를 만들어야지. 우리 걸 지키는 제도가 필요했어요.”

 

그는 김포시 무형문화재 발굴 및 육성 조례, 문화마을 및 문화의 거리 발굴 지원 조례, 작품 구매 및 임대 조례 등 문화예술 관련 제도를 하나씩, 현실적으로, 법적으로 만들어 냈다.
“김포에서만 통용되는 무형문화재를 만들자, 그게 꿈이었어요. 국가나 광역단체만 보존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그는 4년 동안 쉼 없이 달렸지만, 결국 정치의 길에서 물러났다.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적도 많이 생겼고, 국회의원, 도의원 가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저는 춤을 추고 싶었어요."

 

김포의 연습실에서 춤을 시연하는 노수은 명무

 

다시 무대로, 다시 춤꾼으로

 

지금, 김포의 작은 연습실. 사비로 만든 100석 남짓한 작은 무대. 그는 여전히 ‘춤꾼'이다.
“제 꿈은 여전히 무대에 있어요. 국립무용단이든 국립극장이든, 국악원이든, 마지막까지 춤을 추고 싶어요.”

 

그의 레퍼토리 ‘여원무’는 경쾌하고도 맑은 창작춤. 아름다운 여인들이 철가야금에 맞춰 원을 그리며 신나게 추는 춤, 그 춤을 보고 관객들은 박수를 보낸다.

 

노수은 명무의 창극춤 '연우야'


“춤은 건강에도 좋아요. 국악도 그렇고요. 허리, 관절 아픈 분들, 춤추면 낫는 경우도 많아요. 언론에서도 이런 걸 좀 알려주면 좋겠어요.”

 

그는 말한다.
“우리가 왜 국악, 무용을 해야 하냐고요? 그게 우리 자존심이에요. 전통이 사라지면 민족도 사라지는 겁니다.”

 

노수은, 춤꾼으로서, 문화행동가로서, 김포의 땅을 딛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더 큰 무대를 향해 있다.
그는 여전히, 춤을 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국악타임즈는 노수은 명무의 긴 춤 인생과 김포의 문화예술을 일구어 온 그 길에 깊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무용인으로서의 열정과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모두 품은 그의 여정은 지역 예술가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제자들과 후배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결같이 따뜻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다정다감한 인품과, 춤꾼으로서 흔들림 없는 열정에 국악타임즈는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고, 노수은 명무의 발걸음 위에 전통예술의 씨앗이 더욱 풍성히 피어나길 기원할 것이다.

송혜근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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