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바꾸어 쓴
관동별곡(關東別曲)
- 원작 : 송강(松江) 정철(鄭澈)
강호(江湖)를 사랑함이 더욱 깊은 병이 되어
대숲을 곁에 두고 세월(歲月)을 앓을 적에
팔백 리 관동 방면(方面)을 나라님이 맡기셨네
어화 성은(聖恩)이야, 갈수록 망극(罔極)하다
연추문 들어서니 경회(慶會) 남문 날 반기고
용안(龍顔)을 친히 뵈오니 부임(赴任) 채비 서두네
양주(楊洲)서 말을 바꿔 여주(驪州) 지나 섬강 치악
굽이도는 소양강은 어디로 흐르는가
임 떠난 외로운 신하(臣下) 근심 너무 많구나
철원(鐵原)이라 하룻밤이 왜 이리 길고 긴가
북관정 올라보니 삼각산(三角山)이 보이는 듯
임 생각 나라 걱정에 봄밤마저 지새네
태봉국 궁예왕이 거닐었던 대궐터엔
우짖는 까막까치 만고(萬古) 흥망 알겠는가
옛 회양 이름도 같구나, 선정(善政) 다짐 없을까
감영(監營)이 무사(無事)하고 춘삼월 호시절에
화천(花川)의 시냇물이 금강산을 가리키니
행장(行裝)도 번거롭구나, 대[竹] 지팡이 하나뿐
만폭동(萬瀑洞) 골골마다 은빛 고운 무지개라
폭포수 우레 소리 십 리 밖을 울리더니
막상 와 자세히 보니 흩날리는 눈[雪]일세
금강대 맨 꼭대기 선학(仙鶴)이 새끼 치니
봄바람 옥(玉) 피리에 선잠을 깨었는가
허공을 치솟아 뜨니 옛 주인을 반기는 듯
소향로(小香爐) 대향로봉 눈 아래 굽어보고
정양사 진헐대를 다시 올라 바라보니
예가 곧 여산(廬山) 아닌가, 진면목이 다 보이네
어화 조물주(造物主)여, 야단스런 저 솜씨여
하늘을 나는 모습 연꽃을 꽂은 모습
동해(東海)를 박차는 모습 임금님을 받드는 듯
높도다 망고대여, 외롭구나 혈망봉이
하늘에 치밀어서 무슨 사연(事緣) 아뢰려나
천겁(千劫)을 지켜온 기상, 저런 지조(志操) 있을까
개심대 다시 올라 중향성(衆香城)을 바라보며
만(萬) 이천 봉우리를 낱낱이 헤아리니
봉마다 끝마다 맺힌 기운(氣運)이여 서기(瑞氣)여
맑대도 시답잖고 깨끗대도 모자라네
이리도 맑은 기운(氣運) 저리도 깨끗한 기운
이 정기(精氣) 흩어 모아서 인걸(人傑) 하나 만들고자
모습은 끝도 없고 형세(形勢)도 참 다양하다
천지(天地)가 생겨날 제 저절론 줄 알았더니
이 모습 이 형상(形象) 보니 조물주 뜻 깊구나
비로봉(毘盧峰) 상상봉을 올라본 이 누구신가
공자님은 동산(東山) 올라 노(魯)나라를 작다 하고
태산(泰山)을 오르신 후엔 천하(天下)마저 작다 했지
노나라 좁다 하니 그 말도 놀랍거늘
하물며 이 큰 천하(天下) 어찌하여 작다는가
공자님 호연(浩然)한 저 경지(境地) 어찌하면 알리오
원통골 골짜기 길 사자봉을 찾아가니
그 앞의 너럭바위 화룡소가 되었구나
한 마리 천 년 노룡(老龍)이 굽이굽이 서렸구나
밤낮으로 흘러 흘러 바다까지 이었으니
풍운(風雲)을 언제 얻어 흡족한 비 내리려나
저 용(龍)아, 시든 풀들을 하루 빨리 살려내라
마하연 묘길상에 안문재 넘고 넘어
외나무 썩은 다리 불정대에 올라보니
천만 길 절벽(絶壁)이 하나, 십이폭이 여길세
은하수 큰 굽이를 실[絲]로 풀어 베[布]로 거니
산수(山水) 도경(圖景) 열두 굽이 와서 보니 더 많구나
이태백 이 절경 보고도 여산(廬山) 폭포 뽐낼까
산중(山中)만 매양 보랴, 동해로 가자꾸나
가마를 느릿 타고 산영루(山映樓)에 올라보니
눈부신 푸른 시냇물 지저귀는 산새들
물소리 새소리는 나와 이별(離別) 원망(怨望)하고
깃발을 휘날리니 오색(五色) 기폭 넘노누나
북 나팔 풍악(風樂) 소리에 바다 구름 걷히는 듯
모랫길 익숙한 말 취(醉)한 신선(神仙) 빗기 싣고
바다를 곁에 두고 해당화 밭 들어가니
백구(白鷗)야 날지를 마라, 네 벗인 줄 모르는가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 찾아가니
옥황상제 거처하던 백옥루가 여기로다
현란한 궁궐 돌기둥 다만 넷이 남았구나
그 옛날 중국 명장(名匠) 공수의 작품인가
온갖 조화 다 부리는 귀부(鬼斧)로 다듬었나
구태여 여섯 모 기둥은 그 무엇을 본떴는가
고성을랑 저쯤 두고 삼일포(三日浦)를 찾아가니
벼랑에 붉게 쓴 글 지금도 뚜렷하다
'영랑도 남석행'이라, 사선(四仙) 소식 궁금타
여기서 사흘 묵고 또 어디로 갔었는가
선유담 영랑호 그 곳으로 갔었는가
청간정 만경대 들른 후 또 어디서 놀았는가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낙산(洛山)의 동쪽 언덕 의상대에 올라 앉아
일출(日出)을 보리라 하여 한밤중에 일어난다
뭉게구름 피어나니 여섯 용(龍)이 받드는 듯
물 위로 떠오를 젠 온 세상이 떨리더니
하늘로 치솟아 뜨니 터럭마저 세겠구나
‘혹시나 지나는 구름 밝은 해를 가릴세라’
시선(詩仙) 이백 어디 가고 남은 것은 우국(憂國) 싯구
천지 간 굉장한 내막, 그 표현(表現) 참 놀랍다
해질녘 현산 기슭 철쭉꽃을 밟고 밟아
우개지륜 높이 타고 신선(神仙) 되어 내려가니
십 리나 펼쳐 있는 물, 거울인가 호수(湖水)인가
얼음같이 흰 비단을 곱게 다려 깔았는가
울타리로 감싸 안은 잘 자란 소나무들
물결도 잔잔하여라, 모래알을 세겠구나
배 한 척 띄워내어 외로이 저어가니
바위 위에 얹은 정자(亭子) 월파정이 정겨워라
강문교 넘은 저 곳이 푸른 동해(東海) 아닌가
조용하다 이 호수(湖水)여, 광활하다 저 바다여
이보다 빼어난 곳 또 어디 있으리오
홍장의 사랑 이야기, 그 풍류(風流) 또 멋지네
강릉 땅 대도호부 좋은 풍속(風俗) 자랑홉다
충신 효자 열녀 정문(旌門) 고을마다 즐비하니
요순(堯舜) 적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바로 예서 누리네
삼척 땅 죽서루 옆 오십천(五十川) 흐르는 물
태백산(太白山) 그림자를 동해(東海)로 담아 가니
차라리 우리 임 계신 목멱(木覓)으로 돌렸으면
나랏일에 매인 몸을 풍광(風光)이 붙잡으니
나그네 큰 시름을 뗏목에다 가득 싣네
북두(北斗)로 견우(牽牛)로 갈까, 사선(四仙) 찾아 떠날까
세상 끝 보자 하고, 하늘 끝을 보자 하고
망양정(望洋亭) 올라보니 바다 하늘 맞닿았네
바다 밖 하늘이라면 하늘 밖은 무언가
가뜩이나 성난 파도(波濤) 그 누가 놀랬기에
불거니 내뿜거니 어지럽게 뒤척이나
은산(銀山)을 꺾어 뿌리니, 오월에도 백설(白雪)일세
잠깐 사이 밤이 드니 물결이 잔잔하다
해뜨는 곳 지척(咫尺)에서 명월(明月)을 기다리니
상서(祥瑞)론 빛줄기들이 보이는 듯 숨는다
구슬로 엮은 발을 다시금 올려 걷고
옥돌같이 고운 층계(層階) 정성 들여 다시 쓸고
샛별이 돋을 때까지 곧추 앉아 기다리네
흰 연꽃 달 한 덩이 뉘라서 보냈는가
이리도 좋은 세계 혼자 보기 아까워라
온 세상 온 누리 모두 이 정경(情景)을 누렸으면
신선주(神仙酒) 가득 부어 달에게 물어본다
옛 영웅 어디 갔나, 사선(四仙) 소식 알려 주오
선산(仙山)이 저 먼 바다이니 갈 길 너무 멀구나
소나무 성긴 뿌리 베개 삼아 잠이 드니
꿈속에 한 사람이 알은체 반갑다네
그대를 내가 모르랴, 하늘나라 진선(眞仙)이다
‘황정경(黃庭經)’ 한 글자를 어찌하여 잘못 읽어
인간(人間) 세상 내려와서 우리들을 따르는가
잠깐만 가지를 마오, 이 술 한 잔 먹어 보오
북두칠성 국자 삼고, 동해 물을 술로 삼아
그도 한 잔 나도 한 잔 서너 잔을 기울이니
온화한 봄빛이 가득, 이 곧 신선(神仙) 아닌가
겨드랑이 깃을 세워 슬그머니 추켜드니
멀고 먼 저 하늘도 웬만하면 날겠구나
온 백성(百姓) 다 취(醉)하게 한 후 또 한 잔을 하자네
신선이 말 마치고 학(鶴)을 타고 올라가니
하늘에서 들려오는 옥퉁소 여린 가락
어렴풋 들리는 소리, 어제인 듯 그제인 듯
잠깨어 달 가득한 바다를 굽어보니
깊이를 모름에야 끝인들 어이 알리
명월(明月)이, 임금님 사랑이 온 세상 다 비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