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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연] 그리움을 남기고 간 사람, 김대환을 추모하는 스무번 째 공연, 눈물이 강물되어 흐르다.

 

[추모공연] 그리움을 남기고 간 사람, 흑우(Black Rain) 김대환을 추모하는 스무번 째 공연, 눈물이 강물되어 흐르다.

 

2024년 3월 1일 오후 3시 한국문화재재단 풍류극장 무대에서 제20회 흑우(Black Rain) 김대환 추모공연이 열렸다.

 

지난 20년간 매년 3월 1일 기일이 되면 김대환을 존경하며 가슴에 품고 사는 한·일(韓日) 최고 예술인들이 미망인을 모시고 저승으로 먼저 떠난 거대한 예술인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공연을 올렸다. 늘 그랬듯 국악가요 국민가수 <장사익>이 기획하고 중심이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른 이 공연은 아픔과 아름다운 뜻이 담긴 마지막 헌정공연이다.  

 

김대환은 한국 프리 째즈의 최고봉으로, 음악의 형식과 틀을 깨 ‘김대환 타법’이라는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창조해낸 ‘Free music’의 선구자이며 독보적 타악(퍼커션) 주자였다. 양 손 열 손가락 사이에 6개의 북채를 끼우고 북을 두들기던 타악의 명인이었다. 한국 록(ROCK)의 대부 ‘신중현’이 ‘한국 그룹사운드의 맏형’이라 불렀고, 가왕 ‘조용필’이 어린 시절 군밤 맞아가며 음악을 배웠다. 1990년 쌀 한 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새긴 세서미각(細書微刻)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김대환은 2004년 3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 프리뮤직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최고의 트럼팻 연주자 <최선배> /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창시자인 꽹과리 명인 <이광수와 민족음악원 사물광대> / 들국화 객원 단원이며 어쿼스틱 기타 한국 최고 연주자 <김광석> / 해금 명인 단국대 국악과 교수 <강은일> / 거문고 달인 서울대 국악과 교수 <허윤정> / 섹소폰 최고 연주자 대학교수 <이정식> /  째즈가수 <웅산> / 일본 노가쿠(가면음악극) 오쿠라(大倉)류 북 반주자 <오쿠라쇼노스케> / 일본 전통 악기 횡적(橫笛) 가구라부에(神樂笛)와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연주자 <요코자와 가즈야> / 일본 춤 부토(舞踏)의 명인 <카가야 사나에> / 작은 네 줄 기타 소프라노우쿨렐레(Ukulele)를 치며 노래하는 <아끼꼬> / 재일동포 장구 연주자 <민영치> / 장식이라 할 것도 없는 단촐하면서도 꾸밈없는 무대였지만 필자가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지근거리에서 행복을 누리는 공연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다.

 

 

사랑방처럼 온화하고 포근한 느낌 속 위로부터 급경사로 펼쳐진 반원형 다섯 줄 164석 관람석과 맞닿은 그저 작은 마당 같은 평면 무대에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진옥섭>이  “공연은 관객을 위해 있지만 오늘 공연은 출연자를 위한 공연이다.” 국악계 최고의 입담으로 막을 열어 관람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무대에 집중하였다.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 창시자이며 꽹과리 명인 <이광수>가 비나리로 김대환의 명복과 관객의 만복을 빌어주고, 이광수의 상쇠소리 따라 춤추는 <민족음악원 사물광대>의 화려한 앉은 반 사물놀이 가락의 아름다움은 황홀했다. 

 

땅땅 때리는 쇠 소리는 맑고 깨끗하게 퍼짐 없이 통통 튀며 예리하게 가슴을 파고들었고, 청아하게 궁 편과 채 편에 달라붙으며 끊어서 단음을 내는 장구 소리는 뛰는 가슴을 블랙홀 속으로 빨아들였다. 둥둥거리는 북의 울림은 낙뢰와 함께 쏟아지는 천둥이었으며, 댕댕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징 소리의 잔잔함은 뜨거운 열기를 쏟아내는 쇠‧장구‧북의 열정을 부드럽게 포용하며 조화의 오묘함을 그려냈다. 

 

약 30여분 동안 3.1절의 아픔과 초봄 꽃샘추위를 녹여 버리는 듯 공연장에 열기를 불어넣어 뜨거움으로 들뜨게 하고 희망으로 채웠다. 무대 뒤편 하얀 스크린에는 20년 세월의 추모제 영상이 펼쳐지며 사물놀이 장단 속에서 추억의 아픔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일본 전통 복식인 기모노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복식에 작은 네 줄 기타 소프라노우쿨렐레(Ukulele)를 가슴에 안고 연주하며 노래한 <아끼고>의 자작곡은 뜻은 알 수 없었지만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소프라노우쿨렐레 소리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장난감 기타 소리 같았지만 <아끼고>의 노래 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청량감을 꽃피웠다. 

 

무대 좌측 한쪽에 자리 잡은 김대환의 생전 애마 할리데이비슨의 부릉거리는 엔진 소리와 <오쿠라쇼노스케>가 일본 전통 작은 북을 옆구리에 끼고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짧고 간결하게 내지르는 애잔한 괴성을 반주 삼아 두 줄을 활대로 비벼 관객의 마음을 음률의 파도 위에서 넘실넘실 춤추게 만든 <강은일>의 오묘한 해금소리는 생과 사의 합체가 되어 귓속을 파고들며 가슴을 저리게 했다.

 

한국 프리 뮤직의 창시자, 최고의 트럼벳 연주자, 가수 <알리>의 대학 스승, ‘김대환’과 함께한 째즈 트리오 <강트리오>의 한 명, 30대 때 오른손을 다쳐 왼손으로 연주하는 80대 노장 <최선배>의 트럼펫 소리는 귀에 익숙한 힘찬 내디딤과 막연히 타오르는 희망이 담긴 기상 나팔소리가 아니었다. 트럼펫을 처음 배울 때 나오는 “쉬쉬” 소리만 이어지며 탁함의 연속으로 숨과 호흡의 거침이 느껴지는 최고 난이도의 연주였다. 떠나가신 임에 대한 애환과 그리움이 담겨 마냥 아름다웠다. 악보도 없고 정해진 선율이 없어도 경이로운 숙연함이 객석을 뒤덮었다. 

 

<이정석>이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들려주는 재즈의 자유로움은 악보와 형식이 없었다, 지금 느끼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소리의 혼이 춤추는 아름다움이었다. 이 황홀함에 빨려드는데 검은색 비니 모자를 눌러쓰고 남도 흥타령을 재즈로 편곡하여 노래를 부르며 객석에서 무대로 홀연히 걸어 나온 <웅산>은 색소폰 소리에 휘감겨 저승에서 오신 손님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진도 씻김굿노래가락 ‘손님네야’가 웅산의 재즈로 무대를 뒤덮으며 <요코자와 가즈야>의 돌피리 소리와 어우러져 울려 퍼지자 김대환의 혼이 끌려 나와 춤을 추는 것 같아 서러운 추모제 현장에 서있는 괴기감마저 밀려왔다. 

 

여섯 줄 거문고 농현의 아름다움과 현을 휘젓는 술대의 넘나듦이 만들어내는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소리가 가슴속으로 파고 들었으며 손으로 두들기는 현의 파고(波高)는 거문고 소리의 아름다움에 기교의 화려함을 더해 현대적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생동감이 색다름의 묘미를 선물했다. <오쿠라쇼노스케>의 작은 북소리, <민영치>의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장구소리가 하나가 되어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으로 빠르며 격동적으로 뻗어내는 소리는 현대음악의 정서를 거문고의 웅장하고 묵직한 소리에 담아 자연의 소리 울림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허윤정>의 열정이 담긴 현(絃)의 춤사위였다. 

 

화려하면서도 현란한 손놀림으로 들려주는 감미로운 소리는 <김광석>의 기타에 ‘사람들이 왜 감탄하며 감동하는지’를 깨닫게 하게 하는 희열이었다. 적막을 뚫고 들려오는,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울림으로 심연 속으로 영혼을 불러들이는 연주를 눈앞에서 듣고 보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력의 향연이었다.

 

출연자들과 함께 한 30년 전 김대환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배경으로 한 <카가야 사나에>의 부토(舞踏)는 1959년 히쓰카타 다쓰마가 일본 전통 예술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를 서양의 현대 무용과 접목하여 탄생시킨 아방가르드 무용으로 ‘암흑의 춤’ 혹은 ‘죽음의 춤’으로 불린다. 허공에 떠다니는 헛것(귀신)을 잡으려 원초적 본능의 몸짓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초점 없는 눈빛으로 무대와 객석을 떠돌며 허실한 웃음마저 자아냈다. 죽음이란 주제로 아름다운 것만이 미(美)가 아니라는 확장된 무용 의식의 표현으로, 신선함과 특별함이 또 하나의 일본 문화를 깨우치게 했다. 

 

 

강한 쇠소리에 가까운 한 음의 높고 굵은 소리가 끊어지고 이어지는 돌 피리 이와부에(いわぶえ) 소리에 맞춰 퍼지는 독특한 구음소리와 우리 중금(中笒) 소리가 우는 것 같은 일본 전통 피리 가구라부에(神樂笛) 연주가 어우러진 특별함은 일본 전통 예술을 지켜내는 예인 <요코자와 가즈야>의 멋이 담겨 있었다.

 

왼팔로 감아쥐고 옆구리에 끼고 오른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극히 단순하게 두들기며 간간히 “고호, 이야!” 주문 같은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귀곡성(鬼哭聲)이 귀속을 파고들며 오싹함의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공포감마저 불러온 <오쿠라쇼노스케>의 아주 작은 일본 전통 장고 ‘쓰즈미’ 연주는 일본 본연의 향(香)내음과 색깔을 강하게 전달하였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들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미워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다~” 곰삭은 창법이 쏟아내는 노래 ‘뜨거운 침묵’을 따라 <이정석>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가슴을 저미며 울고, <김광석>의 어쿼스틱 기타 반주에 온 열정을 담아 관객의 마음을 훔쳐버린 ‘빛과 그림자’와 ‘봄날은 간다’ <장사익>의 소리는 20회를 맞은 ‘김대환 추모 공연’의 힘과 사랑이 실려 있었고 약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관객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득 채워 주었다. 

 

마지막으로 “정(正) 이월이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장사익의 ‘그리운 강남 아리랑’을 전 출연자와 관객이 하나 되어 열창하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164석 작은 공간에서 크게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열린 공연이지만, 우리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최고의 무대, 아름다운 시간, 훌륭한 공연이었다. 전석 ‘3만원’ 정말 저렴한 상징적인 관람료도 미망인에게 ‘헌정금’으로 쓰이는 뜻 깊은 만남의 시간이었다. 

 

공연후기라기보다는 장문의 공연 서사시를 기록했다. 뜻있는 공연이며 최고의 예술인들이 만들어낸 찬란한 보석 같은 위대한 공연을 ‘함께 나누지 못한 그 누구라도 이 글을 읽고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20회 동안 흑우(Black Rain) 김대환 추모 공연을 위해 헌신하신 많은 분들과 출연자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올린다. 

 

고 흑우 김대환님의 극락왕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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