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진흥법 1년, 이제는 실천 전략으로… 국립국악원 정책 세미나 ‘국악진흥을 위한 미래 전략’ 성황리에 마쳐
국립국악원(원장 직무대리 강대금)이 6월 4일(화) 풍류사랑방에서 제1회 국악의 날과 국악주간을 기념하여 정책세미나 ‘국악진흥을 위한 미래 전략’을 개최했다. 지난해 7월 국악진흥법이 제정·시행된 이후, 관련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처음 맞는 국악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로 마련된 이번 세미나는 국악정책의 현주소와 향후 방향을 다각도로 점검하고, 실천 전략을 구체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강대금 국립국악원장 직무대리는 환영사에서 “국악진흥법은 국악의 보전·계승뿐 아니라 창작, 향유, 산업화, 해외 진출 등 폭넓은 분야를 포괄하는 제도”라고 강조하며, “법적 기반이 갖춰진 만큼, 이제는 국민과 만나는 건강한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지에 대한 고민이 정책으로 이어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1부에서는명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을 좌장으로 이정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의 기조발제로 국악진흥법의 의의와 공공의 역할에 대한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1부 국악진흥법 시행과 공공의 역할 - 실천과 공공의 책임을 묻다
이용식 전남대학교 교수는 “국악진흥의 실질적 기반은 국악학 연구에서 비롯된다”며, 현장자료의 수집과 국립국악연구원 설립의 시급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문화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원천자료에 대한 집대성과 해석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 핵심이 바로 국악학이며, 지금의 국악학은 민속 현장자료 수집과 음악민족지가 없는 수집자료는 사상누각을 남발할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식 전남대학교 교수
김성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팀장은 “공공기관이 국악을 단지 보존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며, “국악은 고령사회, 치유, 공동체 회복이라는 시대적 의제와 연결되는 공공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승미 경인교육대학교 교수는 ‘생태계의 관점에서 본 국악교육’을 주제로 발표하며, 전문 교사 양성 및 교육 콘텐츠 현대화, 창작 국악과 융복합 콘텐츠 지원, 지역 주도형 생태계 조성, 정책 거버넌스 개선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국악 진흥은 제도 마련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 중심의 실천과 행정의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부: 향유 확대 및 가치 제고 - 기술, 지역, 세계로 확장되는 국악
2부는 한만주 국악방송 방송본부장을 좌장으로 국악향유 확대및 가치제고에 대한 발제로 기술과 지역, 세계의 확장에 대한 주제발표로 진행되었다.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수는 국립국악원의 분원 설립이 국악의 지역 균형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지 강조했다. “국악이 수도권 중심 구조에 고착되면, 지역은 향유 주체가 아닌 소비자에 머무르게 된다”며, “분원은 공연장이 아니라 국악 생태계 그 자체”라고 말했다.
정다샘 서강대학교 교수는 “국악의 디지털 전환은 단지 콘텐츠 생산을 위한 기술 활용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적 감각을 열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인공지능 작곡 사례와 판소리의 알고리즘 실험을 소개했다. “전통이라는 형식을 깨지 않고도 국악은 충분히 실험적이고 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다샘 서강대학교 교수
김태식 전 연합뉴스 한류기획단장은 “국악이 지구촌에서 가장 늦게 데뷔한 늙은 신인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며, “K컬처 열풍 속에서도 국악은 여전히 주변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국악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장식용이 아닌 중심 무대로 나설 수 있는 정책적 실험과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나 중앙대학교 교수는 국악치료의 임상 현장을 소개하며, “국악은 고통의 기억을 노래로 되살리고, 공동체 안에서 다시 살아가게 하는 치유의 언어”라고 말해 청중의 큰 공감을 얻었다.
3부: 종합토론 - “이제는 법의 시대에서 실행의 시대로”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정책, 연구, 교육, 현장예술, 방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심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서울대 허윤정 교수는 국악진흥법 제정의 의의는 크지만, 국악계가 여전히 ‘현대화, 대중화, 세계화’라는 반복된 담론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한계를 느낀다고 밝혔다. 특히 국악을 ‘전통’에만 가두지 말고 ‘예술’로서 재조명해야 하며, 창의성과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악은 이미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만큼, 이제는 법 이후의 철학과 예술적 전략이 필요하며, 정책 설계자들은 예술 본질과 시대성과의 소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산교육대학교 정은경 교수는 ‘2025 국악 정책 세미나’에서 국악진흥법 시행 1년이 지났음에도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비판하며, 실행 주체와 구조의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정 교수는 실태조사, 전문 인력 양성, 지원기관 지정 등 핵심 과제가 여전히 진전을 보이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며, 국악진흥법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전담 조직 신설 또는 별정직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의지와 예산 편성을 촉구했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실행 가능한 구조 마련을 요구한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작곡가 신영섭(크리에이티브마인드 연구이사)은 국악진흥을 위한 실질적 접근으로 법제화보다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고 소비되는 문화 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해 방송에 ‘수제천’ 같은 전통음악을 사용하거나, 사극의 전통 공간에 어울리는 국악적 사운드를 도입하는 등의 문화 감각 전환을 제안했다. 또 인공지능 기술은 생성보다 분석과 분류에 적합하며, 이를 위해 국악 데이터셋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국악으로 창작과 생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후배 세대를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신은주 전북대학교 교수는 “국악 진흥의 중심은 언제나 지역에 있다”며, “지방대학과 지역예술가들이 국악의 대중화 실험과 전통 계승을 병행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신진 국악 연구자의 양성을 위한 구조적 지원을 강조하며, “지방 학생들이 지역에서 공부하고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악 연구기관이 설립된다면 지역균형을 고려해 서울 집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지역 국악고와 대학의 연계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인화 서울시 무형유산위원회 부위원장은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전환이라는 화두 속에서 국립국악원의 역할은 단순한 공급자가 아닌 매개자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국악을 국민 속으로 끌어오는 과정 자체가 이미 수요자 중심의 활동이었으며, 수요자 중심이라는 표현 자체의 맹점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립국악연구원 설립은 바람직하나, 현실적으로 법인 설립이 어려운 만큼 기존 기관들과의 협력, 지역 연구소나 거점 대학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 기능 강화가 더욱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김은하 국악방송 부장은 “국악방송이 생긴 날은 내게 직업이 생긴 날이었다”며, “방송이 생기면 국악이 많이 달라질 줄 알았지만, 여전히 혁신적인 변화는 체감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이어 “국악방송은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국악의 날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며, 국립국악원·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등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 과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객석에서 참가인 자격으로 질문한 김호석 경기대학교 명예교수는 “오늘 세미나에서 발표된 다양한 국악의 확장 실험들을 이미 현장에서 체험해 왔다. 이 흐름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갑다”고 말했다. 그는 “국악진흥법이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법이 있는 한 실천은 가능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영운 전국립국악원장
이번 세미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참관한 김영운 전국립국악원장은 "국악진흥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여전히 미미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도 실질적 혜택보다는 오히려 보존의 책임만 커지는 것처럼, 국악진흥법 또한 법 제정만으로 진흥이 이뤄지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특히 "국악은 콘텐츠, 인공지능, 음악치료 등 다양한 영역과 연계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의 주체라기보다 주변의 개체로만 활용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제는 국악계 내부에서 중지를 모으고, 주체적 방향성을 설정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립국악원의 수장으로서 정책과 현장을 모두 아우르는 그의 발언은 세미나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이번 정책 세미나는 국악진흥법이라는 제도적 틀 위에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수립하고, 법률이 현장의 숨결과 맞닿을 수 있는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국립국악원은 이날 논의된 과제들을 향후 국악진흥 기본계획에 반영할 방침이다.
국악타임즈는 이번 ‘2025 국악진흥을 위한 미래 전략’ 세미나를 통해 국악진흥법 제정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실질적인 진흥을 위한 실행력 있는 구조와 정책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는 계기로 평가한다. 법 제정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장은 체감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이어졌으며, 비판을 넘어 학계 · 교육계 · 현장 전문가들이 제안한 구체적 대안과 철학적 방향은 향후 국악 진흥 정책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