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금 병창의 과거와 미래를 잇다… 전통을 딛고 비상한 젊은 무대
이어령 예술극장에서 펼쳐진 전통예술원 성악 전공 정기 발표회는 가야금 병창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무대였다. 사회를 맡은 가야금 병창 전공 이산은 “학생들의 꿈과 열정이 피워낸 꽃을 함께 봐달라”는 인사로 공연의 문을 열며, 이날 무대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20세기 초 음반에 남겨진 명인들의 소리를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데서 출발했다. 1906년 미국 빅터 레코드에 취입된 박팔계 명인의 음원을 토대로 재구성한 ‘산양가(사냥가)’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소리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미감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이어 심상건 명인의 음악 세계를 담은 무대에서는 청송 심씨 가문의 전통과 중고제 특유의 담백한 멋이 젊은 연주자들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구현됐다.
특히 최소옥 명인의 음원 복원, 북한 가야금 병창 ‘해당화’와 ‘랭산모판아리랑’ 무대는 남과 북의 음악 어법 차이를 생생히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회자는 “같은 한민족이지만 음악의 언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와 동시에 묘한 아쉬움이 느껴진다”며, 음악을 통한 소통과 통합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가야금 병창 이산
이번 무대는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았다. 삼도 민요 ‘꽃타령’, 가야금 병창 ‘심청가’ 눈대목 구성, 정가 병창과 경기민요 병창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전통 성악 장르의 확장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했다. 특히 병창 형식을 정가와 민요에 접목한 무대는 낯설지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시하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결합한 단막극 ‘상좌 없는 상좌’는 전통음악의 극적 확장을 시도한 실험적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누가 앞에 서는가’가 아닌 ‘어떻게 함께 판을 만들어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 작품은 가야금 병창이 향후 하나의 공연 양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무대 위에는 젊은 연주자들뿐 아니라, 가야금 병창의 역사를 만들어온 명인들도 함께 자리했다. 오갑순 명인을 비롯해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보유자 이영애, 최근 새롭게 지정된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정예진 등 원로 예술인들이 객석에서 후배들을 응원하며 세대 간 예술적 계승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공연은 교육의 성과이기도 했다. 전통예술원 채수정 교수가 총연출로 무대를 이끌고, 기획을 맡은 이선 교수 등 지도진의 헌신, 여기에 후원기업 제일메디칼코퍼레이션과 태흥장학재단의 지원이 더해지며 학생들이 깊이 있는 전통예술 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12현과 25현 가야금이 함께하는 신민요 연곡이 펼쳐지며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1년간 준비해 온 학생들의 노력이 응축된 이 무대는 봄에서 겨울까지의 시간처럼 축적된 과정의 결실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산은 “이어령 예술극장에서 피어난 52송이의 꽃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무대는 가야금 병창이 단순한 전통의 계승을 넘어, 새로운 예술 언어로 확장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