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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쓴 <백두산 근참기(覲參記)> 백두(白頭)여, 하늘못이여

 

 

시조로 쓴  <백두산 근참기(覲參記)>

백두(白頭)여, 하늘못이여

 

 

천지(天池)를 알현(謁見)코자 오르는 천여 계단

가을 닮은 푸른 하늘, 내심으론 걱정이다

혹시나 우리 천지가 초라하진 않을지

 

천 계단 끝난 그 곳, 끝 아니라 시작이었다

눈앞 바로 펼쳐지는 저 위용 저 외연(巍然)함

너무도 쉽게 드러난 맨살, 내가 외려 죄송타

 

믿어지지 않는구나, 믿을 수가 있겠는가

꿈속에 그려보고 가슴 깊이 외쳐 보던

백두(白頭)가 여기란 말인가, 천지 과연 맞는가

 

감당하기 어려워라, 이 감격 이 놀라움

숨은 턱 막혀 오고 감탄사가 신음한다

너무도 믿기지 않은 현실, 전율이다 차라리

 

생각보다 너무 넓고 생각보다 너무 컸다

생각보다 수려하고 생각보다 장엄했다

말문은 사뭇 막힌다, 내 상상력 우습다

 

감격을 추스르려 안간힘을 써 보지만

내 짧은 언어들은 모두들 숨죽이고

크나큰 침묵 앞에서 통곡 같은 한숨뿐

 

이천칠백 꼭대기에 저 자태가 무엇인가

산꼭대기 저 푸른 물 그 역설은 무엇인가

하늘의 어떤 말씀을 담고 있단 말인가

 

백두는 하늘 품고 천지는 온누리 품어

모든 빛 모든 우레 모든 번개 거느리고

하늘의 첫 음성들을 가장 먼저 듣는구나

 

태초(太初)의 저 멀리서 태허(太虛)를 만들고서

태양(太陽)의 기운 모아 태음(太陰)의 정(精)을 담아

새로운 태극(太極)을 이루니 새 말씀이 되었어라

 

한 말씀 하오소서, 간절하게 빌어보나

크신 말씀 하신단들 들을 귀가 있으리까

못 보고 못 듣는 눈귀 맑히 씻어 주소서

 

당신의 고함 소리 단 한 마디 못 듣거늘

당신의 속삭임을 어찌 감히 들으리까

눈멀고 귀도 먹었다, 저려오는 온몸이여

 

오감을 잃었으니 믿는 것은 사진기뿐

입과 귀가 막혔으니 의지할 건 카메라뿐

백두산 바삐 담느라 백두산을 못 보네

 

저쪽은 북녘 땅은 사진에도 담지 말라

세상에 기막힌 일 백두(白頭)에도 있다 하니

이 참담 이 부끄러움 가늠하기 어려워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저절로 터지련만

입 안에 가둬두는 이 마음 또 아려온다

어쩌다 못난 국운은 이 굴욕을 주는가

 

숭엄(崇嚴)한 이 땅마저 국경이라 그어 놓고

‘국가’란 이름으로, ‘소유’라는 이름으로

정기를 욕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짓이다

 

압록(鴨綠) 두만(豆滿) 송화강이 여기서 발원하니

북방의 민족마다 제 뿌리라 주장하네

저 서기(瑞氣) 서로 탐(貪)을 하니 누구 탓을 하리오

 

내 것이란 무엇이고 네 것이란 무엇인가

나라란 게 무엇이고 민족이란 무엇인가

태초의 저 침묵 앞에 부질없다 우습다

 

백두산 크신 말씀 두만강 물길 따라

회령에서 머물다가 용정(龍井)으로 흘러흘러

해란강 물줄기 따라 말 달리게 하였으리

 

백두(白頭)의 그 뜨거움, 웅혼하고 당찬 기상

한겨레의 얼이 되고 통일의 열망되어

‘한빛’에 뿌리를 내렸구나, 자랑스럽지 않은가

 

2008. 08. 26

 

* ‘한빛’ : 한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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