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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놀이로 시작된 전통, 인재로 자라나다... 조기교육 실천의 현장, 서울국악유치원이 만들어온 26년의 시간

‘유아기의 전통문화 교육’, 정체성을 키우는 첫걸음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람의 온기’
한복을 입은 아이들, 살아 있는 전통의 풍경
“유치원 3년은 놀이가 아니라, 가장 빠른 교육의 시간”
놀이로 스며든 전통, 삶으로 이어지다

 

놀이로 시작된 전통, 인재로 자라나다... 조기교육 실천의 현장, 서울국악유치원이 만들어온 26년의 시간

 

‘국악 유치원’이라는 이름은 종종 오해를 부른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서울국악유치원은 특정 기능을 조기 주입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이곳의 중심에는 국악이 있지만, 교육의 본질은 놀이 중심 유아교육과 존중의 태도에 있다. 아이들은 배우기 위해 앉아 있지 않는다. 뛰고, 노래하고, 두드리고, 몸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악과 만난다.

 

서울국악유치원은 1999년 3월, 국악에 대한 열정과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박범훈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전통문화는 과거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라, 오늘을 윤택하게 하고 미래를 확장하는 생명력이라는 인식 아래, 유아기부터 전통을 경험해야 한다는 신념이 설립의 배경이 됐다. 현재는 학교법인 국악학원이 운영을 맡고 있으며, 최종실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이 법인을 이끌고 있다.

 

‘유아기의 전통문화 교육’, 정체성을 키우는 첫걸음

 

서울국악유치원이 강조하는 교육방법은 ‘play thinking’이다. 이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주도적으로 펼치고, 또래와 관계 맺으며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고 방식이다.

 

마당놀이, 역사놀이, 장단놀이, 강강술래 놀이, 전통문화놀이 등 자체 개발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놀이의 형식을 빌려 창의성·사회성·언어 발달·자아존중감을 함께 키운다. 예컨대 마당놀이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노래·춤·장단·놀이를 통합한 종합예술 경험이며, 역사놀이는 역사 인물을 놀이로 재구성해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확장한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람의 온기’

 

이번 취재는 준비 과정부터 인상 깊었다. 배종근 행정관리국장은 추운 날씨에 기자가 길을 헤맬까 염려해 상세한 이동 경로를 안내했고, 유치원 운영과 교육과정을 정리한 자료를 사전에 전달하며 취재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그 세심함은 전통문화를 지켜간다는 자부심의 또 다른 표현처럼 느껴졌다.

 

현장을 안내한 김진희 원장은 유아교사로 출발해 제4대 원장을 맡고 있다. 수업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시간대별로 동선을 나누어 설명하는 모습에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육자의 태도가 드러났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며 소통하는 모습은 이곳 교육의 핵심이 ‘관계’임을 보여주었다.

 

김 원장은 서울국악유치원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으로 “결과가 아니라 아이의 변화”를 꼽았다. 그는 “어제는 신발을 혼자 신지 못하던 아이가 오늘은 한쪽이라도 신었다면, 어제는 친구를 때렸던 아이가 오늘은 손을 들다 말았다면 그 자체가 충분한 성취”라며,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존중하는 것이 이곳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태도가 국악 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아이들에게 국악은 ‘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지는 놀이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 살아 있는 전통의 풍경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원생들의 한복 원생복이었다. 과하지 않고 단정한 디자인의 원생복은 활동하기에도 편해 보였고, 아이들의 움직임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전국에서 이 유치원만 사용한다는 이 복장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전통의 풍경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야금을 타고, 북과 장구로 장단을 맞추며 사물놀이를 즐기는 모습, 부채춤으로 제법 공간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과 아이들 사이의 유대감이 깊었고,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든 수업을 즐기고 있었다.

 

“유치원 3년은 놀이가 아니라, 가장 빠른 교육의 시간”

 

서울국악유치원 이사장이자 사물놀이 창시자 중 한 명인 최종실은 “설립 목표 자체가 영재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 기관의 출발”이라며, 국악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야 전공자로 성장할 토대가 단단해진다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보통 국악을 초등학교나 중학교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치원에서 3년을 보내는 시간은 아이가 ‘그냥 노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전부 교육과 연결되어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몸으로 익히고 즐기면서 자라면, 전공자로 커갈수록 그 잠재력이 훨씬 크게 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법인 국악학원 최종실 이사장

 

또한 최 이사장은 서울국악유치원이 ‘유치원 단계’에 머물지 않고, 초등 과정의 중요성을 짚으며 장기적인 로드맵도 제시했다. 그는 “중·고등 과정은 이미 학교가 있지만, 사실 아이들이 가장 빠르게 배우고 자라는 시기는 초등 과정”이라며 “법인이 더 심혈을 기울여 국악 영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졸업생들이 6년 과정의 체계적 교육을 거쳐 예중·예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성장 경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흐름이 이어지면 대학 진학까지도 ‘걱정할 게 없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며, 유치원 교육을 국악 인재 양성의 출발점으로 확장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놀이로 스며든 전통, 삶으로 이어지다

 

서울국악유치원을 거쳐 간 아이들은 이후 초·중·고교에서도 사물놀이, 국악 동아리,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전통문화를 즐기는 청소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주입식 조기교육이 아닌, 놀이를 통한 자발적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다.

 

서울국악유치원의 조기교육은 국악 기술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전통을 놀이로 경험하게 하여, 아이 스스로 우리 음악과 문화를 사랑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유아기에 전통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난 아이들은, 역사 의식과 자아존중감, 그리고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성을 동시에 키워가고 있다.

 

 

서울국악유치원에 오는 부모 대부분은 ‘국악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존중하며 키우는 곳”이라는 신뢰 때문에 선택한다. 경쟁률은 방과후 과정 기준 7~8대 1에 이른다. 졸업생 중에는 다시 교사로 돌아온 이도 있고, 학부모가 되어 아이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국악은 그렇게 삶의 기억으로 남는다.

 

서울국악유치원은 국악을 가르치지만,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장단이나 기술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함께하는 기쁨, 존중받은 경험, 이곳에서 국악은 소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