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님의 춤 향기, 여제(女帝)의 길 - 그리움과 사랑으로
아름답고 섬세한 여성성과 권력의 영욕으로 점철된 제왕적 위용을 작품으로 은유하여 이를 담아 표현한 “여제(女帝)의 길” 서영님의 춤길 한판이 지난 8월 2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졌다.
“여제의 길, 그리움과 사랑으로”라는 공연 명제를 내 걸고 마음에 사무치는 공연을 마련하였다. 소중한 인연, 소중한 사랑이 담긴 고독하며 영혼이 얽혀진 한 삶을 보여준 무대였다,
예술로 산다는 것이 지극히 예민하고 섬세한 심성, 그리고 열정어린 질곡의 과정이 내면에 담겨 있음을 표출해 낸 작업이라 여겨진다.
서영님 명무
오랜 세월 한국무용계에 많은 역할과 중요한 위치에서 위로는 스승의 예혼을 담고 익히며, 제자들에게는 예술적 동행을 통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를 가지며 지나 온 모습은 그의 춤 길과 경륜에서 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간의 크고 작은 공연과 발표회는 수없이 많았으나, 본격적인 춤에 혼을 담은 시기는 2001년 <서영님의 춤 향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우리 역사에 나타난 국가의 운명이 중심에 자리했던 명성황후의 모습에서 현실적인 고뇌에서 찾아본다.
화려함과 절망감으로부터 비롯된 ‘위대한 허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점과 더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국가의 초석을 마련한 선덕여왕의 숭고함과 응축된 힘에서 그 정신을 담은 춤의 세계로 함축케 한 작품으로 다시금 <서영님의 춤, 그 향기 2003>에서 선보인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칼’이 결실로 이끈 작품이었다.
역사적 허무를 딛고 영광과 고뇌의 험난한 행로를 거친, 끝내는 거대한 하나의 민족적 울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성심(聖心)의 춤사위, 이를 <서영님의 춤, 그 향기 2016>에서 “여제(女帝)의 길, 그 영광과 울림이라 명명을 얻어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러, 지니 온 길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가야 할 본분과 가야 할 길은 항상 우리의 뜻대로 쫓지 않음을 절감케 된다. 그래도 함께 걸어 갈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그러한 제자들과 함께 동반되어 이번 무대를 갖게 되어 고마움을 넘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나누어 짐을 지우는 듯 해 송구함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춤의 길이 곧 그리움이자 사랑이라 하였다. 이번 공연은 모두 8개 작품으로 첫 작품은 ‘조용자류 장고춤’으로 마련,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에 맞춰 흥겹게 추워 보였다. 구전으로만 떠돌던 조용자류의 장고춤의 가치를 사료적, 학문적 고찰과 원로무용가들의 고증을 통해 복원된 작품이다.
이는 지난 2021년 ‘전통예술의 복원 및 재현사업’의 일환으로 촉발된 것으로 당대의 한성준, 정인방, 조용자, 은방초, 이매방을 거쳐 현재 서영님의 장고춤이 재현되는 것이 명백히 확인 된 바 있다. 특히 이 춤은 시대의 간극을 넘어 탁월한 신체성과 예술미를 구현하는 조용자와 서영님의 미학적 유사성이 연계되는 한국 춤의 묘미를 경험케 하는 기회였다.
두 번째 작품으로 ‘북과 여인 <진도북춤>’에는 박병천 명인이 극찬한 서영님과 제자들이 한데 어울어진 진도지방 설북의 합주로 풍미스런 자태가 오롯이 묻어 있는 작품이었다
서영님의 진도북춤
세 번째 작품으로 ‘청룡신검무’인데, 장검을 이용한 역동적이며 웅장하고 호방함이 담긴 남성 춤꾼들의 날렵한 전통창작품으로 2003년 재현된 춤이다. 특히 원로무용가 박소림의 아들 정명훈(서울예고출신, 세종대박사) 외 4인이 출연하여 장검무의 뿌리를 보여 준 무예도(舞藝刀)를 표현하는 역작의 계기가 되었다.
청룡신검무 작품사진
네 번째로 ‘회상‘으로 한국 신무용을 대표하는 은방초류 살풀이로 한(恨), 멋(美), 흥(興), 태(態), 정중동(靜中動)의 미가 극치를 이루는 한국 춤의 고른 특징과 독특한 리듬감과 율동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이다. ’회상‘은 2018년 대한무용협회로부터 명작무로 지정받은 바, 서영님의 춤으로 이어져 향후 많은 울림과 호응을 받을 것이라 보여 진다.
다섯 번째로 이번 초연되는 ‘5인 살풀이, 화음’은 은방초의 ‘회상’을 서영님의 ‘회상’으로 이어지는, 서영님과 제자 5인의 공동의 작품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동적이고 창의적인 살풀이로 풀어지는데 각자의 동작이 모여 하나의 운집된 신선무와 같은 예술적 감동을 자아내는 춤이었다.
여섯 번째로 보여 준 작품은 ‘파문’으로 서영님의 대표작으로 단아하고 매혹적인 여인의 자태 속에 호쾌하고 거침없는 움직임이 더해져 힘찬 에너지와 해학적 미소가 부채의 움직임에 따라 퍼져 나가며 회한과 생사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 칼날이 되어 통곡하며 노래하며 울부짖는 인간 내면의 혼과 신명을 일으키는 한국 춤의 기본이 잘 스며 드는 서영님 특유의 춤 해석을 엿볼 수 있다.
일곱 번째로 ‘장단의 결, 몸의 선율’인데, 이 춤은 조용자 장구춤에서 연유한 작품으로, 서영님의 현대적 감성이 잘 융합되어 탄생한 창작품이다.
무용수의 몸은 장단에 결에 띠라 리듬을 짓고 선율이 그어진다. 절제와 여백, 강약과 호흡이 어우러진 움직임은 서영님의 장구춤에 내재된 여성성과 예술성을 새롭게 빛내며 전통이 갖는 현재적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끝으로 ‘9고무<이숙향류>‘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 북춤은 9개의 북을 응용하여 3고무, 5고무, 7고무 등으로 홀수로 구성되는데 9고무는 현재 흔히 전승되지 않으나, 1950년대 주만향이 김문숙에게 사사하였고 그 이후 김문숙이 이숙향에게 전수하여 현재 서영님으로 하여금 거듭나는 계보를 지니고 있다. 서영님의 9고무는 북과 춤사위에서 공간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춤사위가 북 춤이 가지는 깊이 있고 그 신명을 자아낸다.
서영님의 9고무
특히 서영님만의 9고무의 특징은 북을 치는 과정에서 북 사이를 들고 나며 그 두드림이 기법에서 들려지는 목탁과 바라의 울림은 보기 드문 특출한 타법으로 연희됨을 알 수 있다, 이 9고무는 2005년 ‘서영님의 춤, 그 향기’에서 이어 온 바 있으며, 오늘날 9고무는 서영님 특유의 무대로 흑 장삼을 벗어 던지고 북을 치는 장면은 인간의 해탈을 경험하여 또 다른 세계와 조우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크나 큰 매력으로 다이나믹하게 펼쳐졌다.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지닌 분을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 전통 무용의상의 1세대라 칭할 선구자, 바로 이용주(그레타 리) 선생이신데, 이 분은 서영님과의 인연이 60여년전 은방초와의 문하에서 동시대적으로 무대의상을 도맡아 하셨다. 언제나 춤과 의상, 분장에 관해 이끌고 특별한 경험과 사실적인 무대 노하우를 일러 주시곤 하였다.
이용주(그레타 리) 선생
두 분은 70년대초 서라벌 예대 재학시절부터 무대의상 제작에 관여하셨고, 1967년부터 현재까지 한복의상을 제작하신 한국무용 의상디자이너이시다.
그는 특히 1972년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민속예술단 의상디자이너로 시작, 1984년 LA올림픽, 1986 서울아시안게임, 1988 서울올림픽 등 세계가 주목 할 국제행사에 의상을 맡아 한국전통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신 분이다
이용주님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무용계에 매료되어 의상과 소품 작업에 몰입, 그 시절 은방초와도 늘 즐거이 열기와 숨결을 함께하셨다. 한성대 의상학과 초빙교수로 활약하시며 단지 의상만 제작하는 분이 아니라 한국예술의 혼을 직조하시는 예술가이다. 이용주님은 우리 한국무용계를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어른이시기도 하다
한편, 이번 공연은 서로 다른 작품을 재현 또는 재해석하는 값진 무대로 스승의 정신을 되새긴 빙출어수(氷出於水)의 뜻도 담겨져 스승을 뛰어 넘는 무대가 아니라, 물에서 태어났지만 물보다 차가운 얼음처럼 스승의 예술세계를 되새기는 기념비적인 대공연이였다(이병훈 작가).
지난 7월17일 풍류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피어 난 춤판’이 다시금 기억에 남는다. 화려한 춤사위 보다 스승의 가르침과 그 본질을 이해하며 이를 풀어냄으로써 관객과의 깊은 울림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근래 보기 드문 무용공연으로 그리움과 사랑이 흠씬 담긴 춤판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겠다.
* 스승 은방초의 예술 공적
-1951년 서라벌예대 1회졸업
-1953년 은방초 고전무용연구소 설립
-1956년 덕성여고 교사. -1957년 중앙대학, 서라벌예대교수
-1958년 제1회 개인무용발표회 외 다수 공연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멤버, 주요무용수 및 지도위원역임. 1978년국립무용단 은퇴
-주요작품/‘별의 전설’(안무 송범) ‘심청전’(안무 김백봉) 심봉사역. ‘원효대사’(안무 강선영) 대한대사역. 공작춤, 무당춤, 앞뒤탈춤, 장구춤, 장검무, 패왕별희 등, 다수 안무, 출연
-1982년 도미 후 시카고에서 활발한 활동
-2001, 2003, 2013 ‘서영님의 춤, 그 향기’ 출연
-2018년 ‘회상’ 명작무 제15호 지정
* 서영님의 주요 경력
-사)님무용예술원 이사장. 은방초춤보존회 이사장. 관성묘유지재단 이사장
-전통공연예술재단 이사. Logos문화예술교육원장. 국가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수자
-1971년 예원중 졸업. 1974년 서울예고 졸업. 1978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1081년 이화여대 동대학원 졸업. 1991년 동대학원 무용과 박사연구과정 이수
-2009년 동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이수. 2013년 세종대 무용학 작사
-서울예고 교장 역임. -지도위원 역임.
-서울예고 무용부장 역임
-서울예고 총동창회장. -사)우리춤협회 부이사장.
-박병천 진도북춤보존회 이사(전)
-우봉 이매방전통춤보존회부이사장(전)
-대한무용협회이사 (전)
-남북국제문화예술연합회 무용위원회장(전)
-세종대학 겸임교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