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금병창, 레퍼토리의 한계를 넘다... 전통과 확장의 갈림길에서
가야금병창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무대가 펼쳐졌다. ‘수궁가를 중심으로 한 가야금병창 레퍼토리의 변형과 확장’을 주제로 열린 이번 공연은 전통 레퍼토리의 계승을 넘어, 병창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자리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태화 교수는 “가야금병창은 연주와 소리를 동시에 완성해야 하는 장르로 구조적 제약이 크다”며 “그 한계를 넘어 보다 다채로운 표현을 시도하려는 고민의 과정이 이번 무대에 담겨 있다”고 밝혔다.
무대는 가야금병창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진행되며, 연주와 소리가 긴밀하게 맞물리는 이 장르만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했다. 단순한 연주를 넘어, 가야금과 소리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완성되는 입체적 예술로서의 병창의 본질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레퍼토리가 부족하다”… 병창이 직면한 현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레퍼토리의 부족’이었다.
연주자는 “학생들에게 가야금병창의 가장 큰 문제를 묻으면 모두가 레퍼토리 확장을 이야기한다”며 “판소리 등 타 장르에 비해 곡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공연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획됐다. 박귀희 명창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병창의 틀을 기반으로 <수궁가> 주요 대목을 엮어 보여주며, 현재의 레퍼토리 구조를 점검하는 한편 새로운 확장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오갑순·석화제… 전통을 넘어 확장으로
무대에서 특히 주목된 지점은 오갑순 명창의 음악 세계였다.
1993년 이미 가야금병창으로 <수궁가> 완창을 남긴 사례가 있었음에도,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병창이 ‘토막소리’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을 뒤흔드는 대목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병창의 대표 창법으로 여겨졌던 ‘석화제’에 대해서도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석화제가 지닌 미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를 병창의 전형으로 고정하는 것은 오히려 장르의 확장을 제한해왔다는 지적이다.
이날 무대는 전통 레퍼토리와 창법을 기반으로 하되, 다양한 선율과 해석을 통해 병창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끊임없는 탐구, 연주자 이선의 행보
이번 무대는 무엇보다 연주자 이선의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집약된 결과였다. 가야금병창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연주와 소리가 어우러지는 밀도 높은 무대를 통해 관객들은 이 장르가 지닌 본연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무대 곳곳에서 드러난 실험과 확장의 시도는, 단순한 기획을 넘어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는 연주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선의 행보에 자연스레 박수가 이어졌다.

이선은 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으며,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다. 제36회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 대통령상, 대한민국가야금병창대제전 문화체육부장관상, 2019 KBS 국악대상 판소리상 및 대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와 수원대학교 국악과 객원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며, 가야금병창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번 공연은 가야금병창이 더 이상 고정된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 위에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분명히 보여준 자리였다. 앞으로 이선과 같은 연주자들의 탐구가 어떤 새로운 레퍼토리와 미학으로 이어질지 기대를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