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숨결을 잇다”… 박송희 명창 추모공연 ‘동행’, 삶과 예술을 무대로 되새기다
2025년 ‘동행 – 스승과 제자의 무대’는 단순한 판소리 공연을 넘어, 故 박송희 명창의 소리 철학과 그 유산을 이어가는 제자 채수정 명창의 애틋한 헌정 무대였다. 이번 공연을 통해 ‘동행’은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스승의 숨결이자, 제자들이 삶으로 되새기는 판소리의 길임을 확인시켰다.
채수정 명창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매년 스승의 날을 박송희 명창과 함께 보내온 기억을 떠올리며, “작고 후 처음 맞이한 스승의 날이 너무 외로워서 그 허전한 마음을 무대로 만들고 싶었다”며 공연의 시작을 회고했다. ‘동행’이라는 공연 제목 역시 정병헌 교수가 지어준 이름으로, 스승과 제자의 긴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병헌 교수는 “90년대 대학 신입생이었던 채수정을 처음 만났는데 이제는 중견 명창으로 성장해 스승을 기리는 자리에 섰다”며, “한 예술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은 그 어떤 예술보다 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도 한 사람의 예술가를 지켜보는 기쁨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영상을 보고 회고하는 정병헌 교수와 채수정 명창
채수정 교수는 스승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학 양성에 헌신해 온 대표적인 명창 중 하나다. 이번 ‘동행’ 무대에서도 그녀는 <단가 인생백년>과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을 비롯해 다양한 곡을 소화하며 국악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제자들이 함께한 무대였다. ‘새타령’과 ‘농부가’를 비롯한 남도민요 공연은 흥겨움과 화려함, 그리고 전통적 깊이를 고루 갖추며 관객에게 전통예술의 생동감을 전달했다.
특히 이날 무대에서 특별 출연한 유영애 명창은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 잔치 올라가는 대목’을 선보이며 객석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전라북도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인 유 명창의 소리는 단단하면서도 깊은 서정성을 지녔고, 스승을 향한 존경과 후학을 향한 따뜻한 메시지가 녹아 있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또한 이날 무대에는 거문고 합주로 창작된 작품 <낙음류수(落音流水)>가 연주되어 주목을 받았다. 김민서, 정지호, 정홍주, 장단에 지명인 등으로 구성된 젊은 연주자들이 선보인 이 작품은 전통 거문고의 울림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해 ‘고전의 창조적 변용’이란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때로는 묵직하고 때로는 산뜻하게 흐르는 선율은 인생의 여정을 닮아 있었고, 전통과 현재가 만나는 아름다운 접점을 제시했다.
정병헌 교수는 박송희 명창이 단가 ‘인생백년’을 완성한 주역임을 언급하며, “그 단가는 박록주 선생이 가사를 지으시고, 박송희 선생이 창으로 붙여 완성한 노래다. 판소리에 단가 하나를 더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판소리꾼은 단순히 소리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음악과 기악, 춤까지 아우르는 악가무의 예술인이다. 박송희 선생은 그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고, 좌중을 웃음과 흥으로 채우는 예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채수정 명창은 2027년 박송희 명창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인생백년"을 백 명이 부르는 헌정곡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다”며 새로운 공연 구상을 밝혔다.
공연 말미에는 따뜻한 웃음이 피어났다. 제자들이 마련한 채수정 교수의 공로패 시상식이 깜짝 진행된 것. 공로패에 적힌 글씨가 작아 누가 읽을지 머뭇거리던 순간, 가장 연장자인 유영애 명창이 앞장서 공로패의 문구를 또박또박 낭독하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무대 위의 격식도 잠시, 스승을 향한 존경과 제자들 간의 유쾌한 정서가 뒤섞인 순간이었다.
故 박송희 명창의 소리는 단순히 예인의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을 울리고, 삶을 정직하게 살아가게 한 소리였다. 그 소리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이들이 있어, 오늘날의 판소리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동행’은 스승과 제자의 무대 그 이상으로, 전통예술의 진심과 감동이 머무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