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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철제 수장고가 부끄럽다

유물을 투명하게 시민에게 보여주기 전에 건축물부터 신경을 썼어야
철제 창고형 수장고가 파주의 역사, 전통에 부합하나, 헤이리에 부합하나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철제 수장고가 부끄럽다

 

전통을 유지 보수해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옛것이라고 해서 모두 전통이 아니며,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전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통의 잣대는 모호하지만 그 모호한 말 앞에 ‘민속’이라거나 ‘국악’이라거나 지칭하는 바가 딱 떨어지면 이건 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굳이 에둘러 말하는 것은 2020년 7월 파주에 선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민속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활용하기 위해 개방형 수장고로 지어진 이 ‘건물’은 전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민속박물관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외관상 첫인상은 종로에 서 있는 국세청 건물과 유사하다. ‘세금의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 인사동과도 어울리지 않고, 지척에 있는 조계사와도 맞지 않는, 그냥 유리 상자(보기에 따라서는 금은보석을 끌어모은 보석상자 같다)가 국세청 건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철근과 유리 조합의 건축물이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은 날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약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자아낸다. 수장고라는 말에 부합하려면 해풍과 거리를 두는 게 어울리지만 그 땅은 남북의 강이 서해안으로 흐르는, 바람과 습기가 많은 곳이다. 또 그곳은 통일동산에서 멀지 않다. 남북 분단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물론 통일 시대를 내다본다면야, 무릎을 치며, 그런 선견지명이 있나 하겠지만 가까이 헤이리를 끼고 있기에 꼭 그런 생각으로 지어진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 그곳에서 멀지 않는 개성 송악산 아래의 황성 옛터를 모방해서 한옥 목구조 건축물을 세웠으면 어땠을까. 헤이리로 오는 시민들에게 민속유물과 사진, 음원, 영상 등 무형의 민속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이 모든 걸 소장하고 있는 이 건축물이 고려 황성옛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어차피 민속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속된 것들, 서민의 삶에 종속된 것들이라고 인식되기에 박물관의 노릇 역시 체험학습장의 장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지금의 창고형 건축물이 아니라 민속적 삶의 건축물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철근 구조물이 전통을 발전시킨 결과물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국립’이라는 의무와 ‘민속박물관’이라는 책임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지금의 건축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영국에 방문했을 때 지붕에 나팔 부는 천사들이 잔뜩 탄 왕실 마차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 마차는 당연지사고 말들 역시 왕실 족보에 등재된 말을 사용한다. 앞서 말했듯이 전통은 유지가 계승 발전보다 더 어렵기에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수장고의 특수성에 비춰 철제구조 창고형이 어울릴 수 있다지만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떠올려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떤 것 하나 목판본을 유지 보관하기에는 그곳만큼 안성맞춤인 곳이 없다. 그 전통을 버려서 득 될 것이 있겠는가.

 

또 지역적 특성만 봐도 파주는 사실 전통 계승에 나름 신경을 쓰고 있다. 좋은 예로 파주에는 황희 선생 유적지 반구정이 있기에 신도시에는 황희 선생의 호로 세워진 거리, 아파트가 있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월롱면 도내리에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짚풀 마을이 있다. 일대가 전부 논이었으니 그러한 문화가 발전한 게 당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철제건축물(파주는 한때 탱크와 포탄이 왕래하던 전쟁터였다)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이것이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를 본 첫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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