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바꾸어 쓴 김유정의
봄봄
‘장인님 이제는 저’, 뒤통수 긁으면서
성례를 시켜 달라 조심조심 말을 하면
장인은 “성례구 뭐구, 자라야지” 하고 만다
자라야 한다는 건 내 아니라 점순이다
삼년 하고 일곱 달을 돈 안 받고 일했는데
아직도 미처 못 자랐다니 그 영문을 모르겠다
일을 좀 더 잘하라면 할 말이 나도 있고
밥을 좀 덜 먹으라면 나도 할 말 많지마는
점순이 더 자라야 한다니 그만 벙벙하고 만다
계약이 잘못된 걸 이래서 알게 됐다
이태면 단 이태요, 삼 년이면 삼 년이라고
기한을 딱히 작정하고 일 했어야 했던 거다
덮어놓고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킨댔으니
그 누가 늘 점순이를 지키고 섰을 건가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대체 알 수 있는가
사람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 알았었지
붙박이 키에다가 모로만 벌어질 줄
세상에 그런 몸 있는 것을 어느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었기에
군소리 하나 없이 꾸벅꾸벅 일만 했다
그러면 장인님이 다 알아차려 주겠지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이제 고만 장가들어”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지 않을 거냐
장인님 시치미 딱 떼고 되레 펄펄 야단이다
명색 좋아 데릴사위 일하기에 참 싱겁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키 크기만 기다린다
언젠가는 갑갑해서 자 가지고 덤벼들어
점순이의 키를 한번 재볼까 했다마는
장인이 내외해야 한대서 이야기도 못한다
우물길 물 길을 때 언제나 마주치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건데
언제나 그럴 적마다 “제-미 키두” 하였다
아무리 잘 보아야 내 겨드랑 밑이었다
요만큼 넘을락말락 요 모양 요 꼴이다
개돼진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안 크는지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물동이를 자꾸 여서 뼈다귀가 움츠렀나
하기에 내가 넌짓넌짓 그 물 대신 길었다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 올리고
“우리집 점순이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까지 드립지요"
치성을 드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거늘
어떻게 돼먹은 킨지 이래저래 막무가내
어저께 그래 싸운 게지 장인님이 밉겄는가
모를 붓다 생각해 보니 또다시 참 싱겁다
이 벼가 자라나서 점순이가 큰다면야
그렇지 못한 걸 알면서 내 심어서 뭘 할까
해마다 앞으로만 점점 더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는 많이 먹어 탈이신데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는 심고 싶지 않았다
논물을 붓다 말고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아이구 어구 배야!" 논둑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벼 담긴 키를 땅바닥에 떨어쳤다
일이 암만 바쁘대도 배 아프면 고만이지
배 아픈 사람이니 누가 일을 하겠는가
거머리 쓱쓱 문대며 장인 얼굴 쳐다본다
논 가운데 장인님이 이상한 눈 해 가지고
한참을 노려보더니, "너 이 자식, 왜 또 이래?"
"배가 좀 아파서유!" 하고 풀 위 슬몃 쓰러졌다
장인님은 약이 올라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 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친다
“자식아, 일허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셈이냐”
장인님 약 오르면 손버릇이 참 못됐다
또 말이지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 같은 게 또 어디에 있는가
오죽해야 우리 동네 누구를 물론하고
그에게 욕 안 먹으면 명 짜르다 한다 했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욕필이’라 불렀다
본 이름이 봉필이니 욕필이라 욕을 먹고
손가락질 받을 만치 두루 인심 다 잃었다
하지만 진짜 잃었다면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연히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생김새 생기기를 호박개 같아야지만
장인은 외양에 똑 됐다, 호박개가 딱이다
장인한테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조금 안 준다 하게 되면
가을엔 누구도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 재신으로 돌아치던 그 놈에게
그 땅을 슬쩍 돌아앉는다, 동네 사람 다 안다
해마다 이 바람에 장인님 집 외양간엔
눈깔 큰 황소 한 놈 저절로 엉금엉금
온 동리 사람들 모두 굽신굽신 아닌가
그러나 내겐 아냐, 큰소리할 계제인가
뒷생각은 못 하고서 뺨 한 개를 때려 놓곤
장인은 무색해서인지 덤덤하게 침 삼킨다
난 그 속을 퍽 잘 안다, 그 속사정 훤히 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갈도 꺾고 모도 내고
한창을 바쁜 때인데 그냥 가면 고만이니
작년에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자니까
돌멩이를 집어던져 발목을 삐게 했다
사날씩 건숭 끙끙 앓았더니 거반 울상 됐었다
"얘, 그만 일어나서 일을 좀 해야 않니
그래야 올 가을에 너 장가 들지 않니"
두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 바로 일어났지
남이 하면 이틀 품인데 혼자서 삶아 놓자
장인님도 그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었다
가을에 혼인시켜 줘야 원, 그 경우가 옳지 않나
볏섬을 척척 쌓아도 다른 소리 하나 없고
물동이를 이고 오는 점순이를 가리키며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이냐”
남 낯짝만 붉게 해주고 그러고는 고만이다
골김에 이놈 장인님 댓돌에다 메다꽂고
집으로 내뺄까 하다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 난 이 꼴 하곤 집으로는 차마 못 가
장가를 들러 갔다 오죽이나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왔느냐고 손가락질 받을 테니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장인님 앞 다가서며
"나는 갈 테야유, 그 동안 사경 쳐내슈"
"니 임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 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 해줘야 안 하지유
밤낮으로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하니"
"글쎄라 내가 안 하는 거냐? 아 그년이 안 크지"
어름어름 담배 담으며 늘 하는 또 그 소리
이렇게 따져 나가면 언제든지 나만 밑져
이번엔 안 된다 하고 구장님한테 가자 했다
"아 이놈 이 자식아, 왜 이래 이 어른을"
안 간다고 뻗디디고 호령은 맘대로지만
장인은 내 기운 못 당하지, 딸 안 주고 다 뭐냐
내 사실 우리 장인 미워서가 참 아니다
그 전날 왜 이 내가 화전밭을 혼자 갈 때
가생이 쟁기가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 코 찔렀다
벌들은 머리 위서 붕,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서 흘러나오는 졸졸졸 샘물 소리뿐
해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했다
꿈꾸는 것 같았는데 나는 몸이 나른했다
몸살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서늘하니 이랬다
"이러이! 말이! 맘 마" 노래하며 소 부리면
여느 때 같았으면 어깨가 으쓱으쓱
그런데 밭 반도 갈지 않아 온몸 맥이 풀린다
공연히 짜증나서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망할 자식, 소 대리를 꺾어 줄라"
내 속은 ‘안야’ 때문 아니라 점순이의 키였다
점순이는 뭐 그렇게 예쁜 계집애 못 되지만
그렇다구 개떡이냐 그런 것도 참 아니다
내 아내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한 얼굴이다
나보다 십 년 아래, 올해 들어 열여섯 살
몸만은 남보다도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들은 훤칠히들 크건만 위아래가 몽툭하다
내 눈에는 점순이가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엔 감참외가 맛 젤 좋고 예쁘니까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 좋았다
좀 지쳐 찢어졌지만 밥술이나 먹음직한 입
아따 밥만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한 가지 파가 있다면 몸이 빨리 노는 거다
밥 나르다 깻박 쳐서 흙투성이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 이걸 씹고 앉았노라면
으저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나 밥을 먹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을 내려놓았다
또 내외를 해야니까 저만큼쯤 떨어져서
이쪽에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았다
그릇 나기 기다리다 다 먹고 물러설 때
와서 그릇 챙기는데 나는 깜짝 놀랐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혼자 쫑알거린다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그냥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까!” 혼자서 볼먹었다
그렇게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난 정신이 얼떨떨떨 또 한편은 궁금했다
그 무슨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서다
나 역시 공중을 대고 "그럼 어떡해?" 하였다
하니까 점순이가 "성례시켜 달라지 뭘!"
되알지게 쏴붙이고 얼굴이 발개지더니
산으로 그저 도망질 친다, 나는 맥을 몰랐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 물 오르고 싹이 튼다
사람도 그런가 하고 반갑고 반가웠다
부쩍도 자란 점순이를 어리다니 말이 되나
구장님 찾아갔을 때 돼지우리 죽 퍼준다
서울엘 갔다오더니 점잖아야 한다면서
웃쇰이 뾰족이 뻗치고 ‘에헴’ 쓰다듬는다
우리를 쳐다보고 미리 알아채었는지
"일들 허다 말구 그래?" 그 ‘에헴’을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냅다 떠다밀고
허둥지둥 달려들다 가만히 생각하고
“사실은 ‘빙장님’과 츰에” 다시 말을 고쳤다
이 우리 장인님은 ‘빙장님’을 좋아해서
밖에 나와 ‘장인님’ 하면 괜스레 골을 낸다
배암도 뱀이래야 좋으냐 남 듣는 데 잘 하란다
‘빙장님’ ‘빙모님’ 하라 당조짐을 받았지만
나는 자꾸 잊어먹고 ‘장인님’을 연발한다
당장도 ‘장인님’ 하자 내 발등을 밟는다
구장님도 내 이야기 자세히 듣더니만
퍽 딱한 모양이다, 누구든 다 그럴 게다
길러 둔 새끼손톱으로 코 후벼서 탁 튀긴다
"그러면 저 봉필 씨! 얼른 성례시키구려
애타게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 걸"
구장님 내 짐작대로 솔직허니 말했다
이 말에 장인님은 삿대질로 부라리고
"아 참,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 자라야지?"
구장님 고만 멀쑤룩해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
"그래 거진 사년 동안 안 자랐단 말씀이니
그 키는 은제 자라유?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라, 이놈 자식아! 내가 크질 말랬냐?”
"빙모님은 참새만한데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장인님은 이 말 듣고 껄껄껄 웃더니만
제 코를 푸는 척하고 내 갈비께 퍽 친다
나 역시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 콱 떼밀었다
장인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쓰러질 듯하였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쏜다
‘이런 놈 상년의 자식!’ 하고는 싶었으나
남의 앞 차마 못하는 그 꼴이 퍽 쟁그랍다
이 밖에는 별반으로 신통 귀정 못 얻었고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다시 부었었다
왜냐면 장인님이 뭐라고 귓속말하고 간 뒤였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려와서
아래 같이 내게 슬쩍 일러줬기 때문이다
뭉태는 꾀었다고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자네 말두 옳긴 하지 아무렴 나이찼으니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 전혀 아냐
허지만 농사 바쁜 때 일 안 하면 징역 가네
징역을 간다는 말에 난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 좀 놓았다구
징역을 간 거 못 봤나? 제 산인데 징역 갔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넨 정장 간대지만
괜시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게 되는 걸세
결혼두 스물하나는 돼야 그때서야 할 수 있네
아들이 늦을 것을 자넨 물론 염려하나
점순이루 말을 하면 이제 겨우 열여섯 살
올 갈엔 빙장님 말씀이 성례시켜 주겠다지
하니 좀 고마운가, 빨리 가서 모를 붓게
군소리 조금도 말구 어서 가서 모를 붓게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하나 없었다
장인님과 싸운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장인으로 말을 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하고 싶다 해서 배 내미는 사람이다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게 뭐가 또 있느냐!'
일부러 아랫배를 툭하니 내밀고서
걸음도 뒤가 틀리게 걷고 하는 이 판이다
이깟 나쯤 두들기다 모처럼 닦아 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지 할 어른이 영 아니다
나 역시 모쪼록 잘 봬서 장가가야 않는가
이렇게 말하자면 어젯밤이 잘못이다
뭉태네 집 마슬간 게 썩 나쁜 일이었다
장인과 싸운 걸 알았는지 대고 빈정거린다
"그래 맞구 그걸 가만둬?" "그러면 어떡하니?"
"야 임마, 봉필이를 모판에다 박아 놓지?"
공연히 내 대신 화내며 등잔까지 쳤었다
뭉태놈이 애초부터 괄괄은 하였지만
석윳값을 물어내라 지다위를 붙는 거다
나는 참 어안이벙벙해서 잠자코만 앉았었다
뭉태놈이 저만 연방 내뱉고 지껄인다
“밤낮으로 일만 해주구 가만히 있을 테냐?”
“영득인 일 년을 살구도 장갈 들지 않았느냐”
“넌 대체 사 년이나 살구두 더 살아야 해
지금 넌 세 번째야, 그것을 알기나 하니
나까지 분하다 이 자식아, 우물에 가 죽어라"
나중에는 손톱으로 목을 따란 말도 하고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 다 하였다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린 이렇다
이 우리 장인님이 딸만 셋이 있었는데
맏딸은 재작년에 가을에 시집갔다
정말은 시집간 게 아니라 데릴사위 붙였다
그런데 딸 나이가 열 살부터 열아홉까지
즉 십년 되는 동안 데릴사위 갈아들이길
열 놈을 갈아들였다, ‘사위 부자’란 이름났다
아들은 하나 없고 딸만이 있는 고로
그 담 딸 데릴사위 해올 때 그 때까진
또다시 부려먹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었다
물론이야 머슴 두면 좋기는야 하겠지만
그것은 돈이 드니까 장인님이 안 바란다
일을 더 잘하는 놈 고르며 연방 바꿔 들였다
또 한편 그 놈들도 욕만 줄창 퍼부어대고
심히도 부려먹으니 달아난 놈 있었겠다
점순인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세 번째다
내 담으로 네 번째 놈 들어올 차례인데
내가 일도 참 잘하고 어수룩해보이니까
장인이 잔뜩 붙들고 자꾸 놓질 않는 거다
셋째딸이 인제 여섯, 열 살은 돼야는데
그 동안 너 죽도록 부려먹고 말 것이야
인제는 속 좀 차리고 떼를 쓰고 자빠져라
나는 건성으로 엉, 엉, 하며 들었는데
뭉태는 장인한테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그 뒤부터는 못 먹어서 으릉이다
뭉태도 장인님한테 감투를 달랄 적에
선뜻이나 주었다면 그럴 리도 없었는데
예전에 원님이 쓰던 걸 이내 주지 않은 거다
그러나 뭉태 놈 말 곧이듣지 않았었다
곧이를 들었다면 장인님과 싸웠겠지
그러면 딸에게까지 장인님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점순이가 아침상 내올 때까진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많이 담았는가
이것만 생각을 했다, 다른 생각 없었다
상에는 된장찌개 간장에다 조밥 한 그릇
밥보다 수부룩하게 산나물이 또 한 대접
나물은 두 대접이고 네 대접도 좋았다
나물은 내 멋대로 먹어도 좋았으나
밥만은 장인님이 한 사발만 주라 했다
점순이 그 상 내놓으며 혼자말로 지껄였다
"구장님한테 갔다가는 어찌 그냥 온담 그래!"
엊그제 산에서같이 되우도 쫑알거린다
제딴은 덤비지 않고 만 게 어리석게 보인 거다
나도 역시 벽을 향해 저쪽으로 외면하듯
"안 된단 걸 어떡 헌담!" 들으라고 말을 하니
점순인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두니 이 바보야!"
또 얼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샐죽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내 얼굴 어미 잃은 황새처럼 가엾다고 했을 거다
사실이지 이때만큼 슬펐던 일 또 있을까
사람들이 못 생겼다 욕을 해도 괜찮지만
아내 될 점순이마저 병신으로 본다는 게
밥 먹은 뒤 지게 지고 일터로 가려 하다
다시 도로 벗어던지고 바깥 마당 드러누워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자꾸자꾸 생각했다
내가 만일 일 안 하면 결국 농사 못 짓는다
장인 저는 나이 먹어 일을 할 수 없지 않나
장인님 트림을 꿀꺽하고 나오다가 나를 봤다
“이 자식아! 왜 또 이래?” “관격이 났나봐유”
"기껀에 밥 처먹고 관격은 무슨 관격
남 농사 버려주면 자식아, 징역 간다 보아라"
"징역 가두 난 좋아유, 아이구 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 해서 징역 가도 좋다 했다
일후에 아들을 낳아도 ‘바보’ 별명 들을 테니
오늘은 열 쪽 난대도 결정내고 싶었었다
일어나라 자꾸 해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장인님 눈에 독이 올라 지게막대기 들고 왔다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들떠 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겨대고 넘기고 또 넘겼다
밥 잔뜩 금방 먹은 배 여간 켕기지 않았다
딱딱한 배 퉁겨지며 밸창이 꼿꼿해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막대기로 찔러댄다
위에서 쿡쿡 찌르더니 옆구리엔 발길질
장인님은 그 심청이 궂어서 그렇지만
나도 저만 못지 않게 내 배를 채었었다
아픈 걸 눈을 꽉 감고 넌 해봐라 하였다
그런데 장인님이 볼기짝을 후려칠 때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
하지만 내가 골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은 아까부터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 꼴을 몰래 보고 있어서다
가지나 한 마디 못한다고 바보라지 않는가
매 맞는 꼴을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것이다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장인님을
나하곤 아무것도 안 되니 막 때려도 좋았었다
하지만 사정 보아 수염만 낚아챘다
제 원대로 했으니까 점순이는 기쁘리라
점순이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러!" 소리쳤다
장인은 더 약이 올라 잡은 참 막대기로
내 어깨를 사정없이 그냥 내리갈기었다
정신이 다 아찔하였다, 나도 잔뜩 약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나도 눈에 불이 나서
밭 있는 넝 아래로 그대로 굴려댔다
씩, 씩, 씩 기어오르는 걸 얼른 다시 떠밀었다
씩씩대고 기어오르면 굴리고 또 굴렸다
이러길 한 너덧 번 굴리고 그럴 적마다
"성례를 왜 안 시켜줘유!" 난 이렇게 호령했다
이 때에 장인님이 선뜻 대답하였거나
“오냐, 낼이라두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고 말았었다
이러면 장인님을 때린 것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듣지 않고
온 동네 소문도 안 나 괜찮았을 것이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올라오더니
내 바짓 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에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칠밖에
나는 그만 이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아 빙장님, 빙장님! 아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이 자식아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 줍쇼, 할아버지!"
두 팔을 허둥지둥 허공에다 저을 적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죽나 보다 하였다
그래도 장인님은 놓칠 기색 하나 없다
땅바닥에 쓰러져서 까무러치자 놓는 거다
더럽다 참으로 더럽다. 이게 우리 장인인가
나는 한참 동안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러다 얼굴 드니 사지가 떨리면서
장인님 바짓가랑이를 꽉 움키어 잡아챘다
내 머리가 터지도록 얻어맞은 그 이유다
그러나 여기 또한 장인님의 착한 구석
그 여느 사람이라면 사경 주어 쫓았지
그런데 터진 머리 볼솜으로 지져 주고
주머니에 희연 한 봉 넌지시 넣어 주고
“올 갈엔 꼭 성례시켜주마” 등 뚜덕여 줄 사람
장인님이 고마워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점순이 남겨놓고 내쫓길까 걱정 컸지
"빙장님! 다신 안 그러겠어유" 빌며 맹세했었다
그러나 이때는 그것을 모르고서
장인님을 원수로 여겨 잔뜩 잡아당기었다
장인님 헛손질을 하며 "이놈아 야, 놔라 놔"
솔개미에 챈 닭 모양 소리 연해 질러댔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내리라
짓궂이 더 댕겼다만은 한편 겁도 조금 났다
장인님 쓰러져서 눈물까지 피잉 돈다
"놔라 놔, 할아버지! 놔라 놔, 놔놔 놔놔!"
그래도 안 놔 주니까, 점순이를 부른다
"점순아! 얘 점순아!" "점순아! 얘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다급히 헐레벌떡하고 단숨 뛰어나왔다
내 생각에 장모님은 남편 역성 할 것이나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을 거다
속으로 고소해 하겠지, 그런 생각 했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웬 속인가 무슨 영문
아버질 혼내주기는 제가 내래 놓더니만
"이것이 에그머니나! 아버지를 죽이네!"
내 귀를 뒤로 당기며 마냥 우는 것이었다
그만 나는 여기에서 온 기운이 탁 꺾이어
얼빠진 등신이 되었다, 그 까닭은 몰랐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내 한 쪽 귀 잡아채고
이렇게 꼼짝 달짝 못하게 해놓고는
장인은 지게막대기로 사뭇 내려조겼다
그러나 난 구태여 피하려도 하지 않고
알 수 없는 점순이를 멀거니 들여다봤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