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 기념공연 첫째날(사진 위,) 둘째날 출연진들과(사진 아래) 한국의 명인명무전을 마치고 기념사진
박동국, 국악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명인명무전으로 이룬 전통예술의 도약과 혁신
한국 전통예술의 대중화를 이끈 박동국 동국예술기획 대표는 지난 36년 동안 국악과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전통예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그의 손길이 닿은 명인명무전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전통예술의 역사를 대중과 공유하며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과 대중화의 초석을 다지는 무대였다.
"국악의 중심, 전통예술의 리-크리에이션(re-creation) 무대화 실현"
동국예술기획이 기획한 무대는 단순한 국악예술 공연이 아니었다. 춘앵무의 김천흥, 판소리 적벽가의 박동진, 승무와 살풀이춤의 이매방, 교방굿거리춤의 김계화, 일인창무극의 공옥진, 배뱅이굿의 이은관, 소고춤 안채봉, 설장고춤 김오채, 밀양양반춤 하보경, 동래학춤 김동원, 거문고산조 원광효, 가야금산조 이영희, 판소리 성창순, 조상현, 안숙선, 조통달, 송순섭, 박송이, 가곡 김월화, 경기민요 묵계월, 이춘희, 가야금병창 강정숙, 범부춤의 하보경, 대금의 이생강, 피리의 정재국, 고수 정철호, 김청만, 가야금 박귀희 등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을 통해 탄생한 이 무대는 새로운 국악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수많은 국악계 거장들에게 예술혼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특히, 배뱅이굿의 대가 이은관 선생은 그의 무대에서 전통의 진수를 보여주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동국 대표의 명인명무전을 거쳐 간 국악인은 무려 1400여 명에 이를 정도이다. 그의 무대는 국악인들에게 대중과 만나는 중요한 경로였고, 관객들에게는 전통예술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제1회 명인명무전: 국악계의 이변을 만들다
1990년 11월, 국립국악원 소극장(우면당)에서 막을 올린 제1회 명인명무전은 전통예술의 지평을 뒤흔든 기념비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찬란한 무대 뒤에는 시작부터 끊임없는 도전과 역경이 함께했다.
제1회 명인명무전 포스터
국립국악원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대관을 신청했을 당시, 국악원 관계자들은 신생 기획사가 준비한 공연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관객이 없을 것”이라며 대관에 난색을 표했고,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할 공연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냉소와 비아냥이 이어졌다.
박동국 대표는 끈질긴 설득 끝에 대관을 성사시켰지만, 공연의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는 부정적인 시선들은 그의 어깨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공연 당일, 국악의 기적이 일어나다
그러나 공연 당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공연 시작 두 시간 전, 국립국악원 매표소 앞에는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이 네 줄로 길게 늘어섰다. 장사진을 이룬 관객들의 모습은 국악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 공연은 이틀간 전석 매진이라는 성과를 이루며, 국악 공연의 무한한 가능성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해 보였다.
박동국 대표는 "국악이 대중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내겠다는 신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고 회상하며, 그 날의 감격을 생생히 떠올렸다.
조선의 마지막 무동 김천흥 선생과 첫 공연
조선의 마지막 무동 김천흥 선생은 1991년 6월28일 장충동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제2회 명인명무전의 대표적인 출연자로, 공연 당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동국 대표는 "김천흥 선생님이 무대에 서기 전까지 이 공연이 성공할지 회의적인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춘앵무가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은 숨조차 쉬지 않고 무대를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전통의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이었습니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김천흥 선생은 이후 명인명무전의 상징적 존재로 남아 전통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공옥진 선생과의 마지막 무대: 예술로 고통을 노래하다
박동국 대표는 자신의 수많은 공연 중에서도 공옥진 선생과의 마지막 공연을 잊지 못한다.
일인창무극의 대가였던 공옥진 선생은 예술을 통해 인생의 고통과 기쁨, 눈물과 웃음을 모두 표현한 인물이었다. 병신춤으로 알려진 그녀의 춤은 육체적 결핍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독창적인 작품이자, 그녀의 삶 그 자체였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빛난 공옥진의 마지막 춤
호암아트홀,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열린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독창적이고도 강렬한 공연이었다.
병신춤을 추며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던 공옥진 선생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손과 발의 동작, 얼굴의 표정 하나하나가 그녀가 걸어온 험난한 길을 증언했다. 무대 위의 그녀는 예술가였고, 동시에 삶과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박동국 대표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날 무대의 공옥진 선생님은 더 이상 인간의 한계를 가진 춤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가였으며, 관객 모두가 숨죽이며 그녀의 삶과 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그녀의 춤사위가 끝났을 때 객석에는 환호가 아닌 깊은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故 공옥진 선생과 마지막 춤을
고통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故공옥진여사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삶의 고난과 아름다움, 인간의 존엄성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힘이었고, 그 침묵은 모두가 그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공옥진 선생은 병약한 몸을 가지고도 강렬한 춤사위와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날, 그녀는 무대에서 내려오며 박동국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었다. 눈물로 가득 찬 얼굴로 "이제는 내 몸이 더는 견디지 못해. 오늘로 나의 춤은 끝이야"라며 작별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슬픔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냈다는 자부심과 성찰이 가득했다.
영원한 작별, 그리고 예술의 유산
그날 공연 이후 박동국 대표는 공옥진 선생을 전라남도 무형유산 보유자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힘을 쏟았다. 이는 그녀의 예술적 가치를 대중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과정이었다.
3년 뒤, 선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예술적 흔적과 춤의 감동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박동국 대표는 그날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공옥진 선생님의 춤은 단순히 몸의 동작이 아니라, 그녀가 겪었던 모든 고난과 인생의 서사를 담은 예술이었습니다. 마지막 공연에서 그녀가 보여준 춤은 단순한 병신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을 반영한 하나의 거울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단순히 한 편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통과 투쟁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은 예술적 승화라는 찬란한 결말을 통해 빛을 발했으며, 그 무대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넘어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창조적 열망을 상징하는 장으로 남았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박동국 대표와 관객들의 가슴 깊이 새겨져, 한국 전통예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눈부신 기록으로 수놓으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전통예술의 소중한 기록, 그의 아카이브
박동국 대표는 단순히 공연을 기획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소중히 다뤘다. 지금까지 그의 서재는 공연 자료와 영상 자료로 가득 차 있으며, 무려 6개의 책장을 채우고도 부족해 일부는 별도의 공간에 보관하고 있다.
작은 자료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그의 끈질긴 노력은 단순한 수집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오늘날 전통문화 예술의 맥을 이어가는 든든한 토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열정과 집념이 깃든 그 모든 기록은 한국 전통문화의 역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 후대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자료로 가득한 박동국 선생의 책장
박동국의 학문적 기여와 공로
박동국 대표는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며, 학문적으로도 전통예술에 대한 깊이를 더했다.
2024년에는 단국대학교 안순철 총장으로부터 공로표창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문화유산보호를 통해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문화유산보호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단국대학교에서 공로표창
동국예술기획, 전통예술의 미래를 밝히다: 오늘의 성과와 내일의 비전
동국예술기획의 명인명무전은 112회까지 이어지며, 전통예술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내년에는 제113회 명인명무전이“하늘과 땅을 잇다”라는 주제로 광주·호남 지역 전통예술인을 기리는 추모 공연과 차세대 예술인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열릴 예정이다.
제113회 한국 명인명무전 포스터
박동국, 전통예술의 중심에 서다
박동국 대표와 동국예술기획의 무대는 국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오늘날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그의 헌신은 국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연내용을 해설하는 동국예술기획 박동국 대표
김승국 이사장의 회고, 박동국 대표는 인간미 넘치는 기획자
“한국 전통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동국예술기획의 박동국 대표가 있었습니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박 대표는 춤과 소리라는 예술의 본질을 대중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는 단순히 공연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통예술 자료의 기록과 보존, 이를 통한 역사적 가치의 발굴까지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왔습니다.
박동국 대표와 함께한 세월 속에서, 저는 그가 보여준 끈끈한 의리와 따뜻한 인간미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획자가 아니라, 전통예술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집념과 열정은 국악계에 큰 울림을 주었고, 앞으로도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중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박동국 대표님, 그동안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건강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당신이 이룬 업적은 전통예술의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라고 김승국 이사장은 회고했다.
그의 열정으로 빚어진 36년의 역사는 국악계와 대중을 하나로 잇는 소중한 가교가 되었고, 그 여정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국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의 헌신과 비전은 국악의 빛나는 시대를 열어가는 길잡이가 되어, 예술의 경계를 넘어 우리 문화의 깊이를 세계에 알리는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A smooth sea never made a skilled sailor”
"잔잔한 바다에서는 뛰어난 뱃사공이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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