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진정한 마지막 광대, 이동안이 남긴 이야기’ 국악타임즈 연재 열 여덟번째 이야기

제18회
연재자 (註)
이동안 선생은 해방 직후 치안대장(종로경찰서장)을 그만두고 돈의동에 원생이 백여 명 되는 비교적 큰 규모의 대한국악무용전문학원이라는 학원을 냈다. 교습도 하고 예술단체들과 창경원 같은 데서 공연을 많이 했으며 기타 공연 활동도 하였다. 신익희, 장택상, 서울시장 부인, 각 장관 부인 등 약 80여 명의 후원회가 있었고, 학원이 60평씩 120평으로 아래 위층으로 운영되었는데, 위층은 회원들한테 내주고 아래층에서 춤을 가르쳤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이동안 선생의 학원은 해방 전 일제강점기에도 운영했었는데 음악은 피리하고 가야금 했던 이일선 선생이 가르치고 또 김동준 선생이 소리를 가르쳤다고 회상한다. 한성준 선생이 주도하던 조선음악무용연구회 악사들이 전부 흩어지고,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동안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으며 입본 고위층에 상도 받아 상장을 학원에 걸어놓아 일본 관리들에 의한 간섭과 탄압 없이 학원 운영을 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일본 공연 시 학무를 추었다는 증언이 눈에 뜨인다.
해방후 대한국악무용전문학원 시절을 회상하며
나와서 동대문에다 학원을 냈어요. 대한국악무용전문학원이라고 학생이 한 백여명 됐는데 또 단체해가지고 돌아다니다가 살았지. 단성사에서 비원쪽으로 좀 올라가서 사거리지. 돈의동. 그러니께 해방전부터 시작해서 해방후까지 한 20년동안을 계속한거여.
신익희, 장택상, 서울시장 부인하고 후원회를 조직해가지고 각 장관 부인을 한 80명 모아가지고 후원회를 만들었어. 내 학원이 아래 위층이 60평씩 120평을 가지고 하는데 윗층은 회원들한테 내주고 아래층에서 춤을 가르쳤거든. 동대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덴데 옛날에는 절이었는데 얼마전에 헐리고 없어졌어. 그때는 들어온 창고에서 과일이 썩어날 정도로 쌓여있었어. 그게 대한국악무용전문학원이여. 창경원같은 데서 공연을 많이 했지. 오래 학원을 하다가 집이 헐리게 돼서 다시 종로 3가로 오게 된거여.
음악은 피리하고 가야금했던 이일선이가 가르치고 또 김동준을 소리선생으로 두구. 죽었어. 또 부안 사는 남도창을 가르치고. 이중에 이일선만 조선음악무용연구회 회원이고 다른이는 아니야. 그때 조선음악연구소는 악사들이 전부 흩어지고, 회원들을 우습게 알고 그랬거든. 나도 그만뒀는데 적만 두고 어영부영했지. 또 김제 사는 서 뭣이라고 와서 남도창을 가르쳤어.
일본 대판 가서 공연을 하는데 학무를 췄거든. 왜정때 내가 부민관에서 추구 일본땅에 전국적으로 댕기면 추었는데 소문이 나서 일본 근위수상이 와서 한번 보자해서 데려간거여. 그개 가설람은 춤춘거여. 그때 근위수상격인가 되는 이한테 상장도 받았었는데 학원에 걸어놨더니 일본놈들이 들이닥쳐서 장구 막 후려차고 이 자식아 하면서 뱃길로 차고 행패를 부렸거든.
이놈의 자식들아 나는 허가를 맡아가지고 한다. 근위수상 사진이 걸리고 감사장이 있거든요. 그놈들이 말하다 말고 사진에다 경례를 하더만. 경례하더니 그러라고 잘하시라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그 다음부턴 맘 놓고 두들겼지. 다른데서는 맘놓고 못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만한 학원을 하는 이가 없었어.
다음 연재일은 2026년 4월 13일 오전 9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