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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바꾸어 쓴 알퐁스 도데의 별

시조로 바꾸어 쓴 알퐁스 도데의 별

 

시조로 바꾸어 쓴 알퐁스 도데의

 

뤼브롱산 기슭에서 양을 칠 때 얘깁니다

몇 주일씩 사람 구경 그림자도 못 하고요

양떼와 검은 사냥개들만 친구하며 지냈지요 

 

이따금 은자(隱者)들이 약초 찾아 지나가고

피에몽서 예까지 온 숯 굽는 몇몇 사람

언제나 거무데데한 얼굴, 눈에 띄곤 했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외롭게만 살아와서

좀처럼 입 열거나 말 거는 일 없었어요

산 아래 여러 마을 소식 통 모르고 있었지요 

 

그러기에 기뻤어요, 노새의 방울 소리

두 주(週)마다 먹을 양식 실어오는 농장 노새

꼬마나 아주머니를 보면 너무너무 기뻤어요 

 

그 때마다 물었지요, 궁금한 산 밑 소식

영세(領洗)는 누가 했고 결혼은 누가 했나

그동안 일어난 소식을 연이어서 캐물었죠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이 쏠리는 건

백 리 안팎 가장 예쁜 주인댁 따님 소식

어여쁜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소식이죠 

 

나는 과히 관심 가진 그런 기색 보이잖고

잔치 참석 자주 하나 넌지시 묻곤 했죠

새로운 멋쟁이들이 환심(歡心) 사러 오는지도 

 

산에 사는 목동 주제에 왜 알려고 하느냐고

보잘 것 없는 네가 그걸 알아 뭐 하냐고

이렇게 묻는다고 하면 대답할 말 있습니다 

 

그 당시 내 나이가 갓 스무 살이었다고

그리고 스테파네트 주인댁의 아가씨는

한평생 보아온 사람 중에 가장 곱고 예뻤다고 

 

그러던 그 어느 날, 일요일의 일이었죠

보름치 식량 싣고 나귀가 나타나길

몹시도 기다렸는데 아주 늦게 도착했죠 

 

아침나절 생각에는 ‘큰 미사를 보는구나’

그러자 점심때쯤 소나기가 퍼부었죠

오는 길 너무 나빠서 못 오는가 했어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마음을 달랬는데

드디어 세 시쯤엔 하늘 말끔 씻겼어요

온 산이 비에 흠씬 젖어 햇빛 속에 눈부셨죠 

 

나뭇잎 잎새마다 물방울 듣는 소리

개천엔 물이 불어 좔좔 넘쳐 흐르는데

갑자기 방울 소리가 새어 오지 않겠어요 

 

노새의 방울 소리 너무나도 반가웠죠

부활절날 울려오는 종악(鐘樂)과도 같았어요

온 동네 축제를 알리는 참 경쾌한 그 소리 

 

그러다가 놀랐어요, 너무나 뜻밖이라

노새 몰고 나타난 건 미아로가 아녔어요

노라드 아주머니도 정말 아니었어요 

 

천만 만만 뜻밖에도 주인댁 우리 아씨

바로 예쁜 아가씨가 노새 등에 올라타고

의젓이 몸소 나타나셨죠, 의심했죠 제 눈을 

 

소나기 뒤끝이라 싸늘한 공기 쐬어

얼굴은 온통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어요

도중에 길을 잃어서 늦어졌단 거였어요 

 

꼬마는 앓아 누워 올 수가 없었구요

아주머닌 휴가 얻어 아들 보러 갔답니다

어여쁜 우리 아가씨가 모든 소식 전했어요 

 

머리에 꽂은 리본, 눈부신 스커어트

곱고 빛난 레이스로 단장한 옷차림은

덤불 속 헤맸다느니보다 무도회에 온 듯했죠 

 

귀여운 저 모습이여, 아리따운 모습이여

아무리 바라봐도 지칠 줄을 모르는 눈

아가씰 그렇게 가까이서 바라본 적 없었지요 

 

겨울 되어 양떼 몰고 벌판으로 내려가서

저녁을 먹으려고 농장으로 돌아가면

가끔씩 아가씨가 휙 가로질러 지나갔죠 

 

하지만 하인들엔 말 거는 일 없었어요

언제나 아름답고 깔끔했던 우리 아씨

그런데 지금 아가씨가 내 눈 앞에 있어요 

 

그것도 말이예요, 나만을 위해서죠

오로지 나만 위해 내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넋을 잃습니다, 그럴 법도 하잖나요 

 

아가씨가 바구니서 식량들을 끌어내곤

낯설은 산 속 생활 모든 게 신기한 듯

주위를 휘휘 둘러봤죠, 호기심 찬 눈으로 

 

나들이옷 더럽힐까봐 치마 자락 살짝 걷고

양들을 몰아넣는 울 안으로 들어가선

내 자는 구석도 보고 짚자리도 보네요 

 

벽에다 걸어놓은 두건 달린 외투 하며

내 채찍 구식 엽총 보고 싶어 했습니다

모든 게 아가씨에겐 재미있나 봅니다 

 

“여기서 산단 말이지, 참으로 가엾구나

밤낮을 이런 데서 외로이 보내자니

얼마나 갑갑하겠니, 무슨 생각 하며 지내?” 

 

아가씨 묻는 말에 대답하고 싶었어요

“당신을 생각하며, 바로 아씨 당신 생각”

이렇게 말을 한다 해도 거짓말은 아니었죠 

 

하지만 난 그 순간에 어찌나 놀랐던지

대답이 한 마디도 나오질 않았어요

그 낌새 눈치를 채고도 일부러 더 묻는 거죠 

 

깜찍스런 아가씨가 번연히 알면서도

일부러 얄궂은 질문 나에게 던지고는

당황해 쩔쩔매는 꼴을 기뻐하고 있었지요 

 

“예쁜 여자 동무라도 가끔씩 올라오니?

여자 동무 찾아올 땐 선녀(仙女) 본 듯하겠구나

산봉(山峰)을 날아다니는 에스테렐 선녀 말야!”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어대는 귀여운 몸짓

요정이 나타나듯 얼른 왔다 가는 뒷맛

내게는 아가씨야말로 영락없는 선녀였죠 

 

“목동아, 잘 있거라” “조심해서 잘 가셔요”

마침내 아가씨는 나귀 타고 떠납니다

비탈진 산길 속으로 아가씨가 사라져요 

 

아가씨가 가뭇없이 사라진 뒤였지만

그 노새의 발굽에 채어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

그 소리 하나하나가 심장에서 덜컥였죠 

 

오래오래 그 소리에 두 귀를 기울였죠

해가 질 무렵까지 애틋한 꿈 달아날까

손 하나 까딱 못하고 우두커니 섰습니다 

 

저녁때가 다 돼가니 산골짝이 푸르르고

양들도 ‘매매’ 울며 울 안으로 들려고들

서로들 몸을 비비며 멈칫대고 있었어요 

 

바로 그때 들렸어요, 날 부르는 목소리가

그러자 나타난 건 뜻밖에도 우리 아씨

조금 전 생글생글 웃던 그 모습은 없었어요 

 

온몸 흠뻑 물에 젖어 오르르 떠는 모습

추위와 두려움에 가련한 그 모습 보니

아마도 언덕 밑에서 불은 강물 만난는가 

 

더더욱 난처한 건 날이 이리 저물어서

이제는 농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죠

지름길 있기는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나도 역시 양떼 두고 갈 수 없어

산 위에서 지내자니 가족들이 걱정할까

아가씬 안절부절입니다, 내 마음도 안쓰럽죠 

 

나로선 아가씨를 위로해 주는 것뿐

“칠월이라 밤도 아주 전보다 짧습니다

잠깐만 꾹 참으시면 날이 금방 밝습니다” 

 

이렇게 달래놓곤 황급히 불을 피워

젖은 발과 젖은 옷을 말리게 했습니다

우유와 치이즈도 함께 가져다가 주었어요 

 

그러나 아가씨는, 가엾은 우리 아씬

불도 쬐려 하지 않고 무엇 하나 먹지 않고

두 눈엔 눈물이 글썽, 나도 울고 싶어졌죠 

 

기어이 어둔 밤이 오고야 말았어요

아득한 산꼭대기 쌀알만큼 남은 햇빛

서쪽엔 수증기처럼 한 줄기 빛 비꼈어요 

 

내 생각은 울 안에서 쉬기를 바랐지요

새 짚 위에 처음 쓰는 새 모피 깔아놓고

안녕히 주무시라 하고 문 밖으로 나왔어요 

 

누추하기 짝이 없는 양떼들의 울 안에서

잠든 얼굴 신기한 듯 바라보는 양떼 틈에

주인 댁 따님 아가씨가 고이 쉬고 있어요 

 

다른 어느 양들보다 더 귀하고 더 순결한

한 마리의 양이 되어 내 보호를 받는다니

한없이 자랑스런 마음 벅차오를 뿐이었죠 

 

이때까지 밤하늘이 그렇게도 깊었던 적

별들이 그렇게도 찬란하게 보인 적도

단 한번 없었답니다, 없었어요 한번도 

 

갑자기 사립문이 삐꺼덕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나타났죠

아가씬 잠을 도저히 이룰 수가 없었지요 

 

양들이 뒤척이니 볏짚이 버스럭이고

잠결에 ‘매매’ 하고 울음소리 내는 녀석

그래서 아가씬 차라리 모닥불을 찾은 거죠 

 

아가씨 어깨 위에 염소 모피 걸쳐주고

모닥불을 이글이글 다시 피워 놓았어요

그리고 우리 둘이는 말이 없이 앉았지요 

 

만일에 단 한번만 한데서 밤 샜다면

그 사람은 알 거예요, 신비로운 밤 세계를

고독과 깊은 적막 속에 눈을 뜨는 새 세계를 

 

그 때는 샘물들도 훨씬 맑게 노래하고

못에는 작은 불꽃 더욱 밝게 빛납니다

그 모든 산신령들도 거침없이 노닐지요 

 

대기(大氣) 속엔 풀잎들과 크고 작은 나뭇가지

부쩍부쩍 자라나는 소리라도 들리는 듯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깊은 산 속 대낮에는 생물들의 세상이죠

그러나 밤이 오면 물건들의 세상 돼요

이런 밤 익숙치 않으면 무서워질 것이지만 

 

그래서 아가씨도 문득 문득 놀랍니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소스라쳐 놀랍니다

그럴 땐 내게로 바싹 다가드는 것이었죠 

 

한번은 저 아래쪽 못[沼]에서 나는 소리

처량하고 긴 소리가 은은하게 굽이치며

우리가 앉은 등성이로 솟아올라 왔습니다 

 

그 찰나에 아름다운 유성(流星)의 한 줄기가

우리들 머리 위를 스쳐가고 있었어요

조금 전 정체 모를 소리가 빛을 끌고 가듯이 

 

아가씨가 “저게 뭘까” 나지막이 물었지요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이랍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고 성호(聖號) 한번 그었어요 

 

아가씨도 나를 따라 성호를 긋더니만

고개 들어 하늘 보며 깊은 명상 잠겼어요

이윽고 생각을 끊고 불쑥 내게 물었지요 

 

“그것이 정말이니, 목동들은 점쟁인 거”

“아가씨, 천만에요, 그렇지 않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는 더 별님들과 가깝지요 

 

그러니 우리들은 평지 사는 사람보다

별나라서 일어나는 이 일 저 일 여러 가지

더 많이 알고 있지요, 더 잘 알 수 있답니다” 

 

아가씨는 여전하게 먼 공중을 쳐다봤죠

손으로 턱을 괸 채 염소 모피 두른 모습

그대로 아주 귀여운 천국 목자(牧者) 같았어요 

 

“어머나, 저리 많아! 기막히게 아름답다!

저렇게 많은 별은 생전에 처음이야

저 별들 하나하나 이름 너는 알고 있겠지?” 

 

“아가씨, 아무렴요! 머리 위를 봐주세요

저것이 은하수지요, ‘성(聖) 자크의 길’입니다

저 별은 프랑스에서 에스파냐로 통하지요 

 

샤를마뉴 대왕께서 전쟁을 하실 적에

갈리스의 ‘성 자크’가 용감하신 대왕에게

가는 길 알려 주려고 그어놓은 거랍니다 

 

조금 더 저 쪽으로 ‘영혼들의 수레’지요

그 옆에 번쩍이는 굴대 네 개 보이지요?

그 앞에 있는 별 셋이 ‘세 마리의 짐승’이죠 

 

셋째 번 별 다가붙은 꼬마별은 ‘마차부’고

그 언저리 빗발처럼 떨어지는 저 별 봐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들이잖는 영혼이죠 

 

저편 좀 낮은 쪽에, 저것 좀 보십시오

저게 바로 ‘갈퀴’지요 ‘오리온’이 저 별이죠

우리들 목동들에게는 시계 구실 해주지요 

 

그 별을 쳐다만 봐도 지금 시각 안답니다

그래서 지금 때가 자정(子正)이 지났음을

우리는 쉽게 알지요, 참 고마운 별입니다 

 

남쪽으로 내려가서 반짝이는 저 별 봐요

별들의 횃불 되어 반짝이는 ‘쟝 드 밀랑’

저 별엔 목동들이 아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날 ‘쟝 드 밀랑’이 잔치 초대 받았는데

‘오리온’과 ‘병아리장’ 함께 초대 받았대요

그런데 ‘병아리장’은 일찍 서둘러서 떠났다죠 

 

그래서 ‘오리온’은 더 아래로 가로질러

마침내 ‘병아리장’ 바짝 따라 붙었어요

늦잠 잔 ‘쟝 드 밀랑’은 맨 꼬리가 됐대요 

 

그러자 ‘쟝 드 밀랑’ 화가 불끈 나가지고

그들을 멈추게 하려 지팡이를 던졌어요

그래서 ‘오리온’ 별을 ‘지팡이’라 부른대요 

 

그렇지만 별들 중에 으뜸으로 고운 별은

그것은 뭐라 해도 우리들의 별이지요

보이는 저 ‘목동의 별’, 역시 우리 별입니다 

 

새벽에 양떼 몰고 우리가 나갈 때나

저녁에 다시 몰고 우리들이 돌아올 때

저 별은 항상 한결같이 우릴 비춰 주지요 

 

그 별을 우리들은 ‘마글론’이라 부릅니다

‘프로방스 피에르’의 그 뒤를 쫓아가서

칠년에 한 번씩 결혼하는 ‘마글론’ 별 말입니다 

 

“어머나 놀라워라, 별들도 결혼하니?”

“그럼요 아가씨!” 대답을 금새 하고

그 결혼 어떤 것인지를 얘기하려 했지요 

 

바로 그 때 무엇인가 싸늘하고 연한 것이

내 어깨를 눌러오는 감촉을 느꼈어요

주인댁 우리 아가씨가 졸음겨워 기대왔죠 

 

졸음을 못 이기어 무거워진 그 머리를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 머리카락

내 어깨 앙증스럽게 비비대고 기댔지요 

 

먼동이 터올라서 별이 빛을 잃을 때도

주인댁 아가씨는 꼼짝 않고 기댔어요

그 잠든 얼굴을 지켜보며 밤을 꼬박 샜습니다 

 

내 가슴이 설레임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순결함을 지켰어요

오로지 아름다움만 생각나는 밤이기에 

 

그 맑고 성스러운 밤하늘의 비호(庇護)를 받아

총총한 많은 별들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요히 고분고분하게 운행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따금씩 이런 생각 스쳤어요

‘저 숱한 별들 중에 빛나는 별님 하나

길 잃고 내 어깨에 내려 고이 자고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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