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다섯 명의 연주자가 직접 쓴 협주곡 초연 무대, 그들이 전하는 평화와 위로의 메시지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 창작악단(예술감독 권성택)은 올해 네 번째 기획공연으로 다섯 명의 연주자에게 위촉한 협주곡 초연 무대, ‘연주자 그리고 작곡가’를 오는 6월 13일(목)과 14일(금)에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국립국악원은 연주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간간이 작품을 발표해 온 다섯 명의 기악 연주자, 이선희, 이영섭, 여수연, 서정미, 민영치에게 관현악 협주곡 작품을 위촉했다. 전곡 연주자들이 관현악 협주곡 창작에 도전하는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통음악의 시대에서는 연주자가 작곡가이기도 했다. 수많은 변모를 거듭해 온 풍류음악과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다양한 산조의 분파는 연주자가 작곡가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서양음악이 도입된 이후에는 연주자가 작곡 영역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급격히 축소됐다. 국악계에서는 연주자가 나서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다. 근래에 들어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나무곁에 눕다’(2014-2016) 시리즈와 ‘자출(自出)’(2023), 정가악회, 그룹 잠비나이, 블랙스트링의 활동 등이 이를 말해 준다.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곡은 이선희 작곡의 거문고 협주곡 <響流(향류)>다. 한반도에 우리 고유의 음악이 흐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곡가는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연주했던 경험에서 느낀 창조적 에너지가 바로 ‘향악화’라고 생각했다”며 <보허자>로부터 시작된 파생곡들과 <가진회상>의 연주법, <경기대풍류>의 구성진 가락을 거문고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전통음악의 악곡 구성원리인 한배·더늠 형식을 갖춘 새로운 선율이 등장하고 선법에 따른 시김새의 변화를 통해 변조와 전조 과정을 작품에서 보여준다.
이선희는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지도단원으로, 2020년에 샌디에이고대학의 크리스토퍼 애들러(Christopher Adler) 교수에게 헌정한 <2020 수연장>이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연주되며 미국 전역에 작곡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이영섭 작곡의 소금 협주곡 2번 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종묘제례악>과 후손들의 가정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비는 <동해안별신굿> 조상굿 중 ’어청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음악적으로는 다르지만 염원하는 바가 같은 이 두 음악을 작품 안에 녹여냈다.
작곡자는 ”소금이 나오는 기존의 작품들에서 소금은 밝고 민첩한 모습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번 곡에는 전통적 기법에 충실한 선율로 소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작곡자 이영섭은 월드뮤직그룹 바이날로그(Vinalog) 대표이자 전통창작음악집단 ‘4인놀이’ 동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남대학교 국악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수연 작곡의 해금 협주곡 <몽·양(夢·陽, Celestial Dream)은 작곡자가 팬데믹과 전쟁 등으로 불안과 혼란에 빠진 세계 곳곳의 상황을 보며 화합과 평화를 바라는 내용을 담았다. 전시(戰時)와 재난을 암시하는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하여 후반부에는 밝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표현한다.
작곡자 여수연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해금 단원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에 도미하여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프린스턴대학교 작곡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번 공연은 10년 이상 몸담았던 창작악단의 예전 동료들과 다시 함께하는 특별한 무대로, 평생 기억에 남을 벅찬 순간이 될 것 같다.”며 소회를 밝혔다.
서정미 작곡의 씻김을 주제로 한 대금 협주곡 <竹魂(죽혼)>은 대금산조의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 위에 <진도씻김굿>에 나오는 ‘길닦음’ 선율을 얹은 대금 협주곡이다. 대금의 음역대, 악기 특유의 시김새와 주법을 최대한 활용했다. 중모리는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짰다. 중중모리는 굿거리장단의 ‘나무아미타불’ 부분을 활용했으며 다양한 전조를 활용해 협연자의 기량이 돋보일 수 있도록 했다.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즉흥시나위와 웅장한 관현악과의 조화는 씻김의 혼을 자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무형유산 진도씻김굿 이수자인 김태영의 장단과 구음이 함께한다. 서정미는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대금 수석으로 재직 중이다.
끝으로 무대에 오르는 곡은 민영치 작곡의 장구 협주곡 이다. 사회의 틀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들, 곡 제목 는 작곡가 자신의 삶과 현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전통 어법에 기반한 기존의 국악관현악의 선율과는 사뭇 다른, 국악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작곡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민요 <옹헤야>, <종묘제례악> 등 작곡가가 그동안 배워왔던 국악 선율들이 등장하고 장구 연주자로서의 경험이 응축된 가락이 그사이를 채워간다. 작곡가는 ”한국의 장단은 다채로운 변화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을 느껴왔다. 그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며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없이 이 곡을 즐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작곡자 민영치는 재일교포 3세로, 중학교 때 일본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대금 소리에 매료되어 한국에 들어왔고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장구를 쳤고, 그룹 슬기둥에서 활동할 당시 선배들의 권유로 작곡을 시작하게 됐다. 한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타 장르와 국악을 접목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공연에 선보이는 연주자이자 작곡가 다섯 명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공동의 메시지는 ‘평화와 위로’다.
공연은 오는 6월 13일(목)과 14일(금)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며 국립국악원 누리집(www.gugak.go.kr), 또는 전화(02-580-3300)로 예매할 수 있다. S석 3만원, A석 2만원, B석 1만원(문의 02-580-3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