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바꾸어 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여름 장은 재미없지, 애시당초 늘 글렀다
해는 아직 중천인데 장판은 벌써 쓸쓸
햇발이 전(廛)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볶는다
마을서 온 사람들은 거의 다 돌아가고
팔지 못한 나무꾼패 길거리에 궁깃궁깃
파장(罷場)에 언제까지든지 버틸 필요 있을까
날아드는 파리떼도 각다귀도 귀찮았다
얽음뱅이 왼손잡이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함께 동업하는 조선달을 나꾸었다
“이제 그만 거둬볼까” “자네 생각 잘하였네”
“봉평장서 한번이나 흐뭇한 일 있었을까
내일은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 보세나”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되겠는걸”
허생원 하늘을 본다, “그렇지, 달이 뜨렷다”
동전의 절렁절렁 소리 조선달이 돈을 센다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 걷어놓고
벌여놓은 물건들을 거두기 시작한다
무명필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 꼭 찼다
또다른 축들마저 전(廛)들을 걷고 있다
약바르게 떠나는 패 한둘이 아니었다
엿장수 어물장수도 그 꼴들이 이미 없다
내일은 진부에서 대화에서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디든 밤을 새며 걸으리라
밤길을 육칠십리쯤 타박타박 걸으리라
장판은 잔치 뒷마당, 어수선히 벌어지고
술집에선 쌈박질에 주정꾼들 욕지거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장날 저녁 알린다
“허생원이 시침 떼두 우리는 다 안다네”
계집의 목소리에 갑자기 생각난 듯
조선달 비죽이 웃으며 ‘충줏집’을 꺼낸다
“나에겐 화중지병, 젊은 패들 적수(敵手) 될까”
“사실은 사실이나, 그렇지두 않을걸세
젊은이 그 ‘동이’ 말일세, 충줏집을 후렸나벼”
“무어라 그 애숭이가? 물건 갖고 낚았겠지
난 정말 그 녀석이 착실한 줄 알았더니”
“그 길은 알 수가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아주 멀다
얽음뱅이 그 상판에 숫기마저 없었으니
계집이 정 보낸 적 있나, 뒤틀렸던 반평생
충줏집 생각만 해도 허생원은 철이 없다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마저 떨려대고
그 자리 소스라쳐 버린다, 갈피 없이 헤맨다
충줏집 문에 들어서 동이를 만났을 때
어찌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로 농탕치는 동이 저놈
그 모습 보자 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
녀석 제법 난질꾼인데, 정말이지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대낮부터 농탕이야
장돌뱅이 개망신만 다 시키고 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잔 셈이겠지
동이 앞 막아서면서부터 마구잡이 책망이다
걱정두 참 팔자요, 빤히 보는 눈망울에
얼결김에 따귀 한 대 갈겨 주고 말았것다
동이도 화를 팩 쓰고 일어서긴 하였다
하지만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 않고
마음에 먹은 대로 모두 다 지껄였다
어디서 주워먹은 놈이야, 선머슴아 이놈아!
네게도 아비 어미 어련히 있을 테지?
사나운 네 꼴 보면 그 맘이 참 좋겠다
장사란 탐탁히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그러나 한 마디도 대거리를 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 녀석 모습 보아 하니
도리어 측은하였다, 불쌍하게 보였다
아직두 그 사이가 서름서름하였는데
너무도 과했잖나 마음이 켕기었다
그렇지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 아닌가
아무리 젊다 해도 자식 낳게 된 나인데
붙들고 치고받고 닦아 세울 일이 있나
충줏집 입술을 쭝긋, 술 붓는 솜씨 거칠다
조선달이 민망한지 허생원을 두둔한다
나이 젊은 애들한텐 그게 외려 약이 된다
조선달 어색한 자리를 얼버무려 넘긴다
녀석한테 너 반했지, 애숭이 빨면 죄 된다며
한참을 법석 친 후 담도 웬만 생긴데다
오늘은 무슨 일에선지 취해 보고 싶었다
허생원은 주는 술잔 거의 다 들이켰다
마신 술로 거나하니 동이 뒷일 궁금했다
내 꼴에 계집 가로채서 대체 어떡 할 건가
어리석은 제 꼬라지 모질게 책망할 때
동이가 헐레벌떡 황급히 달려오자
마시던 잔을 던지고 충줏집을 나갔다
“생원님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그놈들이”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 마음 고마웠다
장판을 달려가는데 두 눈이 뜨거워진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 그냥 두지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낸 정이 든 짐승이다
같은 주막 잠을 자고 같은 달빛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걷던 이십년의 세월들
사람과 저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었다
까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 그것 똑 닮았고
똑같이 개진개진 젖은 눈 주인 눈과 같구나
몽당비를 닮았는가, 슬리운 저 꼬랑지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힘껏 저어 보나
여전히 다리까지는 전혀 닿지 않았다
닳아서 없어진 굽 몇 번이나 도려냈나
새 철을 신긴 것이 몇 차롄지 모르는데
말굽은 더 자라나기 틀렸고 피가 빼짓 흘렀다
냄새만 맡고서도 제 주인을 분간한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레 반기면은
주인은 어린애 달래듯 나귀 몸을 안았다
목덜미를 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
투르르 입을 터니 콧물이 마구 튄다
허생원 이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 썩였다
아이들 그 장난이 하도 심한 눈치여서
땀이 밴 몸뚱어리 부들부들 떨어대고
좀처럼 받은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아’, 허생원이 호령하니
패들은 벌써 줄행랑,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 아니우, 암놈 보고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쳤다
“고 녀석, 고 녀석 말투가”, 허생원이 망연하다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고 없어지자
온통 막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날뛰는 그 꼴이 우스워 우린 보기만 했다우”
“저 나귀 배를 좀 보지” 꼬마 녀석 손가락질
앙돌아진 말투에다 깔깔깔 웃어대니
허생원 모르는 결에 낯 스스로 뜨거웠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짐승 배를 가리웠다
“나이 늙은 주제인데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나귀 짐승 봐” 녀석 웃음 더 커진다
허생원은 주춤하며 기어이 견딜 수 없어
말 채찍을 쳐들더니 아이 녀석 쫓아간다
“쫓아와 쫓아와 보라구, 왼손잡이가 사람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들 못 당하니
왼손잡이 허생원은 아이 하나 못 후린다
술기도 온몸에 돌아 몸이 유난 화끈화끈
“이제 그만 떠나가세, 녀석들과 그만하고
녀석들과 어울리다간 한이 없어 한이 없지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 무서운 것”
동이와 조선달이 나귀 안장 각각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니 해는 벌써 뉘엿뉘엿
하루 해 저물어 가고 햇살마저 힘없다
드팀전 장돌이를 시작한 지 이십여 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이 드물었다
충주에 제천에도 가고 영남(嶺南)에도 헤맸다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갈 때를 제외하곤
처음부터 끝에까지 군(郡) 안을 돌았었다
닷새에 한번 장이 서는 면(面)을 따라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했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 있는 것도 같지 않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이 아름다운 내 고향
반날 동안 뚜벅뚜벅 걷고 또 걸어가서
장터가 있는 마을 가까워질 즈음이면
나귀도 한바탕 운다, 생원 가슴 뛰었다
젊은 시절 알뜰하게 돈푼깨나 모았지만
읍내 백중(伯仲) 열린 해에 호탕스레 놀아보며
투전을 하고 또 하여 사흘 만에 다 털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 이 악물고 단념했다
결국은 도로아미타불 장돌이를 다시 시작
이 짐승 한 마리 데리고 읍내 도망 나왔다
이 짐승 팔지 않기를 얼마나 다행인가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 어루만졌다
빚지기 시작을 하니 재산 생각 못했다
호탕스레 놀았어도 계집 하나 못 후리니
계집이란 쌀쌀하고 참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에 인연이 없는 것, 저 나귀만 늘 옆에
하지만 꼭 한번의 잊지 못할 괴이한 일
젊은 시절 봉평에서 시작했던 일이 있다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인데 어떻게 해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 다시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 없어”
생원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 시작이다
조선달은 친구 된 후 귀에 못이 박히었다
그렇다고 싫증인들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 시치미를 떼고 한 이야기 또 한다
“달밤에는 그런 얘기 아주 격에 어울리지”
조선달 있는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미안해 그런 게 아니라 달빛 감동 때문이다
이지러는 졌지마는 보름을 갓 지난 달
부드러운 흐리한 빛 흐뭇이 흘리고 있다
갈 길은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긴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
너른 벌판 굽은 산길 걸어야 되는 밤길
그 길은 긴 산허리에 아슴프레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 죽은 듯이 고요한 속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 잡힐 듯이 들려오며
콩포기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 소금을 뿌려댄 듯
흐뭇한 저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어진 메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다
나귀들의 걸음마저 가볍고 시원하다
어두운 산길에다 길이 아주 좁은 탓에
세 사람 나귀를 타고 외줄로 죽 늘어섰다
방울소리 시원스레 메밀밭게로 흘러간다
허생원의 이야기가 동이는 잘 안 들리나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진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 그 날도 이랬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 못 들지
그 날 밤 밤중은 돼서 혼자 개울로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
보이는 곳곳마다 메밀밭 메밀밭뿐
개울가 어디라 없이 하이얀 꽃 메밀꽃뿐
돌밭에 벗어도 될 걸 달이 너무 밝았었지
옷 벗으러 물방앗간 들어가지 않았겠나
그런데 이상한 일도 많지, 그 처녀와 마주쳤네
마주친 그 처녀는 성서방네 처녀였네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 아니었나
그러니 나의 팔자에 있었던 게 분명하네”
아무렴, 허생원은 말머리를 아끼는 듯
말없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녹았다
“나를 기다린 건 물론이지 아녔으나
기다리는 딴 놈팽이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내 짐작은 있었지
그 당시 성서방넨 한창이나 어려워서
들고날 판이었지, 딸인들 모르겠나
시집을 보내려 했지만 죽는대도 싫댔지
처녀란 울 때같이 정(情) 끄는 때 또 있을까
처음에는 놀란 눈치, 좀 그러다 눅어졌지
얼마간 이럭저럭하며 이야기가 되었네
지금도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
“제천인지 줄행랑친 건 바로 다음 날이었지”
“그 다음 장도막에는 온 집안이 사라졌고”
“장판은 소문으로 금새 발끈 뒤집혔네
오죽해야 술집에나 팔려가기 상수라며
처녀의 뒷공론들이 자자했단 말일세
제천장 설 때마다 장판 몇 번 뒤졌겠나
허지만 처녀 꼴은 꿩 궈먹은 자리였네
그 날 밤 그 첫날밤이 마지막 밤 되었지
그 때부터 봉평장이 마음에 들었던 게
지금까지 반평생을 이리 두고 다니었네
어떻게 반평생인들 잊을 수가 있겠나”
“생각하니 수 좋았지, 참 신통한 일이었지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지금 와 생각만 해두 진저리가 쳐지지
이 늙으막 장돌뱅이 지내기도 힘이 드네
가을까지 이 짓 하구 하직을 하려 하네
대화쯤 조그만 전방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 아냐
옛 처녀나 만난다면 같이나 살아볼까
이 몸이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 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마저 앞으로 나서 오니
이제는 나귀 세 마리 가로로 죽 늘어섰다
“총각두 젊었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
충줏집서 실수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뭐 그리 설게 생각 말게, 먹은 마음 거두게”
“처처... 천만에요, 되레 제가 부끄럽죠
계집이란 지금 제게 격에나 어울리나요
전 지금 자나 깨나 오직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했던 동이 마음
어조는 전에보다 한풀 더 수그러졌다
무언가 가슴 한 구석 훤해지고 있었다
“아비란 말 어미란 말 가슴이 터지지요
하지만 지금 제겐 아버지가 없습니다
오로지 피붙이라고는 어머니뿐 하나죠”
“돌아를 가셨는가?” “당초부터 없습니다”
생원과 조선달이 야단스레 껄껄 웃자
동이는 정색을 하고 우길밖에 없었다
“부끄러워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요
제천 촌서 달도 안 찬 아이를 낳아 놓곤
어머닌 집을 쫓겨났죠, 참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이죠, 여태껏 지금까지
아버지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 있는 고장도 모르고서 지내 와요”
큰 고개가 앞에 놓여 나귀에서 내려왔다
둔덕은 너무 험해 입 벌리기 대근하여
한동안 말이 끊겼다, 나귀들은 헛디뎠다
생원은 숨이 차서 몇 번이고 쉬며 갔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더 알렸다
갈수록 동이 같은 축이 끝이 없이 부러웠다
고개를 넘자마자 곧바로 개울이다
장마에 흘겨버린 널다리가 그냥 있어
생원은 잠뱅이를 걷고 건너야만 되었다
고의를 벗어서는 띠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 우스운 꼴로 물속에 뛰어드니
조금 전 땀을 흘렸는데 밤 찬물은 뼈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기는 누구가 길렀는가?”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사 시작을 했죠, 의부라곤 망나니고
제가 철이 들자마자 맞기부터 시작했죠
제 몸이 단 하룬들 편한 날이 있었을까?
어머닌 말리다 채이고 칼부림도 당했지요
이러자니 집안 꼴이 무어가 되었겠소
열여덟 살 어린 나이 그 집을 뛰쳐나와
그 후론 지금까지 줄곧 이 짓 하고 있지요”
“총각의 낫세로는 무던하다 여겼더니
이제야 듣고 보니 참도 딱한 신세로군”
허생원 혀를 끌끌 차며 동이 안색 살폈다
물은 깊어 허리까지, 속 물살도 센데다가
맨발에 채여대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몸 가누기 힘들었다
나귀들과 조선달은 재빨리 건넜으나
허생원을 붙드느라 동이가 애를 쓰니
두 사람 조선달과는 훨씬 많이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집은 원래부터 제천인가?”
“웬걸요, 시원스리 대답은 안 해 주나
어렴풋 봉평이라는 것 그 말만은 들었죠”
“봉평이라? 그렇다면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가 있겠나요, 듣지를 못했으니”
허생원 혼자 중얼중얼, “그렇겠지, 그렇지”
흐려지는 두 눈을 까물까물하다가는
허생원은 경망하게 두 발을 빗디뎠다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몸째 풍덩 빠졌다
허위적거릴수록 걷잡을 수 없어진 몸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는
퍽으나 많이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었다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속에서 해깝게 등에 업었다
물에 푹 젖었다 했지만 여윈 몸이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참으로 안 되었네
내 오늘은 정신줄이 빠졌던 모양이야”
“생원님 염려하실 것 조금나마 없어요”
“그래 참 모친께선 아비 찾는 눈치던가”
“늘 한 번 만나고 싶다 그런 말을 하는데요”
“지금은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졌죠”
“올 가을 제천에서 봉평으로 모실까 해요
이를 물고 돈을 벌면 이럭저럭 살 수 있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라 했것다?”
동이의 탐탁하고 따뜻했던 그 등어리
물을 다 건넜을 땐 도리어 서글펐다
조금 더 업혔더라면, 아쉬움이 더 컸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생원 오늘 웬일이요?”
조선달은 바라보며 참던 웃음 터뜨린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하고 말았어
내가 말을 안 했던가? 새끼를 얻었단 말
저 꼴에 읍내 강릉집 피마에서 얻었다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뛰는 새끼는 참 귀엽지”
“그것 보러 난 일부러 읍내를 돌 때도 있네”
“사람을 물에 빠치는 대단한 나귀새끼군!”
생원은 물에 젖은 옷을 웬만큼 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려대고 가슴이 떨리면서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만은 가벼웠다
까닭은 알 수 없는데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가보세나, 부지런히 가보세들
뜰에는 불 피우고 훗훗이 쉬어 보세
나귀엔 더운 물 끓여주고, 대화 담엔 제천이다”
조선달이 의아한 듯, “생원도 제천으로?”
생원이 기다린 듯 “오랜만에 가보고 싶어”
“동이도 동행하려나”, 생원 눈이 젖는다 -
나귀가 걸어갈 때 동이 채찍 왼손에 있다
마치 아둑신이같이 눈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번쩍 띄었다 -
허생원의 발걸음도 한층 더 해까웠고
나귀들 방울소리 밤 벌판에 한층 청청
고요히 이지러진 달이 어지간히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