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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의 문화예술교육 한마디] 그 많던 풍물동아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풍물동아리는 어디로 갔을까


2000년대에는 해마다 봄과 가을 서울랜드에서는 ‘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지역 교육청의 예선을 통과한 1,000여 개의 초·중·고교 동아리와 1만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실로 대규모의 축제였다. 공연, 마술, 놀이, 연극, 영상, 풍물 등 11개 분야에서 경연이 펼쳐졌으며, 행사를 찾은 학생들과 가족들을 위한 다채로운 체험 마당도 함께 열렸다.

 

이 행사는 한겨레신문사와 서울랜드의 후원 아래 운영되었고, 경쟁적 요소나 행사의 소모성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는 각 학교의 동아리 활동에 강한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봄꽃과 가을 단풍 속에서 펼쳐지는 예술 활동이 학교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곤 했다.

 

행사의 분야별 운영은 현장 교사들의 커뮤니티를 통한 자발적인 소통과 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열정적으로 학생을 지도한 교사들에게는 포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필자 또한 매년 지도하던 풍물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이 행사에 참여하였고, 점차 풍물 분야의 심사위원과 운영 요원으로까지 역할이 넓어지며 교사로서의 효능감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 전통예술 한마당에서 풍등을 날리는 청소년들

 

이외에도 서울시의 후원으로 매년 장소를 달리하며 진행된 ‘청소년 전통예술 한마당’이라는 행사도 있었다. 서울 시청앞 광장, 남산 한옥마을, 서울숲 등지에서 열린 이 행사는 경쟁의 요소를 배제하고, 참가하는 동아리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전통예술축제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행사에는 서울의 3~40여 개 풍물동아리, 6~700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마치 청소년 마을의 구성원처럼, 전통 마을굿을 재현하고 공동체 놀이를 펼쳐냈다. 준비 과정에서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이어졌다. 운영 단체인 ‘작은소리학교’와 각 동아리 대표 학생들, 지도 교사들이 함께 회의하고 소통하며, 진정한 의미의 ‘함께 만드는 축제’를 구현해 나갔다.

 

각 동아리가 자신들의 기량을 펼치는 마당도 물론 의미 있었지만, 더욱 뜻깊었던 순간은 모든 학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길놀이를 함께 즐기고, 풍등을 날리며 소원을 빌고, 소원지에 마음을 적고, 강강술래를 돌며 하나의 공동체로 어우러졌던 그 시간들이었다. 초·중·고 학생 6~700명이 전통예술 동아리라는 공통된 기반 아래 모여, 손에 손을 맞잡고 1시간 넘게 강강술래를 돌며, 땀을 훔치고 해맑게 웃던 그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찬란한 추억으로 살아 있다.

 

그 많던 풍물동아리는 어디로 갔을까?

 

풍물동아리로 들썩이던 학교가 변한 것은 순간이었다. 2004년 공정택 서울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학력 증진’을 내세워 2005년 ‘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 봄마당을 없앴다. 당시 교장선생님 증언에 따르면 가을마당을 없애기 위한 논의도 이때 시작되었다 한다.

 

게다가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 것이다. 이 일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그치지 않았다. 서울에서 ‘굿’이란 단어가 들어간 전통예술 행사는 속속 사라지게 되었다. 청소년 풍물굿 행사도 직격탄을 맞는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그 긴 터널 같은 시간 동안 학교에 풍물 동아리를 유지할 동력이 어디 남아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2010년에는 서울시 교육감으로 진보적인 곽노현 후보가 당선되어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전환이 시도되었다. 교육청은 문화예술교육에 실력을 쌓은 현장 교사들을 교육청으로 초빙하여, 각 학교에 컨설팅과 자문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학교 동아리 활동의 질적 도약을 꾀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또한 보수 교육감 체제에서 ‘대규모 동원형 행사’ 혹은 ‘경연대회 위주의 정책 과시’라는 교육청 내부의 비판 속에 있던 ‘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은 결국 폐지되고, 이를 대체할 지역 단위 청소년 축제를 도모하는 정책적 시도가 진행되었다. 필자 역시 이 시기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학교 동아리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워크숍에서 사회를 맡는 등 새로운 모색에 함께 하였다.

 

그러나 2011년, 곽노현 교육감이 ‘사후 매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죄명으로 구속되면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말았다. ‘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를 대체할 목적으로 준비되던 지역 단위 청소년 축제 역시 좌초되고 말았다. 결국 학교 동아리활동의 동력의 역할을 하던 교육청 단위의 축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아직도, 당선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후보 단일화 참여자를 도운 일이 어째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었는지 납득되지 않지만, 법원의 유죄 확정은 서울시 교육을 과거로 회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변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에 출범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아르떼)’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초기 아르떼는 교사들의 자율적인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자발적인 교사 네트워크를 후원함으로써,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자생적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필자가 소속된 ‘전국교사풍물모임’ 역시 이 연구활동에 참여하여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그 성과를 학교 현장으로 확산시킨 바 있다.

 

이외에도 아르떼는 문화예술 전문 강사를 학교로 파견하는 사업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예술 교육을 보다 용이하게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는 문화예술 전공자들에게 고용 기회를 창출하는 등의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강사 파견 제도는 새로운 고민도 남겼다. 아르떼 강사가 파견되기 이전, 교사들이 스스로 풍물이나 예술을 배우고 이를 학생들과 나누며 자연스럽게 학교 내 문화가 확산되던 시기와 비교할 때, 강사 중심 수업은 수업 시간에만 한정된 단발성 지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사가 주체가 되어 학교에 동아리를 만드는 등의 활동을 통해 배움을 실천하던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교사는 수업 관리자로 머무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학생들의 문화예술을 통한 생동감 역시 점차 희미해지고 말았다.

 

교사가 풍물을 배우면 학교에 풍물동아리가 생기지만, 학교로 풍물 강사가 파견되면 수업시간에만 도움을 받게 된다. 결국 학교 교육에서 교사들이 주체가 아닌 행정 관리자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게 되면서 학생과 교사들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학교 문화의 생동감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도 깊은 고민의 과제를 남긴다.

 

필자는 교사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개떡같이 배워서 찰떡같이 쓰는 존재’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교사는 자신이 습득한 기능을 개인의 취미에 머물지 않고 교육활동으로 아주 잘 써먹는다. 그런 활동에 아주 특화된 존재인 것이다. 결국 학교 문화예술 교육은 교사들의 자발적 배움이 학교 교육활동으로 확장되어 수업 공간과 그를 뛰어넘는 동아리 활동으로 확장되었을 때 꽃 피울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이 유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이 동기 부여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과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규모의 발표 자리가 될 수 있는 축제의 현장도 필요하다. 전문가의 도움이 학생의 동아리 활동으로 확장되어야 학교 문화가 더 살아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울학생 국악 한마당 한성여중 다물국악단 공연(https://www.youtube.com/watch?v=Qh4X5rH4AlI)

 

필자는 현재 중학교에서 3년째 국악관현악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중학교 가운데에는 지역 사업으로 운영되는 영림중학교가 있고 단일 학교 자체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학교로는 우리 학교가 유일하다. 중1 자유학기와 연계하고 토요일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여 학교 교육프로그램을 동아리 활동으로 확장하였다. 6명의 전문강사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교생의 20%가 넘는 8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만큼 인기가 있다. 토요일임에도 즐거운 모습으로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행복에 젖곤 한다. 하지만 모든 학교로 일반화하려면 교사와 강사가 토요일까지 출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토요일이 아니라 주중에 펼쳐지는 교육활동으로 충분히 흡수되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면, 보다 많은 선생님이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감을 함께 누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2025년 우리 사회는 또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것이다. 이 새로 열리는 공간에서 학교 문화예술교육도 질적인 전환이 일어나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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