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전통춤이 지닌 신명은 흔히 폭발의 언어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양재문에게 신명은 터뜨리는 감정이 아니라, 오래 눌러 담아두었다가 스스로 울리게 하는 시간의 진동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라캉이 말한 ‘표출되지 않는 욕망’의 방식과 닮아 있다. 욕망은 언제나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말해지기보다는 어긋난 형태로, 잔향처럼 남는다. 개인전 ‘動靜–삶은 머물고, 몸은 울린다’는 1994년 ‘풀빛여행’에서 2025년 ‘비감소월’에 이르기까지, 삼십여 년 동안 축적된 신명의 결을 한 공간에 병치함으로써, 욕망이 어떻게 몸과 사물 속에서 지연되고 변형되어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움직임과 고요를 대비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둘이 같은 결여의 다른 표정임을 드러내는 자리다.

‘풀빛여행’에서 몸은 분명 존재하지만, 끝내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춤꾼의 얼굴과 팔다리는 흐릿해지고, 남는 것은 휘돌아간 선과 먹빛의 흔적이다. 이는 라캉이 말한 상상계의 붕괴에 가깝다.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로서의 몸은 해체되고, 주체는 더 이상 자신을 명확한 형상으로 소유하지 못한다. 전통춤은 여기서 특정 동작이나 장단의 재현이 아니라, 한을 넘어서는 순간에 발생하는 균열로 기록된다. 작가는 셔터를 통해 동작을 붙잡기보다, 시간을 풀어놓는다. 그 결과 사진은 정지된 이미지임에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는 욕망이 결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소리와 몸이 멎은 뒤에도 계속 울리는 잔향, 민요 속 ‘놀자’라는 말이 삶을 지속시키는 최소한의 생기가 되는 순간, 신명은 쾌락이 아니라 견딤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반면 ‘비감소월’에서 신명은 거의 들리지 않는 음량으로 낮아진다. 달항아리는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오직 외부의 빛을 받아들여 가장 고요한 상태에서만 존재를 드러낸다. 라캉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응시의 위치가 전도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대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상이 우리를 본다. 달항아리의 표면에 머무는 빛은 관람자의 시선을 되돌려 보내며, 주체가 채우지 못한 결여의 자리를 고요하게 드러낸다. 이 빛은 장식이 아니라, 말해지지 못한 감정의 층위다. 그리움과 연민, 속죄와 염원 같은 감정들은 여기서 표출되지 않고, 명상이라는 그릇 안에 머무른다.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더 이상 말로 환원될 수 없는 충만의 다른 이름이다.
이 두 연작이 한 공간에서 마주할 때, 전시는 비로소 ‘動靜’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획득한다. 격정의 몸짓과 침잠한 사물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가 다른 하나의 결여를 설명한다. 흐릿한 몸의 잔상은 달항아리의 정적인 빛으로 이어지고, 그 빛은 다시 몸의 떨림을 호출한다. 이는 병치가 아니라 순환이며, 라캉이 말한 상징계의 작동 방식에 가깝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서로를 참조한다. 삶이 멈추는 순간에도 몸은 울리고, 몸이 고요해질 때 삶은 더 깊이 머문다. 사진은 이 어긋남의 구조를 정지된 이미지로 봉인하는 대신, 계속해서 작동하게 만든다.
양재문의 작업 뒤에는 삼십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외롭고 힘든 삶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작품 앞에서 과장 없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사진들은 비극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쓴맛과 단맛이 함께 섞인 감정의 농도를 유지한다. 이는 라캉이 말한 ‘쾌락(jouissance)’과도 다르다. 과잉의 쾌락이 아니라, 넘치지 않도록 조절된 감정의 윤리다. 한을 풀어내되 소란스럽지 않고, 신명을 말하되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이 전시는 새해의 시작에 어울린다. 결단을 요구하지 않고, 욕망을 명명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 멈추어, 자신의 결여를 견딜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한다.
‘動靜–삶은 머물고, 몸은 울린다’는 사진전이지만, 실은 하나의 긴 타령에 가깝다. 놀자고 부르면서도 울음을 숨기지 않는 민요처럼, 이 작업은 각자의 삶에 남아 있는 말해지지 못한 욕망을 조용히 흔든다. 그리고 말한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다고. 양재문의 사진은 그 사실을, 라캉의 언어로 말하자면 결여를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래된 신명의 리듬 속에서 들려준다.






















