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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바꾸어 쓴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한시(漢詩)

 

 

시조로 바꾸어 쓴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한시(漢詩)

 

 

견민(遣悶)

 

春愁春雨不勝寒 春酒一壺排萬難

一杯春酒作春夢 須彌納芥亦復寬

 

봄 시름에 오는 봄비 추적추적 마냥 추워

봄술 한 병으로 만난(萬難)을 물리치네

봄술에 봄꿈을 꾸니 수미산(須彌山)도 겨자씰세

 

 

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

 

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지나간 겨울에는 눈이 꽃과 같더니만

올봄에는 피는 꽃들 볼수록 눈 같구나

눈이나 꽃이 다 참 아닌데 어찌 마음 찢어질까

 

 

견월(見月)

 

幽人見月色 一夜總佳期

聊到無聲處 也尋有意詩

 

외로운 마음으로 달빛을 바라보니

지난 밤들 하나같이 아름다운 한때였네

오로지 소리 없는 곳에서, 의미(意味) 있는 시를 찾네

 

 

고유(孤遊)

 

半生遇歷落 窮北寂寥遊

冷宵說風雨 晝回髮髮秋

 

반평생 지나쳐온 일마다 기구하여

궁박한 북녘으로 쓸쓸히 떠돌았네

찬 바람 걱정하노니, 머리칼엔 가을 빛

 

 

관락매유감(觀落梅有感)

 

宇宙百年大活計 寒梅依舊滿禪家

回頭欲問三生事 一秩維摩半落花

 

한평생에 이 우주를 펄펄 살게 하려는데

찬 매화 옛날같이 절에 가득 피었구나

삼생(三生) 일 묻고자 하나, 유마경에 떨어진 꽃

 

 

구암사초추(龜岩寺初秋)

 

古寺秋來人自空 匏花高發月明中

霜前南峽楓林語 纔見三枝數葉紅

 

옛 절에 가을 들자 사람 절로 마음 비고

박꽃은 높다랗게 달 아래에 피었구나

단풍의 속삭임 듣자니 두어 잎만 진홍빛

 

 

귀암폭(龜岩瀑)

 

秋山瀑布急 浮世愧殘春

日夜欲何往 回看千古人

 

가을 산 폭포 소리 성급히도 쏟아지니

뜬세상 늙은 몸이 한없이 부끄럽네

어디로 밤낮 헤매는가, 옛 분들을 그려 보네

 

 

기러기 노래

<옥중에서 지음>

 

一雁秋聲遠 數星夜色多

燈深猶未宿 獄吏問歸家

天涯一雁叫 滿獄秋聲長

道破蘆月外 有何圓舌椎

 

기러기 한 마리가 멀리 울며 날아가고

한밤에 헤아리니 별빛 더욱 깊어가네

불면(不眠)에 옥리(獄吏)가 묻네, 집 생각이 안 나는지

 

하늘 끝 외기러기 울면서 지나가니

감옥에도 하나 가득 가을바람 뻗치누나

달이여, 어찌하여 너는 쇠몽치 혀 내미는가

 

 

기학생(寄學生)

<옥중에서 지음>

 

瓦全生爲恥 玉碎死亦佳

滿天斬荊棘 長嘯月明多

 

헛된 삶 이어가며 부끄러이 살기보다

충절 위해 깨끗하게 죽는 것이 아름답다

끝없는 형극(荊棘)의 고통, 허나 달은 많이 밝네

 

 

대만화화상만림향장(代萬化和尙挽林鄕長)

 

君棄人間天上去 人間猶有自心傷

世情白髮不禁淚 歲事黃花正斷腸

哀詞落木寒鴉在 痛哭殘山剩水長

公道斜陽莫可追 秋風秋雨滿衣裳

 

그대가 세상 버리고 천상(天上)으로 떠나가니

여기 남은 우리들만 마음 아파 슬퍼하네

백발엔 눈물이 나고, 국화(菊花) 피니 더 애끊네

 

앙상한 나무 위엔 차가운 까마귀떼

버려진 산천마다 통곡(慟哭)은 끝없어라

뉘라서 지는 해 막으리, 가을 바람 옷 적시네

 

 

독야(獨夜) 1

 

天末無塵明月去 孤枕長夜聽松琴

一念不出洞門外 惟有千山萬水心

 

맑디맑은 하늘 끝엔 밝은 달이 흘러가고

홀로 누운 기나 긴 밤 솔잎 소릴 혼자 듣네

마음은 동문 밖 나가잖고 오직 산수(山水) 함께하네

 

 

독야(獨夜) 2

 

玉林垂露月如霰 隔水砧聲江女寒

雨岸靑山皆萬古 梅花初發定僧還

 

고운 숲 이슬 맺혀 달빛은 부서지고

물 건너 다듬잇소리 여심(女心) 홀로 차가워라

산천은 그대로 옛 모습, 매화 필 때 고향 가리

 

 

독야(獨夜) 3

 

天末無塵明月去 孤枕長夜聽松聲

一念不出洞門外 惟有千山萬水心

 

하늘 끝엔 먼지 없어 밝은 달빛 흘러가고

외로운 베개를 베니 기나긴 밤 솔잎 소리

동구 밖 나간 적 없으나 일만(一萬) 물의 마음일세

 

 

독좌(獨坐)

 

朔風吹斷侵長夜 隔樹鍾聲獨閉門

靑燈聞雪寒生火 紅帖剪梅香在文

三尺新琴伴以鶴 一間明月與之雲

偶然思得六朝事 欲說轉頭未見君

 

삭풍(朔風)은 불고 불어 이다지도 기나긴 밤

나무 건너 종 울리면 외로이 문을 닫네

청등(靑燈)은 차가운 불 피우고, 매화 무늬 향기 나네

 

석 자 크기 거문고엔 단학(丹鶴)을 짝지우고

한 칸 방에 달과 구름 더불어 사는구나

육조(六曹) 일 말하고자 하나 그대 아니 계시누나

 

 

독창풍우(獨窓風雨)

 

四千里外獨傷情 日日秋風白髮生

驚罷晝眠人不見 滿庭風雨作秋聲

 

사천 리 바깥에서 홀로이 상심(傷心)하니

가을바람 불 적마다 흰머리가 생겨나네

낮잠을 놀라서 깨니 뜨락 가득 가을 소리

 

 

독풍아주자용동파운부매화용기운부매화

(讀風雅朱子用東坡韻賦梅花用其韻賦梅花)

 

江南暮雪有孤村 玉樹層層降詩魂

枝枝散入塞外笛 纖月蒼凉不染昏

夜香連娟歸夢寂 十年虛盟負故園

却恥春風多榮辱 千寒萬寒不事溫

嬌態不勝帶晩雨 新意那堪向朝暾

左有左松右有竹 一世相守不掩門

雖愛高名易成句 深看佳處還無言

君我俱是厭世者 芳年未○共對尊

 

강남 땅 외딴 마을 저문 눈 내리는데

구슬 맺힌 나무마다 시혼(詩魂)이 쌓여가네

먼 변방 피리소리 들리고, 찬 하늘엔 고운 달빛

 

밤 향기 아리따워 향기 멀리 번져가고

십 년 세월 헛 맹세에 고향만 등졌는가

봄바람 영욕(榮辱)만 많아, 천만 추위 마다 않네

 

늦은 비 오는 날에 무슨 교태(嬌態) 부리리오

새 아침 햇살엔들 마음을 빼앗기랴

솔과 대 한평생 지키니 막을 일이 없어라

 

누구라도 높은 이름 말하기는 쉽지만은

정말로 아름다움 형언(形言)할 길이 없네

그대 나 세상 싫어하니 술 한 잔이나 기울이세

 

 

동경려관청선(東京旅館聽蟬)

 

佳木淸於水 蟬聲似楚歌

莫論此外事 偏入客愁多

 

아름다운 나무들은 물보다 더욱 맑고

사방의 매미소리 초(楚)나라의 노래런가

이 밖에 아무 말도 말라, 손의 시름 더할 뿐

 

 

등고(登高)

 

偶思一極目 東彼危岑峰

人去靑山外 舟行白雨中

長河遇酒少 大雪入詩空

風落枯桐急 殘陽映髮紅

 

갑자기 머나먼 곳 바라보고 싶은 맘에

위태로운 동쪽 산길 묏부리에 오르나니

인적은 청산 밖에 있고, 소나기 속 배가 가네

 

긴 강엔 술 만나기 더더욱 어렵겠고

펑펑펑 쏟는 눈은 시(詩)의 진경(眞景) 드는구나

바람은 마른 오동에 쏟고 볕은 뉘엿 날 붉히네

 

 

등영(燈影)

 

夜冷窓如水 臥看第二燈

雙光不到處 依舊愧禪僧

 

추운 밤 유리창에 물이 얼어 얼비치니

두 개의 환한 등불 누워서도 보게 되네

두 불빛 못 미치는 이 자리, 선승(禪僧)인 게 부끄럽네

 

 

등선방후원(登禪房後園)

 

兩岸寥寥萬事稀 幽人自賞未輕歸

院裡微風日欲煮 秋香無數撲禪衣

 

양 언덕이 고요하여 만사(萬事) 백사 다 쉬는 듯

스스로 숨어 살며 자연 계속 즐긴다네

절 안엔 햇살 따가워라, 가을 향기 옷 휘감네

 

 

마관주중(馬關舟中)

 

長風吹盡侵輕夕 萬水爭飛落日圓

遠客孤舟烟雨裡 一壺春酒到天邊

 

그칠 줄 모르는 바람 저녁이 고이 내려

다투어 나는 물결 가득 내린 낙일(落日)이여

나그네 외로운 배 띄워 하늘가에 이르렀네

 

 

무제(無題)

 

桑楡髮已短 葵藿心猶長

山家雪未消 梅發春宵香

 

늙으막에 들어서니 머리칼이 짧아지고

해바라기 닮았는가, 이 마음은 길고 기네

산가(山家)엔 눈 녹지 않았는데 매화 피어 향기롭다

 

 

무제(無題)

 

농山鸚鵡能言語 愧我不及彼鳥多

雄辯銀兮沈默金 此金買盡自由花

 

‘농산’의 앵무새는 말을 잘도 한다는데

나는야 저 새만큼 말 못하니 부끄럽네

침묵은 금이라 하니, 그 금으로 자유(自由) 살까

 

 

무제(無題)

 

庭樹落陰梅雨晴 半簾秋氣和禪生

故國靑山夢一髮 落花深晝渾無聲

 

뜨락의 나무 그늘 장마가 뚝 그치니

발에 스민 가을 기운 선정(禪定)에 어울지네

고국은 꿈 한 겹 차인데 대낮 소리 죽이네

 

 

무제(無題)

 

黃河濁水日滔滔 千載俟淸難一遭

豈獨摩尼源可照 中流砥柱屹然高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날마다 넘실넘실

맑기 천 년 기다려도 만나기 어려운데

마니주(摩尼珠) 가져 왔는가, 기둥 우뚝 높아라 -

 

 

무제(無題)

 

愁來厭夜靜 酒盡怯寒生

千里懷人急 心隨未到情

 

깊은 시름 쌓여가니 고요한 밤이 싫고

남은 술도 다 마시니 추울까 겁이 나네

천리 밖 그 사람 그리워, 달려갈까 서성이네

 

 

무제(無題)

 

中歲知空劫 依山別置家

經臘題殘雪 迎春論百花

借來十石少 除去一雲多

將心半化鶴 此外又婆娑

 

중년에야 세상 만사 헛것임을 알았더니

늘그막에 산 기대어 외딴집을 얽었도다

섣달엔 남은 눈 읊조리고, 봄 되어선 꽃을 맞네

 

변함없는 돌들이야 열 개라도 안 많지만

지나는 저 구름은 하나라도 적지 않네

마음은 학(鶴)이 되었는데, 그 모든 게 무슨 소용

 

 

방백췌암(訪白萃庵)

 

春日尋幽逕 風光散四林

窮途高興發 一望極淸眼

 

그윽한 봄날 하루 오솔길 찾아 드니

울창한 숲에 가득 새론 풍광 펼쳐지네

끊긴 길 흥(興)이 일어나니 맑은 시정(詩情) 어리네

 

 

별완호학사(別玩豪學士)

 

萍水蕭蕭不禁別 送君今日又黃花

依舊驛亭○○在 天涯秋聲自相多

 

부평초(浮萍草) 같은 인생 이별 더욱 서러워라

그대를 보내는 날 국화꽃이 피었구려

옛 역사 슬픔만 차오르니 가을 소리 몰려오네 -

 

 

병감후원(病監後園)

 

談禪人亦俗 結網我何僧

最憐黃葉落 繫秋原無繩

 

말로 선(禪)을 하는 것은 속된 일 아닐러냐

인연을 지어대니 내가 어찌 중이리오

낙엽은 지고 있는데 가을 맬 끈 없구나

 

 

병수(病愁)

 

靑山一白屋 人少病何多

浩愁不可極 白日生秋花

 

푸른 산 푸른 숲속 외로운 오막살이

젊은 몸이 어이하여 병은 이리 많은지고

시름이 끝이 없는 나날, 가을꽃은 다퉈 피네

 

 

사향(思鄕)

 

江國一千里 文章三十年

心長髮已短 風雪到天邊

 

물나라는 일천 리요, 문장으론 단 삼십 년

마음만 길고 긴데 머리 이미 짧아졌네

차디찬 눈바람은 벌써 하늘가에 있구나

 

 

산가효월(山家曉月)

 

山窓睡起雪初下 況復千林欲曙時

漁家野戶皆圖畵 疾裡尋詩情亦奇

 

산창(山窓)에 잠을 깨니 눈 내리기 시작하고

때마침 아득한 숲 새벽이 깃을 치네

마을집 모두가 그림일세, 병든 마음 힘이 솟네

 

 

산주(山晝)

 

群峰蝟集到窓中 風雪凄然去歲同

人境寥寥晝氣冷 梅花落處三生空

 

봉우리들 창에 모여 그림인 양 자랑하고

눈바람 몰아치니 가는 세월 똑같구나

매화꽃 지는 곳마다 삼생(三生)이 다 공(空)이어라

 

 

설야(雪夜)

 

四山圍獄雪如海 衾寒如鐵夢如灰

鐵窓猶有鎖不得 夜聞鐘聲何處來

 

감옥을 에워싼 산(山) 내린 눈은 바다 같고

쇠처럼 싸늘한 이불, 꿈도 재로 식었구나

오히려 가두지 못하는 것, 한밤중의 종소리

 

 

설효(雪曉)

 

曉色通板屋 忽忽不可遊

層郭孤雲去 亂峰殘月收

寒情키玉樹 新夢過滄洲

風起鍾聲急 乾坤歷歷浮

 

새벽빛이 판잣집에 차갑게 들어오니

참으로 황홀하여 어찌할 길 바이 없네

성곽(城郭) 위 외로운 구름, 봉우리는 달을 품네

 

차가운 정경(情景) 속에 나무들은 구슬 단장

싱그러운 꿈결 속에 신선(神仙) 마을 지나가네

급해진 풍경 소리에 땅과 하늘 떠 있네

 

 

설후만음(雪後漫吟)

 

幽人寂寂每縱觀 眼欲靑時意不輕

大雪初晴塵世遠 萬山欲暮壯心生

經歲漁樵皆入夢 忍冬梅竹亦關情

萬古英雄一評後 更聽四海動春聲

 

집에만 있던 이도 들구경을 나가나니

푸른 들판 보고픈 뜻 가볍게 볼 것인가

큰 눈에 맑게 씻긴 세상, 장한 마음 일어나네

 

지난 세월 고기 잡고 나무 하던 꿈을 꾸고

겨울을 견딘 매죽 다시 마음 끌리는데

역사의 영웅들을 보고 사해(四海) 소식 듣노라

 

 

술회(述懷)

 

心如疎屋不關扉 萬事曾無入微妙

千里今宵無一夢 月明秋樹夜紛飛

 

마음은 그야말로 빗장 없는 집 같아서

만사에 미묘한 것 어디에도 하나 없네

한 자락 꿈도 없는 밤 가을 잎만 우수수

 

 

심우장(尋牛莊)

<한용운이 지은 시조>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손 더 우습도다

잃을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나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

 

 

심우장(尋牛莊)

<한용운이 지은 시조>

 

소 찾기 몇 해던가, 풀길이 어지럽다

북악산 기슭 안고 해와 달로 감돈다네

이 마음 가지 않으매 만나오리 정녕코

 

 

심우장(尋牛莊)

<한용운이 지은 시조>

 

찾을 마음 숨은 마음 서로서로 숨박꼭질

골 아래 흐르는 물 돌길을 뚫고 넘네

말없이 웃어내거든 소 잡은 줄 아옵서라

 

 

안해주(安海州)

 

萬斛熱血十斗膽 ○盡一劍霜有韜

霹靂忽破夜寂寞 鐵花亂飛秋色高

 

만 가마의 뜨거운 피, 한 섬의 담력(膽力)으로

한 칼을 달궈내니 서릿발이 날렸구나

무쇠꽃 어지러이 날려 가을빛이 드높다 -

 

* 안중근 선생의 의거 소식을 듣고 지은 시

 

 

야행(野行)

 

匹馬蕭蕭渡夕陽 江堤楊柳變新黃

回頭不見關山路 萬里秋風憶故鄕

 

쓸쓸히 말을 몰아 석양(夕陽)을 지나자니

강언덕 버드나무 샛노랗게 물들었네

머리를 아무리 돌려도 고국(故國) 길은 멀구나

 

 

야행(野行)

 

尋趣偶過古渡頭 盈盈一水小魚遊

汀雲已逐西風去 獨立斜陽見素秋

 

우연히 만났기에 옛 나루터 지나자니

찰랑찰랑 물속마다 어린 고기 놀고 있네

구름은 석양에 흐르니 홀로 서서 가을 보네

 

 

약사암도중(藥師庵途中)

 

十里猶堪半日行 白雲有路何幽長

緣溪轉入水窮處 深樹無花山自香

 

십리 길을 걸어가다 반나절을 더 견디니

흰구름에 길이 있나, 어찌 이리 길고 먼가

계곡은 물길 끊겼는데 산은 절로 향기롭네

 

 

양진암(養眞庵)

 

深深別有地 寂寂若無家

花落人如夢 古鍾白日斜

 

깊디깊은 별유천지(別有天地), 고요하니 집도 없네

산마다 꽃 지는 게 사람의 꿈 같도다

오래된 종소리 울리니 석양 노을 기우네

 

 

어적(漁笛)

 

孤帆風烟一竹秋 數聲暗逐荻花流

晩江落照隔紅樹 半世知音問白鷗

韻絶何堪遯世夢 曲終虛負斷腸愁

飄掩律呂撲人冷 滿地蕭蕭散不收

 

외로운 돛배 하나 안개 낀 가을 대숲

은근한 노랫소리 갈대꽃도 따라 흘러

반평생 나의 노래를 백구(白鷗) 너는 알리라

 

기막힌 그 가락에 둔세(遁世)의 꿈 못 버리고

노래가 끝났어도 애끊는 한(恨) 못 견디네

천지에 차오르는 쓸쓸함 거둘 길이 없구나

 

 

여금봉백야(與錦峰伯夜)

 

詩酒相逢天一方 蕭蕭夜色思何長

黃花明月若無夢 古寺荒秋亦故鄕

 

시와 술이 한 하늘에 한 모퉁이 만났더니

소슬한 밤 깊은 모습 생각은 길고 길다

국화는 꿈도 없는가, 거친 옛절 고향일세

 

 

영산포주중(榮山浦舟中)

 

漁笛一江月 酒燈兩岸秋

孤帆天似水 人逐荻花流

 

어부(漁夫)의 피리소리, 강과 달이 하나 되고

주막 등불 두 언덕엔 가을빛 어리었네

돛배는 홀로 외로워 갈꽃 따라 흘러가네

 

 

옥중감회(獄中感懷)

 

一念但覺淨無塵 鐵窓明月自生新

憂樂本空唯心在 釋迦原來尋常人

 

오로지 한 생각에 청정(淸淨)함을 깨달으니

쇠창살 밖 밝은 달은 저절로 새롭구나

우락(憂樂)도 본래 공(空)한 것, 석가 원래 보통 사람

 

 

완월(玩月)

 

空山多月色 孤往極淸遊

情緖爲誰遠 夜深杳不收

 

비인 산에 밝은 달빛 흘러서 넘쳐나고

홀로이 거닐면서 마음껏 노니는 밤

뉘 향해 달려가는 이 마음, 걷잡을 수 없구나

 

 

우고인매제하부작오고여유호기심시

(又古人梅題下不作五古余有好奇心試)

 

梅花何處在 雪裡多江村

今生寒氷骨 前身白玉魂

形容晝亦奇 精神夜不昏

長風散鐵笛 暖日入禪園

三春詩句冷 遙夜酒盃溫

白何帶夜月 紅堪對朝暾

幽人抱孤賞 耐寒不掩門

江南事蒼黃 莫向梅友言

人間知己少 相對倒深尊

 

매화꽃 있는 그 곳, 거기가 어디런가

눈 덮인 강촌일세, 눈에 잠긴 저 강마을

이생에 얼음 같은 풍골, 전생에는 백옥의 넋

 

볼수록 매화 모습 낮에도 기이하고

밤이라 그 정신이 맑고도 더욱 밝네

바람은 피리소리 보내니, 선방 가득 따스한 해

 

봄 석 달 지는 시구(詩句) 차갑기 그지없네

밤새워 다사로운 술잔들을 비우나니

그 모습 달빛 데불고 아침 햇살 보는 듯

 

숨어 살아 외로운 삶 칭찬을 하노라니

바람 차다 너를 두고 방문을 닫으리오

강남 일 뒤숭숭하다지만 매화에겐 말을 말라

 

 

우중독(雨中獨)

 

海國多風雨 高堂五月寒

有心萬里客 無語對靑巒

 

일본 땅 섬나라는 비바람이 자주 있어

내 머무는 높다란 집 오월에도 아직 춥다

만 리의 나그넨 말 잃고 푸른 산만 바라보네

 

 

월방중(月方中)

 

萬國皆同觀 千人各自遊

皇皇不可取 ○○那堪收

 

천하 만국 사람들이 다 함께 볼 수 있고

일천 사람 일만 사람 제각기 절로 노네

빛나서 가질 수 없고, 아득하다 못 거두네

 

 

월욕락(月欲落)

 

松下蒼煙歇 鶴邊淸夢遊

山橫鼓角罷 寒色盡情收

 

소나무 밑 파란 연기 흐르는 듯 멈추었고

학(鶴) 주변엔 맑은 꿈이 흥에 겨워 노니누나

산허리 싸늘한 빛이 정(情)을 다해 거둔다

 

 

월욕생(月欲生)

 

衆星方奪照 百鬼皆停遊

夜色漸墜地 千林各自收

 

뭇 별들이 바야흐로 그 빛을 빼앗기니

갖가지 귀신들도 놀이를 멈추었나

밤빛이 땅에 떨어지니 모든 숲을 거둬가네

 

 

월초생(月初生)

 

蒼岡白玉出 碧澗黃金遊

山家貧莫恨 天寶不勝收

 

검푸른 산봉우리 흰 옥돌이 솟아 있고

파아란 계곡물엔 황금 물결 노니누나

산집아 가난 한탄 마라, 하늘 보배 못 거두네

 

 

일광남호(日光南湖)

 

神○山中湖水開 山光水色共徘徊

十數小船一兩笛 夕陽唱倒漁歌來

 

신타산 한가운데 호수가 열려 있어

산 모습 물빛들이 함께 얼려 맴을 도네

몇 가닥 피리소리로 뱃노래가 돌아오네

 

 

자경귀오세암증박한영

(自京歸五歲庵贈朴漢永)

 

一天明月君何在 滿地丹楓我獨來

明月丹楓共相忘 唯有我心共徘徊

 

하늘 가득 달 밝은데 그대 어디 계신가요

온 세상 단풍에 묻혀 나 홀로 예 왔어요

내 마음 단풍은 잊어도 그대 함께 헤맨다오

 

 

자민(自悶)

 

枕上夢何苦 月中思亦長

一身受二敵 朝來鬢髮蒼

 

잠들면 잠든 대로 꾸는 꿈은 더 괴롭고

잠깨면 달빛 속에 끝도 없이 나는 생각

두 적(敵)을 어찌 견디랴, 젊던 수염 백발이네

 

 

정부원(征婦怨)

 

妾本無愁郞有愁 年年無日不三秋

紅顔憔悴亦何傷 只恐阿郞又白頭

昨夜江南採蓮去 淚水一夜添江流

雲乎無雁水無魚 雲水水雲共不看

心如落花謝春風 夢隨飛月渡玉關

雙手慇懃敬天祝 郎與春色一馬還

阿郞不到春已暮 風雨無數打花林

妾愁不必問多少 春江夜湖不言深

一層有心一層愁 賣花賣月學無心

 

첩은 원래 시름 없고, 낭군은 수심 있어

해마다 하루가 삼년, 아닌 날이 있으리오

내 얼굴 여위어도 좋네, 낭군 머리 흴까 걱정

 

지난밤엔 강남으로 연꽃을 캐러 갔다

밤새 내내 흘린 눈물 강물에 보태었소

물에는 고기조차 없으니, 바라는 게 하나 없네

 

마음은 봄바람을 여의고 가듯 하고

꿈은 달을 따라 옥문관(玉門關)을 건너가네

손 모아 받들어 축원함은 낭군 오기 바람이네

 

낭군은 오지 않고 봄은 이미 저무는데

비바람 셀 수 없이 꽃 숲을 휘젓누나

시름이 얼마나 되는지 물을 필요 없으리

 

봄 강물 밤 호수도 깊단 말 못하리라

마음 한층 깊을수록 시름도 한층 높아

꽃 팔고 달을 팔아서라도 무심(無心)함을 배우리라

 

 

중양(重陽)

 

九月九日百潭寺 萬樹歸根病離身

閒雲不定孰非客 黃花已發我何人

溪磵水落晴有玉 鴻雁秋高逈無塵

午來更起蒲團上 千峰入戶碧色○

 

구월달 초아흐레 중양절 백담사엔

온갖 낙엽 떨어지니 병도 내 몸 떠나는가

누군들 나그네 아닐까만, 국화꽃 속 난 누군가

 

시내에는 물이 잦아 옥돌들이 드러나고

기러기 나는 하늘 아득하여 먼지 없네

낮 되자 천산(千山)이 방에 들어 푸른빛에 젖는도다

 

 

즉사(卽事)

 

山下日○○ 山上雪紛紛

陰陽各自妙 詩人空斷魂

 

산 밑에는 햇빛 쨍쨍, 산 위에는 눈발 분분(紛紛)

음양(陰陽)의 오묘함은 제각기요 멋대론데

시인(詩人)만 공연히 앉아 자기 넋을 태우네

 

 

즉사일(卽事一)

 

一庵何寂寞 塊坐依欄干

枯葉作聲惡 飢鳥爲影寒

歸雲斷古木 落日半空山

獨對千峯雪 淑光天地還

 

암자(庵子)에 쌓인 적막, 난간 기대 앉았더니

메마른 나뭇잎은 괴로운 소릴 내고

배 주린 새의 그림자는 차갑기만 하구나

 

돌아가던 구름 한 점 고목(枯木)에 걸리었고

지는 해는 절반이나 빈 산에 걸려 있네

하많은 설봉(雪峰) 보고 앉으니 천지 봄빛 돌아오네

 

 

즉사(卽事)

 

北風雁影絶 白日客愁寒

冷眼觀天地 一雲萬古閒

 

북녘에 부는 바람 기러기 자취 끊어

나그네 깊은 시름 한낮에도 차갑구나

싸늘한 하늘 땅 바라보니 구름 한 점 두둥실

 

 

즉사(卽事)

 

鳥雲散盡孤月樓 遠樹寒光歷歷生

空山雁去今無夢 殘雪人歸夜有聲

紅梅開處禪初合 白雨過時茶半淸

虛設虎溪亦自笑 停思還憶陶淵明

 

먹구름 흩어진 곳 누각에는 외로운 달

먼 나무에 차가운 빛 역력하게 살아나네

빈 산 속 잠도 오지 않는데 잔설 밟는 발 소리

 

홍매가 피는 곳에 삼매(三昧)에 처음 들어

소나기 지나칠 땐 차(茶) 맛마저 더욱 맑네

말하다 ‘호계(虎溪)’ 지나 버린 일, 도연명을 생각하네

 

 

즉사(卽事)

 

殘雪日光動 遠林春意過

山屋病初起 新情不奈何

 

잔설(殘雪)이 잦아드니 햇살은 춤을 추고

먼 숲에 언뜻언뜻 봄뜻이 스쳐오네

산집에 병(病)이 떠나니 새 움튼 정(情) 어쩌리오

 

 

즉사(卽事)

 

朔風吹白日 獨立對江城

孤煙接樹直 輕夕落庭橫

千里山客滴 一方雪意生

詩思動邊塞 侶鴻過太淸

 

차디찬 삭풍(朔風) 불어 떠 있는 해 몰아치고

강성(江城)을 마주하여 홀로이 서 있구나

연기는 나무 더듬어 솟고, 저녁 사뿐 뜰 지나네

 

천 리 산객(山客) 젖어드니 눈이라도 내리는가

솟아나는 시정(詩情) 있어 변방을 움직이는데

짝지은 기러기 떼가 맑은 하늘 지나가네

 

 

즉사(卽事)

 

紅梅開處禪初合 白雨過時茶半淸

虛設虎溪亦自笑 停思還憶陶淵明

 

홍매(紅梅)꽃 벌어지니 중은 다시 삼매(三昧) 들고

소낙비 지나가매 차(茶)도 한결 맛이 맑아

호계(虎溪)에 전송하고 웃다니, 도잠(陶潛) 인품 그리운가

 

 

증별(贈別)

 

天下逢未易 獄中別亦奇

舊盟猶未冷 莫負黃花期

 

천하에 만나기도 쉽지 않을 일이지만

감옥에서 이별이라니 역시 아니 기이(奇異)한가

옛 맹세 오히려 식기 전, 국화 필 때 잊지 마세

 

 

차영호화상향적운(次映湖和尙香積韻)

 

萬木森凉孤月明 碧雲層雪夜生溟

十萬株玉收不得 不知是鬼是丹靑

 

나무 숲은 썰렁한데 외로운 달빛 밝네

푸른 구름 눈 비추니 완연한 바다로세

십만 주(株) 나무마다 옥구슬, 조화(造化)인가 그림인가

 

 

청한(淸寒)

 

待月梅何鶴 依梧人亦鳳

通宵寒不盡 키屋雪爲峰

 

달 기다려 핀 매화는 학(鶴)인 양 서서 있고

오동에 의지하니 사람 또한 봉황(鳳凰)일세

새도록 추위 그치잖고 눈은 온통 집 감싸네

 

 

청효(淸曉)

 

高樓獨坐絶群情 庭樹寒從曉月生

一堂如水收人氣 詩思有無和笛聲

 

다락에 나앉으니 뭇 생각이 끊기는데

뜨락 나무 새벽달 따라 추위가 생겨나네

어렴풋 떠오른 시상(詩想), 화답(和答)하는 피리 소리

 

 

추야우(秋夜雨)

 

床頭禪味澹如水 吹起香灰夜欲闌

萬葉梧桐秋雨急 虛窓殘夢不勝寒

 

선정(禪定)에 들었더니 담담하기 물과 같고

향불 다시 피워내니 밤은 더욱 깊어가네

오동잎 가을비 소리에 새삼스레 밤이 차네

 

 

추효(秋曉)

 

虛室何生白 星河傾入樓

秋風吹舊夢 曉月照新愁

落木孤燈見 古塘寒水流

遙憶未歸客 明朝應白頭

 

조용한 가을 빈 방 새벽빛이 희끗희끗

은하(銀河)는 기울어서 다락으로 들어오네

추풍은 지난 꿈을 불고 새벽달은 근심 비춰

 

괴벗은 나무 건너 등불 하나 걸려 있고

오래된 연못으로 찬 물길이 돌아드네

생각에 잠긴 나그네 머리칼이 희어지리

 

 

추회(秋懷)

 

十年報國劒全空 只許一身在獄中

捷使不來○語急 數莖白髮又秋風

 

나라 위한 십년 세월 허사 되고 말았는가

겨우 고작 이 한 몸은 옥(獄) 속에 갇혀 있네

전승(戰勝)의 기별은 아니 오고 벌레들만 저리 우네

 

 

춘몽(春夢)

 

夢似落花花似夢 人何胡蝶蝶何人

蝶花人夢同心事 往訴東君留一春

 

꾸는 꿈은 낙화 같고 피는 꽃은 꿈 같은데

사람은 왜 나비 되고 나비 어찌 사람 되나

봄의 신 찾아가볼꺼나, 이 한 봄이 못 가도록

 

 

춘주(春晝)

<한용운이 지은 시조>

 

따스한 별 등에 지고 유마경을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누나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춘주(春晝)

<한용운이 지은 시조>

 

봄날이 고요키로 향 피우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침성(砧聲)

 

何處砧聲至 滿獄自生寒

莫道天衣煖 孰如徹骨寒

 

어디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인가

어두운 감옥 속을 냉기(冷氣)로 꽉 채우네

천자(天子) 옷 따뜻하다 하나 뼛속까지 냉기(冷氣)로세

 

 

한강(漢江)

 

行到漢江江水長 深深無語見秋光

野菊不知何處在 西風時有暗傳香

 

한강에 와서 보니 강물은 이어 길고

깊은 물결 말 없는데 가을빛이 어리었네

들국화 어디 피었는가, 서풍 타고 향기 오네

 

 

한적(寒寂)

 

不善耐寒日閉戶 觀山聽水未能多

雪風埋屋人寂寂 禪如春酒散梅花

 

날 추워 문 닫으니 산수(山水) 찾을 겨를 없네

눈바람이 집을 메워 고요하고 고요하니

봄술에 낙매(落梅)를 보며 선미(禪味) 속에 취하네

 

 

향로암야(香爐庵夜)

 

南國黃花早未開 江湖薄夢入樓臺

雁影山河人似楚 無邊秋樹月初來

 

남국의 국화꽃은 아직도 채 피지 않고

강호에 노는 꿈이 누대(樓臺)에 머물렀네

산하엔 기러기 그림자, 나무 사이 달이 뜨네

 

 

향로암즉사(香爐庵卽事)

 

僧去秋山逈 鷺飛野水明

樹凉一笛散 不復夢三淸

 

산승(山僧)이 떠나가니 가을 산은 더욱 멀고

백로(白鷺) 나는 곳곳마다 들물은 맑디맑네

나무는 서늘도 한데 신선(神仙) 꿈을 왜 꾸는가

 

 

향로암야금(香爐庵夜唫)

 

南國黃花早未開 江湖薄夢入樓臺

雁影山河人似楚 無邊秋樹月初來

 

남국(南國)에도 철이 일러 국화는 아니 피고

눈에 선한 누각(樓閣)들이 더 그리운 강호(江湖) 정경

산천에 나는 기러기는 사람들을 가두네

 

 

호접(蝴蝶)

 

東風事在百花頭 恐是人間蕩子流

可憐添做浮生夢 消了當年第幾愁

 

봄바람에 온갖 꽃을 분주하게 찾는구나

보건대 저 나비들 방탕한 인간 같네

가련타, 헛꿈 더하니 몇 번 근심 풀었는가

 

 

황매천(黃梅泉)

 

就義從客永報國 一瞋萬古○花新

莫留不盡泉坮恨 大慰苦忠自有人

 

의로운 그대시여, 나라 위해 영면(永眠)하니

눈 부릅떠 억겁 세월 새 꽃으로 피어나리

맺힌 한(恨) 다 말하지 마오, 그 괴로움 위로하리

 

 

회음(懷吟)

 

此地群雁少 鄕音夜夜稀

空林月影寂 寒戍角聲飛

衰柳思春酒 殘砧悲舊衣

歲色落萍水 浮生半翠微

 

가을이 왔는데도 기러기떼 날지 않고

그리운 고향 소식 밤마다 드물구나

빈 숲엔 달 그림자뿐, 변방에는 나팔 소리

 

쇠잔한 버들에도 봄술 한 잔 생각나고

잦아지는 다듬잇소리 해진 옷이 서럽구나

한 해가 마름풀처럼 지니 인생 절반 산에 사네

 

 

효일(曉日)

 

遠林煙似柳 古木雪爲花

無言句自得 不奈天機多

 

먼 숲 속 오르는 연기 버들을 보는 듯해

고목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구나

말없이 싯구 절로 얻으니 하늘 기틀 많아선가

 

 

무제(無題)

 

此地雁群少 鄕音夜夜稀

空林月影寂 寒戌角聲飛

寒柳思春酒 殘砧悲舊衣

歲色落萍水 浮生半翠微

 

이곳엔 하늘 나는 기러기도 적더니만

밤마다 기다려도 고향 소식 드물구나

빈 숲에 달 그림자 적적, 찬 수루엔 피리소리

 

싸늘한 버들가지 봄술 한 잔 생각나고

자지러진 다듬잇소리 낡은 옷에 서러워라

뜨내기 괴로운 삶 이미 반 중턱에 닿았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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